<초콜렛 (Chocolat, 2000)>,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기

 

이번에도 아주 오래된 영화인 ‘초콜릿 (Chocolat, 2000년)’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서 다시 보았어요. 영화 포스터 처럼 영화 속의 수많은 연인들 중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또 성숙한 관계의 연인을 꼽으라면 저는 자유로운 두 영혼끼리 만난 비엔(줄리엣 비노시)과 록스(조니뎁) 커플을 꼽을 거예요. 

 

영화 초콜렛, Chocolat


하지만 이 영화는 단지 ‘남녀 간의 사랑’ 영화인 것만은 아니예요. 이 영화는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영화, 남의 눈치를 보며 남의 기대에 맞추어 살기 보다는 참 나로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게 얼마나 어렵고 또 큰 “용기”가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영화예요. 종교와 공동체가 때론 얼마나 억압적일 수 있는지, 반면에 포용과 섬김과 배려 속에서는 얼마나 큰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지도 볼 수 있게 해주는 영화예요. <미움받을 용기> 라는 책이 생각났어요. 

 


<경고: 여기서 부터는 영화에 대한 내용이 노출되므로 아직 영화를 안보신 분들은 나중에 읽어주세요. 스포일러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지금 여기를 사는 데는 큰 “용기(Courage)”가 필요하다. 

영화는 적막한 프랑스 시골의 Lansquenet 라는 마을을 보여주면서 “만약 당신이 이 마을에 산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If you live in this village, you understood what was expected of you.”) 라는 말로 시작을 해요. 왠지 남의 집에 숫가락, 젓가락이 몇 개가 있는지까지 서로 모조리 꾀뚫고 있어서 개인의 사생활이라고는 거의 없는 숨막히는 시골 마을이 상상이 됩니다. 이 마을에 북풍이 불던 날 Vianne(줄리엣 비노시 역)과 딸 Anouk 이 "운명처럼(were fated)" 오게 돼요. 

 

Chocolat - fate


이 시골 마을의 시장인 레이노드 백작(the Comte de Reynaud, 알프레드 몰리나 역)은 성당도 나가지 않고, 사순절에 금식은 커녕 초콜렛 가게를 열려고 하고, 법적으로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딸이 있는 비엔을 마을의 안녕을 해칠 위험이 있는 적(enemy)이자 사탄(Satan)으로까지 생각해요. 

* 레이노드 (성당 신부에게): “아직 새로운 초코렛 가게에 가보지 않았다면 한번 가보는게 좋겠어요. 우리의 적을 아는 것은 중요하니깐요. (It’s important to know one’s enemy.)”

그리고 Reynaud 시장은 성당 신부의 설교문에 초콜렛을 사탄에 비유하는 문장을 추가해서 Vianne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사탄의 조력자인 것처럼 비난을 받게 만듭니다. 

* 성당 신부 Pere Henri의 설교 중에서: “사탄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대중음악 속의 가사로, … 그중에서도 초콜렛 만큼 무해하고 순수한 것처럼 보이는 사탄의 조력자가 있을까요?(For what could seem more harmless, more innocent… than chocolate?)” 

 

Chocolat - corrections on preach notes



마을의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울면서 집에 들어온 Vianne의 딸 Anouk 은 물어봐요. 

* Anouk: “우리는 사탄의 조력자인가요(Are you Satan’s helper)?”
* Vianne: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단다.(It’s not easy being different.)”

사실 Vianne 의 가족이 시골 마을에 와서 법을 어겼다던지, 다른 사람을 해쳤다든지, 재물상의 손해를 끼쳤다든지, 남의 자유를 침해했다든지… 그런거 없어요. 모두 개인의 자유의 한도 내에서 허용될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시장 Reynaud 와 마을 사람들이 적대감을 가지고 Vianne 가족을 차별했던 이유는 단지 Vianne 가족이 자신들과 다르게 성당도 안나가고, 자신들처럼 사순절에 금식도 안하고, 자신들처럼 결혼이라는 제도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Roux (조니뎁 역)와 집시 일행이 배를 타고 강둑에 나타났을 때도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똑같았어요. 시의회에서는 법적으로 강변은 공동의 자산이므로 집시 일행을 쫓아낼 명분이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Reynaud 시장은 마을사람들을 선동해서 Roux 일행에게 마을사람들이 보이콧을 해서 적대감을 보여주자고 해요. Roux 가 소다수를 사기 위해 Serge의 가게에 들렸을 때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듣게 돼죠. 

* Serge: “나는 짐승에게는 팔지 않아요.”(“I don’t serve animals”)


Vianne의 정착할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대해 Roux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기는 싫기 때문에 비록 차별 대우를 당할지언정 방랑자의 삶을 선택할거라고 답해요. 앞서의 Vianne가 딸 Anouk에 했던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단다.”와 슬프게도 통하는게 있지요?!

* Vianne: “당신은 어딘가에 정착하는 거에 대해서 생각해본적 있어요?” (Don’t you ever think about belonging somewhere?)
* Roux: “치러야할 비용이 너무 커요. 결국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대로 살아야 할거예요. 그건 싫어요.”   (Price is too high. You end up caring what people expect of you. No.)

 





2. 상처받은 치유자 (Wounded healer)

이 영화에서 주인공 Vianne과 버금가게 중요한 인물이 저는 남편에게 매맞고 살던 Josephine (레나 올린 역) 이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조니뎁이 연기한 Roux 보다도 더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Josephine이 Vianne를 만나서 어떻게 치유받고, 성장하고, 더 나아가서는 치유자가 되는지를 보는 것은 흥미롭고 짜릿해요. 비슷한 처지에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거라고 봐요. 

Josephine은 남편 Serge로 부터 구타를 당하면서, 거의 하녀 혹은 동물 (젖소 cow) 취급을 당하면서 살고 있어요. 이런 남편을 사랑하지도 않구요. 그렇다보니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강박적으로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기까지 해요. 아래의 대화는 초반에 Josephine이 Vianne를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예요. Josephine은 자유롭게 사는 Vianne을 보고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엄청 부러워했을거 같아요. 

* Josephine: “I heard you don’t go to church”
* Vianne: “That’s right.”
* Josephine: “You won’t last long here. People talk. 

You don’t misbehave here. It’s just not done, did you know that? 

If you don’t go to confession or if you don’t dig your flower beds or if you don’t pretend. … 

that you want nothing more in your life than to serve your husband three meals a day 

and give him children and vacuum under his ass, then… you’re… then you’re crazy. … 

I’m weak. I don’t love my husband and I lie.”

 


참다 못한 Josephine은 결국 남편 Serge를 떠나고, Vianne의 집으로 와서 초콜렛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면서 같이 살게 돼요. 그리고 조금씩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지요. 양복을 쫙 빼입고 꽃을 들고 찾아와 사과를 하는 법률적 남편 Serge에게 Josephine 은 위트있으면서도 당당하게 말해요. Josephine의 한마디는 정말 크크~하고 웃게 만들면서도 말속에 뼈가 있는 촌철살인의 힘이 있어요.  

* Serge: “안돼. 제발 그러지마, 조세핀.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어졌던 부부라구. (No, please don’t, Josephine. We are still married in the eyes of God.)”
* Josephine: “그렇다면 하나님은 장님인게 분명해요.(Then he must be blind.)”

Chocolat - he must be blind

 


술에 잔뜩 취해 Josephine을 강제로 데리러 온 법률상의 남편 Serge 가 Vianne에게 폭력을 휘두르자 Josephine은 후라이팬으로 Serge를 제압하지요. 이 장면에선 조마조마 하다가 통쾌하고 후련해져요. 예스~!    

* Serge: “You don’t know how to use skillet without me.”
* Josephine (Serge를 후라이팬으로 내려친 후): “Who says I can’t use a skillet?”
 

영화의 끝부분에서 당뇨병이 있던 Armande 가 생일 파티 후에 죽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Armande에게 초콜렛 음식을 준 Vianne을 비난하고, Vianne은 죄책감을 느껴요. 마을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낀 Vianne는 북풍이 불자 다시 현재의 마을을 떠나 다른 마을로 떠나려고 해요. 이때 Josephine이 Vianne을 막아서면서 마을에 남아서 같이 살기를 부탁해요. Vianne가 “변한건 없다”고 말하면서 떠나겠다고 하자 Josephine이 “나한테는 아니예요 (Not for me)” 라고 말하는 장면은 가슴 뭉클해요. 그동안 상처받은 약자(wounded, weak person) 였던 Josephine이 이제는 자가 스스로 서기 시작하고, 더 나아가서 Vianne을 보듬어주기 시작했거든요.    

* Josephine: “Did you believe that I can change? 

                         If you leave, everything will go back to the way it always was.”
* Vianne: “It is the way it always was.”
* Josephine: “Not for me.”

Chocolat - Not for me

 


이 영화 ‘초콜릿’은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홀로 선 여성들의 나눔과 치유, 우정에 대한 영화이기도 해요. 이 영화를 보면서 여성이 주체로서 삶과 공동체를 일궈나가는 ‘안토니아스 라인(Antonia's Line, Antonia, 1995)’ 이라는 영화가 생각났어요. 남성보다는 특히 여성들에게 크기 울림이 있을 영화일거 같아요. 

 

<Cafe Armande 를 운영하며 독립한 Armande>

Chocolat - cafe Armande

 

 



3. 인간관계는 행복과 불행의 원천, 나의 선택은? 나의 역할은?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라고 말했어요. 이 영화를 “인관관계”에 주목해서 풀어보는 것도 재미있을거 같아요. 이 영화의 주인공 비엔(Vianne, 줄리엣 비노시 역)은 삐거덕 거리는 관계의 “치유자”, 열정이 식은 관계의 “촉진자”, 사랑에 머뭇거리는 관계의 “중매자” 역할을 했거든요. 

Vianne은 초콜릿 가게에 들어온 손님들에게 각가지 모양이 새겨진 원판 접시를 돌리면서 “저는 사람들의 초콜릿 취향을 알아보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요. 무엇이 보이나요?” 라는 질문을 해요.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보는게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죠! ^^)

광야를 달리는 야생말이 보인다는 아주머니에게 선물로 “남편의 열정을 일깨워 줄 초콜릿”을 선물해요. 초콜릿이 잠만 늘어지게 잘 줄 아는 남편의 열정을 일깨워 주는 장면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저 행복해하는 남편과 아내의 모습, 음큼하면서도 야릇한 미소를 짓는 저 부부를 한번 보세요!  유후~ ㅎㅎ 

 

Chocolat - Passion



할머니 미망인 Audel과 할아버지 Blerot 가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고백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Vianne는 초콜릿 선물을 매개로 해서 두 어르신의 사랑을 연결해줘요. Blerot 이 성당에 찾아가서 Henri 신부에게 “Audel 생각이 자꾸 나요”라고 고해성사를 하자, 젊은 Henri 신부는 “그 나이에요?”라면서 두 노인들의 사랑에 대해 이해를 못해요. 하지만, 주변을 보세요. 외로움을 느끼는 어르신들의 연애, 사랑이 결코 혈기왕성한 20대에 못지 않다는 것을요. 

 

Chocolat - Love between Seniors

 

이 영화에서 미망인 Madame Audel 은 전사한 남편을 애도하고 있다고 나오는데요, 남편이 전사한게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는게 함정이예요.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미망인으로 죽은 남편을 30년 넘게 애도하고 있었던 거예요. -_-;  

* Vianne: “전쟁 후로 15년이 지났겠네요.(It must have been 15 years since he passed away).” 
* Blerot: “아니요. 그 전쟁말구요. 아우델씨는 1917년 1월12일에 전사하셨어요.

               (Not that war. Monsieur Audel was killed on January the 12th, 1917.)”

 




4. 성당(교회)에 잘 나가는 당신은 예수님의 참 제자인가, 아니면 그저 바리새인인가?

이 영화의 감독 라세 할스트롬이 종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이 영화는 종교에 대해 얄밉도록 실랄하게 풍자를 하면서 ‘종교의 문자적인 교리’에 맞춰사는 삶과 ‘종교의 참 의미와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삶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사실, 이는 비단 종교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는 정치적인 사상, 윤리적인 신념, 공동체의 가치 등에 대해서도 똑같이 해당이 될거예요. 

Roux의 배가 강변에 도착했을 때 Vianne과 Anouk가 와서 데화를 하자 Roux가 약간은 비꼬면서 물어봐요. 

Roux: “Are you here to save us? Are you the catholic Aid Society? 

             French Family League? Communist workers? Which idea are you selling?”
Anouk: “Chocolate”
Roux: “I should probably warn you. You make friends with us… 

               you’ll make enemies of others.”


성당이나 교회 다니는 분들 중에서 이 영화를 보고 불편해할 분들도 계실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이 영화가 성경 말씀에 반하거나 기독교를 비꼬려고 한다고는 생각 안해요. 성경 속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몸을 하고 이 세상에 가장 낮은 자의 곁으로, 가장 낮은 자를 위해서,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잖아요. 단지 “나와,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 만으로 예수님께서 누군가를 차별하고 부당하게 대우하는 모습을 저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어요. 그런면에서 보면 비록 겉으로는 경건하고 율법에 충실히 따르는 시장과 마을 주민들이 예수님의 제자인것 처럼 보일수는 있지만, 그 마음이나 행동은 실제 예수님께서 불같이 화를 내셨던 바리새인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예요. 

게다가 영화 감독은 친철하게도 영화의 마지막에 신부 Pere Henri 의 설교를 통해서 너무나 친절하게도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종교나 사상의 참모습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어요.(설교라는 형식을 통해 전달하다보니 너무 노골적이고 직설적이긴 해요. 여운없이 너무 돌직구마냥 교훈적이랄까요… ^^;)

* Henri: “I don’t want to talk about His divinity. I’d rather talk about his humanity.

His kindness, His tolerance. Listen, here’s what I think.

I think we can’t go around measuring our goodness by what we don’t do.

By what we deny ourselves, what we resist, and who we exclude.

I think we got to measure goodness… by what we embrace…

what we create… and who we include.”

 

 

Vianne 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던 시장 Reynaud 는 Vianne 의 가게에 무단침입해서 깽판을 치게 되고, 그 와중에 사탄이라고 욕했던 초콜렛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초콜렛의 쾌락에 빠져들어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Vianne 와 Henri 신부에게 발각이 되지만요. Vianne 는 아무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눈감아주지요. 이러면서 시장 Reynaud 도 다른 사람에게 점점 관용을 베풀게 되게 사람이 나긋나긋해져요. 이처럼 용서의 힘이 커요. 나도 죄인이구나, 나도 약한 인간이구나 하는 깨우침의 힘도 크고 말이지요.  

 

Chocolat - forgiveness
chocolat - forgiveness 2

 



5. 억압당한 욕망은 터지기만을 기다리는 시한폭탄이다. 

Josephine은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면서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살다보니 “(비록 의도적은 아닐지라도)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벽”이라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그러다가 결국 폭발해서 남편으로 부터 도망치게 되지요.  

Vianne는 가게의 임대인인 할머니 Armande와 손자 Luc 가 서로 만나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주선해주기도 해요. 미망인이자 Luc의 엄마인 Carolline (캐리 앤 모스 역) 은 Armande가 Luc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봐 할머니와 손자인데도 서로 못 만나게 해요. 이 영화에서 Carolline은 시장 Reynaud 와 버금가게 기독교 교리와 사회 규율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모범생으로 묘사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할머니 Armande는 숨도 못쉬고 살아가는 손자 Luc가 안쓰러워 보였을 거예요. 

* Armande: “Well, I’m a bad influence. Because I don’t like her treating him like a trained poodle. 

                     I swear, that boy doesn’t piss without her permission. 

                     If only she’d let him run, let him breathe, let him live.


Vianne 덕분에 손자 Luc를 만나서 소소한 재미를 느끼며 시간을 보내면서, “~을 해야만 해요” 또는 “~을 하면 안돼요”라면서 규율에 억매여 사는 손자 Luc에게 Armande가 말해요. 

* Armande: "<하면 안돼요>라는 말에 대해 너무 걱정하기 말거라."

                     (Don’t worry so much about <not supposed to>.) 

 



손자 Luc 의 그림을 보면 피, 뼈와 해골, 창과 칼, 시체가 즐비해요. 엄마로 부터 광잉보호를 받으며 도덕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것들만 보고 듣고 행동하라고 가르침을 받지만, 아마 그러면 그럴수록 그 반대편에 있는 느낌, 욕망, 생각들이 Luc의 마음속을 채웠을 거얘요. “Sould”, “Have to”, “not supposed to do” 와 같이 사람의 본성을 억압하는 말들에 둘러싸여 살면 ‘내가 아닌 나로 살아야 하기에’ 사람 마음은 병이 들거예요. 때론 해방, 발산, 자유가 필요할텐데요, 이걸 Armande가 Luc에게 느끼고 맛보게 해줘요. 

어둡기만 했던 Luc의 그림은 ‘실물보다 더 젊은 모습의 할머니 초상화’로 거듭나요. 코피를 흘리며 집안에 갇혀(?) 살던 Luc는 이제 초콜릿 파티에서 웃고, Roux의 배위에서 할머니와 함께 춤을 추면서 놀아요. 욕망은 억압하면 병이 되고 쌓였다가 폭발할 수도 있고, 사회적 규범과 잘 조화를 이루면서 승화시키면 건전한 발전과 성숙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6. 인생의 거짓말 앞에 솔직해지기, 나도 때론 사랑받고 싶다. 

Josephine 은 남편을 사랑하지 않지만 매를 맞으면서도 같이 살고 있는 자신을 향해 “I don’t love my husband and I lie.” 라고 말해요. 자신의 인생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구요.

 

Vianne도 한 마을에 머무르지 않고 북풍이 불 때마다 마을을 떠돌아 다니는 이유에 대해서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요. 표면적으로는 Vianne의 할머니와 어머니로 부터 흐르는 마야인의 피, 운명, 사명같은 것에 어쩔 수 없이 끌려서 Cocoa의 치유와 열정의 효염을 전파하고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한 것처럼 말해요. 하지만 파티 후 Roux 와의 대화를 나누면서 Roux는 눈물을 터트려요.  

* Vianne: “모든 마을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against me). …

                 사실은 딸 아녹은 마을을 떠돌아 다니는 것을 너무나 싫어해요

                 (Anouk hate moving around the villages.).” 


다른 사람을 치유해주고 또 관계를 맺어주곤 했던 Vianne 도 사실은 사랑받고 싶고, 의지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싶은 욕구도 그만큼 컸던 거예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자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내려오는 운명과 북풍을 핑계로,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다른 마을로 떠나는 회피를 하려던 것이었지요. 

Josephine이 Vianne로 부터 도움을 받아 행복과 삶의 활력을 찾았던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Vianne 에게 ‘이 모습을 보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예요.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 우리는 당신과 함께 이고 싶어요!’ 라는 마음을 전해주었을 때 비로서 Vianne 는 이 마을에 정착을 하기로 마음을 정해요. 

 

Chocolat - we love you too

 


영화의 마지막에 Anouk의 나레이션이 시처럼 흘러요. (영어의 운율이 너무나 멋져서 원문 그대로 옮겨요.) 마지막 문장, 눈여겨 보세요.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나중에(By someone else, next time)” 이라면서 이제 Vianne과 Anouk는 어찌보면 운명처럼 옭아매었던 방랑의 사슬을 끊고 진짜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어요. 

The wind spoke to Vianne of towns, yet to be visited. 
Friends in need, yet to be discovered. 
Battles, yet to be fought.
By someone else, next time

세상의 모든 문제를 내가 다 짊어질 필요는 없잖아요? 예수님께서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가 "네 이웃을 사랑하기"와 동급으로 중요하다는 의미였을거예요.   

 


북풍이 불던 날 비엔과 아눅이 처음 마을에 왔을 때는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면,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온 마을이 축제 속에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색깔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달콤한 음식을 입에 머금고 활짝 웃고 있는 사람들로 광장이 가득해요. 

 


정말 가슴 따뜻해지고 사랑스러운 영화예요! (What a lovely movie it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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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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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만남 그리고 창조 (Human BE-ing)>, 일치와 나눔의 인간관계를 위하여 
윌리암 피취 지음, 홍순철/ 고재섭 옮김, 도서출판 민훈당

<Human BE-ing>, How to have a creative relationship instead of a power struggle, 
written by William V. Pietsch 

이 책은 제가 참 좋아하고 선물로도 여러번 사서 지인들에게 줬던 책이예요.  저는 원서랑 번역서랑 둘 다 가지고 있어요. 

영어 원서의 제목은 <Human BE-ing> 예요. Not a Man but Human, Not to BE but to BE-ing 인 이유를 먼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인간(Human)”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책 내용의 핵심이 만남과 관계임을 시사하고 있어요. 그리고 “성장하고 성숙하는 과정으로서의 존재(BE-ing)” 라는 점도 제목이 강조하고 있습니다(“BE”가 아니라 “BE-ing”인 것은 오타가 아니라, 진행형이자 과정으로서의 인간 존재를 강조하기 위해 저자가 만든 단어예요). 부제목은 “How to have a creative relationship instead of power struggle” (힘의 겨루기 대신 창조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 이예요. 
한글로 번역된 책의 제목 “인간 만남 그리고 창조 : 일치와 나눔의 인간관계를 위하여”도 나쁘지는 않은데요, 그래도 원서 제목이 무엇이고, 제목에 저자가 담고 싶었을 의미에 대해서는 한번 짚고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인간 만남 그리고 창조, Human BE-ing, William V. Pietsch


글과 함께 그림도 같이 있어서 한결 이해하기 쉬워요. 게다가 풍선, 압력밥솥, 나무, 물 호스, 자동차, 소리굽쇠 같이 알기 쉬운 비유를 사용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작동 원리를 설명해주고 있어서 직관적으로 알기 쉽도록 설명해주고 있는 것 또한 다른 심리학이나 의사소통 관련 책과는 다른 이 책만의 장점이예요. 저자의 독자를 향한 배려를 느낄 수 있어요. 

인간 만남 그리고 창조 : 감정 (Emotions)


심리상담 책을 읽다보면 빠지지 않고 항상 나오는 주제, 단어가 “전이(Transference)” 입니다. 이 책에서 전이(transference, 轉移)가 만약 우리가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일상의 많은 문제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어요.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친숙한 타입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기대하고 있는 ‘그 타입’에 맞지 않는 자질들은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않으면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받은 감정과 그로 인한 반응을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시키려 할 것이다. 이 과정을 전이(轉移)라고 한다.” (p23)

우리의 뇌는 정보처리의 효율을 위해서 익숙한 상황에서는 “자동적으로 (automatically), 무의식적으로 (unconsciously)” 으로 행동하도록 프로그램되고, 습관(habits)이 된다는 것이예요. 의식하지 못하니깐 더 무서운거예요. 특히 “힘을 가진 사람과 관계를 갖게 될 때 종종 어린시절의 감정들이 다시 나타나”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채 어릴 때 습관화했던 셍존 전략을 성인이 되어서도 힘있는 사람 (예: 직장 상사) 에게 전이하기 쉽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어린시절의 감정의 전이에 나도 모른채 휘둘리지 않고 어떻게 창조적인 인간관계(creative relationship)을 맺을 수 있을지 궁금하지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책의 목차랍니다. (책 본문 내용을 감안해서 역자가 좀더 길게 풀어서 제목을 번역했음. 괄호 안의 영어는 원서에 있는 목차 제목임.)


[ 목차 ]
—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Understanding Ourselves)
1장. 감정의 전이와 힘겨루기 (Transference and Power Struggles)
2장. 인간 존재의 유기적 본성 (The Problem of Trust)
3장. 진정한 자신이 되도록 그 조건을 제공함 (The Need to Be Somebody)

— 핵심적인 2단계 적용하기
4장. 신뢰, 경청, 명료화 (Reflecting) 
5장. 존재하고자 하는 용기를 가지는 일 (Protecting)

— 문제 해결하기 (Solving Problems)
6장. 선택할 대안의 추구 (Exploring Alternatives)
7장. 변화를 향한 모험의 시도 (Risking Awareness)


원서의 p46, 번역서의 p45에 위의 목차를 한 페이지로 요약한 내용이 나오는데요, 아래에 원서의 내용에 충실하게 제가 다시 한번 옮겨보고 ‘직역’해보겠습니다.(최대한 직역, 일부 의역했음. 번역서는 너무 간소화해서 번역해 놓아서 충분히 뜻이 전달 안될 위험있어 보임.) 

우리는 힘 겨루기를 넘어서 창조적인 인간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아래의 방법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We move away from a power struggle and toward a creative relationship when we:)

1. 각 개별 사람의 깊은 내면(본성)에는 기본적으로 건강한 동기와 잠재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세요. 
(1. TRUST that there is a basic healthy drive deep within each person.)

2. 각 개별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의미있고 중요한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쉽고 자연스러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2. PROVIDE conditions that make it easy for a person to BE somebody emotionally.)

3. 신뢰하기, 경청하기, 명료화하기를 통해서 우리가 들은 것을 반영해서 상대방에게 재현해주세요. 
(3. REFLECT back what we are hearing through TRUSTING, LISTENING, and CLARIFYING.)

4. 내가 허용할 수 있는 경계선을 정의하고 방어함으로써 “자아”를 보호하세요.  
(4. PROTECT our own “self” through DEFINING and DEFENDING territory.)

5. “자아”를 존중하면서 대안을 탐색해보세요. 
(5. EXPLORE alternatives with “self” respect.)

6. (위의 1~5에 대한 행동을 통해) 우리 각자가 처한 위치와 관계에서 발생할 변화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세요.
(6. RISK a change in our own position.)


사실 이게 이 책의 내용 전부인데요, 이 각 문장들을 이해하기 쉽게 본문에 그림과 비유, 설명이 본문에 충실하게 나와있어요.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반영/재현(Reflecting)이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신뢰(Trust on “Other BE-ing”)라면, 자아존중에 기반한 나의 영역/경계선 보호(Protcting: Courage to “BE-ing”)는 나로 존재하기 위한 용기라고 말할 수 있을거예요. 

시중에는 논리적 사고(Logical Thinkong), 문제 해결 방법 (Problem Solving) 관련된 책이 무척 많으며, 이들 책에서는 상황진단을 위한 프레임워크, 분석 툴, 지표, 알고리즘 등을 제시합니다. 단 한가지를 빼놓고서 말이지요. 시중의 문제해결 관련된 책들이 쏙 빼놓고 있는 한가지는 바로 “인간(Human)” 이예요. 우리는 논리로 무장해 “내가 옳다”는 주장을 관철시키면 상대방은 이에 순응하여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우리 인간은 “감정(emotion)”과 “무의식(unconsciousness)”에 더 크게 좌지우지 되기 때문에 굴복당한 상대방은 속으로 분개하면서 복수할 기회를 노릴 것이예요. 이건 문제를 해결한게 아니라 승-패의 구도 속에서 패자가 언제 다시 승자의 등 뒤에 칼을 꽂을 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문제 봉합인 것이 잖아요. <인간 만남 그리고 창조>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게 바로 “인간(Human BE-ing)”, 그리고 “감정(Emotions)” 이란 점은 갈등 해결의 첫 단추로서 다른 시중의 책들이 쏙 빠트린 내용이라서 더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감정이란 상대방이 우리에게 고의적으로 ‘만들어 준’것이 아니며, 단지 특정한 순간에 그가 ‘지닌’것에 불과”하므로 어느 누구도 상대방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도 물론) 감정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평가해서 “그런 식으로 느껴선 안돼!” 라고 충고할 권리가 없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어요. 

신뢰한다는 것(Trusting)은 “(1) 두 사람 모두에게 그리고 그들의 관계 속에 무의식적인 일정한 형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2) 공격으로 여겨지는 것은 대개 <존재>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시도이며, (3) 인간관계에서의 성장은 <왜> 그 사람이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에 대해 의식적으로 판단을 미루고자 노력하는데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음”을 뜻한다고 해요. (p86)

그리고 경청한다는 것(Listening)은 단지 표면에 드러난 생각만을 이해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전하는 <깊은 메시지>를 <듣고자>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요. 

인간 만남 그리고 창조 (Human BE-ing by William V. Pietsch): 신뢰, 경청



신뢰와 경청을 통해서 상대방의 감정을 수용했다면, “상대방의 감정을 어떻게 들었는지를 나누는 명료화(Clarifying)를 통해서” 오해의 소지도 막고 “말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대방이 얘기를 듣기 위해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할 수 있다”고 해요.(p97~98) 저도 상대방이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고 느끼면 상대방의 진심이 느껴지고, 그때서야 이후의 대화가 감정적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순탄하게 풀렸던 경험이 여러번 있어요. 

저자는 “듣는 것은 곧 치유하는 것이다 (Hearing is Healing)” (p130) 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뢰에 기반한 경청과 명료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치유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어요. (가족과 같이 친밀하고 일상 속에 부딪치는 관계에선 잘 못하는게 함정. ㅠ_ㅠ  잊을 만 하면 자주 책 읽어보면서 상기하고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을거 같아요.) 


5장 Protecting 은 “우리 자신이 되고자 하는 용기”, “나 자신을 오롯이 사랑하려는 용기”에 대한 내용이예요. 나의 “영역/경계선(Territory)”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요, 우리도 일상적으로 “선 넘어오지 마세요”라는 말 쓰잖아요. 그거랑 비슷해요. 

“영역(Territory)은 상대방이 그 안에 들어오면 우리가 계속해서 고통을 받게 되는 그런 부분으로, 우리의 존재가 영향을 받는 부분”이라고 저자는 정의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영역이 어떤 것인지를 명시해 줄 책임이 있으며, 영역의 한계는 육체적이든 감정적이든 <아야!> 선(OUCH! line)에 의해 명시된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자신의 영역, 아야!선을 상대방이 명확하게 알도록 해주는건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해야만 하는 책임이라는 거예요. 이래서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나의 영역의 한계, 아야!선”을 예기할 수 있는 용기, 그로 인해 야기될 관계의 변화와 위험(Risk)도 기꺼이 감수하려는 용기가 필요해요. “성장에는 반드시 모험/위험이 따른다”고 하는거 다 인정하시죠?!


6장에서는 “자아 존중을 통해 선택할 대안을 탐색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예요. 이때 유일한 해결방안이라고 믿는 것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창조적인 대안들”을 탐색하는 것이 “창조적 관계”로 나아가는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어요. 우리는 각자 “자기 방어”에 집중된 “의미 체계”를 가지고 있다보니 사물이나 사건을 볼 때 다면적이고 다양하게 볼 줄 모르고 하나의 단면만을 전체인양 보는 한계가 있다는 거예요. 

부록에 ‘가정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일어날 법한 갈등 상황을 가정하고 이 책에서 소개한 의사소통과 문제해결 방법을 적용해 본 사례가 나와요. ‘어, 이거 내 얘기네’ 싶은 내용들인데요, 나라면 어떻게 대응을 했을지 생각해보고 이 책에서 소개한 방법대로 했을 때와 비교를 해보면 차이점과 효과를 극명하게 대비해서 느낄 수 있을거예요.  


부록에 힘겨루기/ 갈등 해결을 위한 10가지 점검 사항(Check list for problem solving)이 있습니다. 각 항목별로 상세한 설명까지 있으니 차분하게 읽어보고 실생활에 적용을 해보면 분명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인간 만남 그리고 창조 (Human BE-ing by William V. Pietsch) : Check List for Problem Solving

 


나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며 보호하고, 또 내 주위의 가족, 친구, 동료를 더 잘 이해하고, 건강하고 성숙하게 의사소통하면서 창조적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함께 성숙해나가길 원하는 모든 과정으로서의 인간(Human BE-ing)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만약 당신이 힘겨루기를 멈추고 
상대방과 당신의 존재를 존중하고 사랑하게 된다면, 
당신은 만남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을 허물고 
창조적 인간관계의 건설자가 될 수 있다” 

- William V. Pietsch -

 

 

정말 사랑스런 책이예요! 

나와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으며,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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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심리 치유 에세이, <천 개의 공감> (김형경 지음, 한겨레출판, 2006) 

 

저는 김형경씨의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2001)> 과 심리 에세이 <사람 풍경 (2004)>, <천 개의 공감 (2006)>를 30대 초반에 정말 재미있게 여러번 읽었답니다. 자전적 소설이었던 <세월 (1995)>은 저자의 고통이 전해져서 인지 너무나 힘들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집을 이사할 때마다 수십~수백 권의 책들을 버리곤 했는데요, 아마 저자의 책들도 버렸는지 지금은 찾을 수가 없고  <천 개의 공감> 만 용케 책꽂이에 살아 남아서 올 해 다시 읽어봤어요. 

 

이 책 <천 개의 공감>은 소설가 김형경씨가 한겨레신문의 “형경과 미라에게” 코너에서 독자들의 상담 질문에 저자가 답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어낸 “심리 치료 에세이” 입니다.(소설이 아니예요!)

 

천 개의 공감, 김형경 저

 

소설가가 왠 ‘심리 치유 에세이’란 말인가 하고 의아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자기소개 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을 공부하고 자신을 치열하게 분석해본 소설가 만이 쓸 수 있는 글, 책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최고의 과학자가 일반 대중을 위한 과학 교양서를 쓸 수 있는 것 처럼요.)

 

 “소설가라는 직업은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는 영역의 일이라 믿으며 이십대 중반부터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에 관한 책을 읽어왔다. 지금 책장에는 그 분야의 책이 4백여 권쯤 꽃혀 있는데 그 중에는 한두 장만 읽은 책도 있고 서너 번쯤 반복해서 읽은 책도 있다. 삼십대 후반에는 실제로 약 1백회 가량 정신분석을 받았고, 그 후 여행과 일상생활 속에서 ‘잔존 효과’라 할 만한 긴 자기 분석의 시간을 보냈다”

 

독자의 상담 요청 글들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불만과 화를, 그리고 다른 이와의 관계 속에서 겪는 갈등과 상처를 마주치게 될거예요. ‘어, 이거 내 얘긴데…… 나같은 사람이 여기도 있었네.’ 하면서요. 그러면서 저자는 어떻게 상처와 갈등의 근원이 되는 심리에 대해서 분석을 해보고, 이에 대한 조언과 처방도 해주고 있기에 특히 자신에게 울림이 있는 상담 요청 글이었다면 숨을 죽이면서 몰입해서 읽게 될거예요. 

 

목차

  1. 자기 알기

  2. 가족 관계

  3. 성과 사랑

  4. 관계 맺기

 

 

1. 자기 알기

천 개의 공감 - (1) 자기 알기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 괴테 -

 

모든 문제의 시작과 핵심은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서 느끼고, 그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아는 것”일 거예요. 저자는 우리 안의 “과도한 의존성”을 살펴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신분석은 “주도적으로 행해야하는 지난한 과정”이라며 중도에 포기하지 말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문제도, 해결책도 나의 내부에 있으니” 타인에게 너무 큰 것을 기대하지 말고 자신이 선택하고 반응하는 삶의 주도권을 가져오라고도 해요. 이때 “누군가가 하는 말과 행동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점을 깨닫고 유아기나 성장 과정에서 결핍되었거나 억압되었던 욕구가 특정 패턴으로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게 고착화된건 아닌지 깊이 들여다보라고 해요. 

 

또 하나, “타인의 싫은 점은 자신의 내면”이라고도 해요. 놀랍게도 말이지요. “치유의 핵심은 직면하기”라고 하는걸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걸 ‘직면할 수 있는 용기’, ‘타인의 싫은 점이 결국은 나의 그림자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이겠지요. 

 

 

2. 가족 관계

천 개의 공감 - (2) 가족 관계

 

한 인간의 인격과 가치관, 자신에 대한 인식, 세상올 대하는 시선을 결정짓는 가장 큰 영향 요소를 꼽으라면 단연 가족일 것입니다. 저자는 “부모형제는 우리의 정신을 형성하는 자양분”이라고 말해요. 그러면서 유아기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서는 프로이드 심리학을 차용해서 “엄마와 딸은 근원적 갈등 관계”, “아버지와 아들은 신화적 살해 관계”, “형제자매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관계”라고 해요. 원천적으로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 관계가 내재된 듯해서 왠지 불편하지요? 

 

아래는 “중독성은 중독성끼리 의존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독자의 상담글에 저자가 남긴 진단의 한 문장인데요, 전 소름돋더라구요. 

 

“사실 언니와 형부는 처음부터 신경증끼리 서로 알아보고 만났을 것입니다. 두 분 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중독 성향보다 더 깊은 내면에 오래된 결핍이 존재하며, 그 강도 역시 비슷할 것입니다.” (p140)

 

이게 어찌보면 악순환의 되먹임 같은거 잖아요. 둘 중에 한명이 자신의 충족되지 않은 욕구와 중독성을 자각하고 이 악순환 고리를 끊겠다는 용기를 내지 않는 한 병적인 관계가 더욱 강화되는 악순환이요. 

 

가족 간의 역학구도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나름의 심리적 전략을 채택하게 되고, 그걸 의식하지 못하면 평생을 그 패턴 속에서 의존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군요. 가족 관계에서 쌓인 갈등, 불만, 상처에 대해서도 직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해요. 사과할 것이 있으면 진심으로 가족에게 사과하고, 자신의 유아기때의 감정을 돌아보고, 보듬어주고, 가족들과 그에 대해 성인이 되었더라도 어릴적 충족되지 못한 욕구와 감정에 대해 얘기해보라고 해요. 편지를 써보거나 협상을 할 수도 있고, 혼자서는 힘들면 상담을 받으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구요. 저자는 종교의 치유 능력에 대해서도 우호적으로 말하며 기도나 명상도 권하고 있어요. 

 

 

3. 성과 사랑 

 

천 개의 공감 - (3) 성과 사랑

 

저자는 “사랑과 성욕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태어납니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세번째 챕터의 제목이 ‘사랑’이 아니라 ‘성과 사랑’인 것은 그만큼 ‘성’과 ‘사랑’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일거예요. 

 

“사랑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면서 뜨거운 열정이나 편안한 친밀감 뿐만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도 기꺼이 짊어질 수 있을 때에야 비로서 진정한 그리고 성숙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해요. 그리고 “피학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은 사랑이 아니”고, “가학적이고 잔인한 사랑은 자신을 파괴한다”고도 말하고 있어요. 책임과 의무는 지지 않으려는 쿨한 사랑,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의존하는 가짜 사랑의 관계는 반복적으로 빠지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서글프고 무서운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어요. 

 

“어느 쪽이든, 나쁜 여자/나쁜 남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비슷한 유형의 상대방을 만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컴플렉스가 왜곡된 신호를 보내어 저쪽의 콤플렉스를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p191)

 

이처럼 사랑을 가장한 병적인 관계의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어렸을 적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실마리가 있을 것이라고, 부모와 자신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해보라고 권하고 있어요. 혹시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생존전략으로 익힌 심리적 방어기제를 사랑하는 이에게 전이, 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해야 한다고요. 

 

“욕망은 본질적으로 충족될 수 없다”거나 “남녀의 성적 욕망은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 남녀가 서로 이해를 하고 있다면 상대방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욕구를 하지 않을 수 있을거예요.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여유와 관용이 싹트고, 또 성숙한 관계로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겠지요. 

 

“남성과 여성은 사랑 행위를 인식하는데 이처럼 차이가 납니다. 그리하여 남성의 삶은 성적 욕망에 고착되어 있는 듯 보이고, 여성의 삶은 로맨스에 고착되어 있는 듯 보입니다. 남성은 자주 성적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까봐 염려하는 거세 불안에 시달리고, 여성은 자주 애착의 감정을 박탈당할지도 모른다는 분리 불안에 시달립니다.”(p232)

 

 

4, 관계 맺기

 

천 개의 공감 - (4) 관계 맺기

 

네번째 챕터 “관계 맺기”의 핵심은 “승-승의 관계는 이익과 즐거움을 공유하면서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못나고 부족한 면을 사랑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시작을 해요. 자신의 좋고 긍적적인 면뿐만이 아니라 못나고 부정적이고 숨기고 싶은 면까지 모두 사랑하는 것이 관계 맺기의 시작이라는 것이지요. 

 

무라카미 류가 에세이 제목으로 “자살보다는 섹스”를 썼다고 해요. 뭔가 장난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데요, “생존 욕망과 죽음 욕망은 한 몸이다”는 정신분석학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주장에 대한 문학적 표현이라고 하네요. 

 

화와 분노에 대한 내용도 있어요. 자신의 내면에 쌓인 화와 분노는 자신을 죽이는 독과 같으니 단계적으로 표현하라는 조언도 있구요, 반면에 “화는 보살핌을 간절히 바라는 자신의 아기다”(틱낫한, p276)라는 말처럼 타인의 화에 대해서는 사랑을 갈구하는 신호로 해석하라는 내용도 있어요. 일면 상충되는 듯 하면서도 일리있는 말 같아요. 

 

“거절해도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라는 제목의 내용은 제가 거절을 잘 못하다 보니 주의깊게 봤습니다. 저자는 상대방의 자기애를 배려해서 “중립적이고 완곡한 말투로”, 뭔가 나중에라도 해줄것처럼 기대를 줄게 아니라 “처음에 거절하라”고 조언해주고 있어요. 

 

“중년의 문턱에서 생의 목표를 수정합니다”로 이 책은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맞닥드렸을 때 어떤 삶을 살았노라고 기억되길 원하는지 깊이 고민해보고, 남은 후반전의 인생을 재설계해보라는 거예요. 내가 받은 천복을 감사하며, 남과 사회, 공동체로 흘려보내고 나누고 베풀고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를 그려보는게 중년의 위기를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구요. 

 

 

 

<비폭력 대화 (마셜 B. 로젠버그 저)> 책에 보면 프랑스 작가 사몬 베유(Simone Weil)이 말하길,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할 수 있는 능력(즉, 공감)은 매우 드물고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사실 기적이다.” 라고 했어요. 이 책의 제목 <천 개의 공감>은 그런 면에서 무척 대범한 제목이고, 별명으로는 <천 개의 기적> 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거 같아요. 

 

책 머리에서 소설가인 저자는 <천 개의 공감> 책이 <사람 풍경 (2004)> 에 이은 두번째 외도라면서, 이 책이 아마도 자신의 방어기제의 산물일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어요. (p6)  마지막 문장이 왠지 모르게 저한테는 위안이 되는거 있죠. :-)  

 

 

아마도 이 책은 제가 하는 말이 옳다고 믿는 나르시시즘, 틈만 나면 잘난 척하려는 열등감, 자신의 삶에서 실천해야 하는 덕목들을 타인에게 충고하는 투사 방어기제의 산물일 것입니다. 사실 이 책 전체가 지식화 방어기제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설 쓰기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불안과 좌절감으로부터 뒷걸음질 치는 회피 방어기제의 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의 모든 꼭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자에게 더 울림이 큰 책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물론 남성에게도 자신의 내면 심리를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또 여성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동반자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에 대해, 상대에 대해, 인간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강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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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마일 (The Green Mile, 1999)
프랭크 다라본트 (Frank Darabont) 감독/ 각본
스티븐 킹 원작
톰 행크스, 마이클 클라크 덩컨 외 출연

 

영화 그린 마일 (The Green Mile, 1999)은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만든 영화입니다. 20여년 전에 재미있고 인상깊게 봤었던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4)’과 ‘그린 마일(The Green Mile, 1999)’이 동일한 원작자와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안 것은 올 해 초에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라는 책을 읽으면서 였습니다. 너무 놀랍지 않나요? 재능있는 소설가와 영화 감독의 만남이 인류에 선사할 수 있는 이런 멋진 선물이라니요!

 

20여년 전에 봤었던 그린 마일 영화는 포스터에 나오는 두 명의 영화 주인공(간수 톰 행크스와 죄수 마이클 클라크 덩컨) 얼굴과 슬펐었다는 느낌만 기억날 뿐이었구요, 저는 그린 마일 영화를 마치 처음보는 것처럼 새롭고 재미있게 봤습니다! (파우스트가 “망각”을 두고 신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이라고 했던가요?!)

 

(* 주의 사항: 여기서 부터는 그린 마일 영화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아직 영화를 안 보신 분은 스포일러 당하기 싫으시면 여기서부터 읽기를 삼가주시고, 영화를 다 본 후에 읽으시길 권합니다. 저는 분명히 경고 했습니당~ >_<*)

 

“Last Mile” 은 사형수가 사형을 당하기 전에 감옥에서 처형대까지 걸어가는 복도를 말한다고 해요. 영화에 나오는 사형수 감옥 E동은 복도가 녹색이어서 사형수가 마지막으로 걷게 되는 Last Mile을 “Green Mile”이라고 부른데서 이 영화의 제목이 나왔답니다. 

 

이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7개의 주제로 풀어보았습니다.

 

 

(1)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4)’과  ‘그린 마일(The Green Mile, 1999)’

 

그럼, 시작을 동일 원작에 동일 감독의 두 작품을 비교해보는 것으로 열어볼까요?

 

The Shawshank Redemption, The Green Mile

 

‘쇼생크 탈출’과 ‘그린 마일’ 두 영화 모두 감옥, 간수와 죄수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고, 1900 년대 초중반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점은 비슷해요. 

하지만 다른 점도 많이 있어요. ‘쇼생크 탈출’은 리얼리티적이고, 억울한 누명을 쓴 죄수(앤디, 팀 로빈스 분)를 주인공으로 해서 ‘자유(freedom)’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그린 마일’은 환타지적인 장면이 여럿 나오고,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간수(폴 에지콤, 톰 행크스 분)를 주인공으로 해서 ‘자비(mercy, kindness)’, 그리고 죄없는 죄수(존 커피, 마이클 클라크 덩컨 분)를 통해서 ‘기적, 죄와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2) 죄없는 죄수 John Coffey(J.C.)와 죄없는 어린양 Jesus Christ(J.C.)

 

병든 자를 치유하는 기적의 능력이 있는 존은 자신의 이름이 “커피(Coffee)”와 발음은 같고 스펠링은 다른 “John Coffey(J.C.)” 라고 천천히 또박또박 소개합니다. 이는 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죽은 자도 살리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 J.C.)” 와 같은 이니셜을 염두에 두고 작가가 만든 이름일 것 같아요. 

 

그 당시 가장 천대받던 흑인이었던 존이 감옥에 올 때 사형수로서 “Dead man walking” 이라는 모욕을 당합니다. 말구유에서 가장 낮은 자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종교재판에서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으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이라는 모욕을 당하며 골고다 언덕을 오릅니다. 

 

영화의 주인공 John Coffey와 Jesus Christ 모두 죄는 없지만 죄인(살인, 신성모독)의 신분이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존은 다른 사람의 죄를 누명을 쓰고 물뭍은 스펀지를 머리 위에 얹고 감옥에서 전기의자에서 사형을 당하고,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구원하기 위해 머리 위에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서 피흘리는 어린양이 되어 희생됩니다. 

 

존은 어두운 것을 무서워하며 감방의 복도 불이 항상 켜져있기를 바라고, 전기의자 사형을 당할 때는 어둠이 무섭다면서 두건을 씌우지 말아달라(“Don’t put me in the dark”)고 합니다. 예수님은 “빛이요 생명”이신 주님,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지요. 

 

간수 폴은 사형수 존이 죄가 없음을 알지만 사형을 면하게 할 방법이 없자 괴로워하면서 존에게 물어봐요. 

폴: “나중에 내가 죽어서 하느님을 만났을 때 왜 당신의 기적을 죽였냐고 물어보시면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존: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고 하세요.”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장 40절)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과 기적을 행하는 인간 존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습니다만, 위에 비교한 내용을 살펴보면 원작가 스티븐 킹은 존을 묘사할 때 예수님을 염두에 두었을것 같습니다.  

 

 

(3) 선과 악

 

인간의 본성은 선할 걸까요, 아니면 악할 걸까요? 그도 아니면 백지로 태어난 인간이 사회화 과정 속에서 선과 악의 비중이 사후적으로 형성이 되는 것 일까요? (성경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이 영화에서 보면 한 인간이 속한 부류가 간수의 신분이건 혹은 죄수의 신분이건 간에 선한 사람도 있고 싸이코 패스, 쏘시오 패스도 섞여 있어요. 특히 이 영화에서 악한 포스를 풀풀 풍기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간수 ‘퍼시’(더그 허치슨 분)와 살인마 죄수 ‘와일드 빌’(샘 록웰 분)이 나와요 (두 명 모두 연기를 너무나 잘 했어요! 둘 중에 한 명이라도 꿈에라도 나타날까봐 무서울 지경이예요). 

 

The Green Mile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모두들 선과 악한 심성 모두를 우리는 가지고 있잖아요. 선과 악 중에서 어느쪽에게 먹이를 주고 북돋아 주느냐가 중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 퍼시와 델의 서로 상처주고 상처입히는 과정을 보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하게(be kind)” 그리고 예의를 갖춰서 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해봐요. 퍼시가 델의 손가락에 골절을 입혔고, 와일드 빌에게 농락을 당하고 바지에 오줌을 싸버린 퍼시를 델은 놀리고, 다시 델에게 모욕당했다고 느낀 퍼시는 델의 사형집행일에 스펀지에 물을 뭍히지 않아서 델이 끔찍한 고통 속에 죽어가게 해요. 상대가 그 누구이던지 간에 말과 행동은 예의를 갖춰 친절하게 하고 볼 일이예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그 말과 행동이 돌고 돌아서 결국에게 나에게로 향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봐요. 선이든 악이든 전염성이 강한 것 같아요. 

 

퍼시는 간수로서 사형수의 전기의자 사형을 집행을 한 후에 브라이어 리지 정신병원으로 전근을 가기로 했지만, 결국엔 와일드 빌을 권총으로 쏴 죽인 후에 넋이 나가서 정신병자로서 브라이어 리지 정신병원으로 가게 되지요. 뿌린대로 거둔다고 했던가요! 맨 정신(?)으로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다면 약자인 환자들을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꼈을 것 같은 퍼시를 알기에 존이 미리 손을 쓴 거 겠지요? (존은 인류를 구원할 수도, 죽은 이를 되살릴 수는 없지만, 죄와 악을 벌하고 정신병원 환자들에 대한 배려의 선물을 주고 떠납니다.)

 

 

(4) 백인과 흑인

 

영화는 아직 유색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30년대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렇다보니 흑인 이란 이유만으로 “분명히 두 여자 아이들을 죽인 살인범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에 찬 범죄 혐의를 받고, 제대로 된 변호도 받지 못한 채 사형 판결을 받게 됩니다. 간수 폴은 존의 성품을 알아보고 존의 변호사를 찾아가 사건에 대해 물어보는데요, 이때 존의 변호사가 했던 말이 1930년대 남부 지역의 백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흑인에 대한 인식을 표현한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The Green Mile

 

존 커피의 변호사 버트: “저희 집에는 잡종 개가 한마리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개가 제 아들을 물어서 아들은 한쪽 눈을 실명했어요. 흑인은 잡종개와 같아서 주인이랑 잘 지내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해서 주인을 물을지 몰라요. 접종 개가 제 아들을 물었을 때 저는 추호의 주저함도 없이 총으로 개의 머리를 쏴버렸지요” (기억이 정확하지 않으므로 실제 대사는 조금 다를 것임. 대략 이런 내용이었음.)

 

존이 두 여자 아이를 껴안고 울부 짖으면서 "I couldn't help it!" 은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예요. 첫째는 말 그대로 "나는 이 두 여자 아이들을 도와줄(help) 수 없었습니다"의 뜻이고, 이게 바로 존 커피가 하고자 했던 말이예요. 두번째로는 "나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는) 어쩔 수(avoid) 없었습니다." 라고도 해석할 수 있어요. 두 어린 여자아이의 아빠와 백인 보안관, 주민들은 아마도 이 두번째 의미로 존 커피가 울면서 말한 "I couldn't help it"을 받아들였을 거예요. 만약 존 커피가 백인이었고, 깨끗한 옷에 말쑥한 외모였다면 어땠을까요? 

 

 

(5) 죄와 벌

 

영화에서는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 교도관이 근엄하게 선포해요. “법에 기반하여 저명하고 권위있는 재판관 000와 배심원들의 정의로운 재판 결과에 의해 죄수 000 에게 사형이 구형되었으며, 때가 되었기에 사형을 집행합니다.” 라구요. 뭔가 엄청난 권위와 신뢰 하에 판결이 된 듯한 인상을 주지만 우리 인간은 완벽하지 않잖아요. 

법은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의원들에 의해 사회적 합의를 반영하여 만들어지고 또 시대에 따라 변경이 됩니다. 사형제도의 범죄 예방 효과, 윤리적이고 인도적인 측면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거우며, 국가별로도 사형제도의 존치와 집행 여부에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The Green Mile

 

이 영화에서는 전기 의자 사형집행 장소에 피해자와 관련된 사람들이 참관인으로서 전체 사형집행 과정을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특히 델이 사형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델이 마지막으로 하는 말에서 “제가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저의 죄를 되돌리고 싶지만 이미 때가 늦어서 그럴 수가 없습니다”(정확한 대사는 아님. 대략 이런 내용) 라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피해자 가족은 가해자 델이 처참한 고통 속에 죽어가면 좋겠다고 저주를 퍼붓습니다. 그리고 델은 퍼시가 스펀지에 물을 적시지 않은 채로 사형을 집행하는 바람에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 속에 죽어가게 되고, 참관인들은 아비규환이 되어 구토를 하면서 처형장을 빠져나가려 합니다. 용서를 구하는 죄인이 있고, 가해자와 다를 바 없는 잔인성을 표출하는 피해자 가족들이 있으며, 법의 이름으로 사형수를 사형하는 국가의 체제가 있습니다. 죄가 없었던 존 커피는 사형이 집행되었고, 되돌릴 수 없는 다리를 건너 죽음의 세계로 건너갔습니다. 

 

죄와 벌, 용서와 구원은 종교의 영역에서만 가능한 것일까요? 

 

 

(6) 죽음과 영생

 

죽음은 사람에게 있어 저주일까요? 그리고 영생은 축복일까요? 이 영화에서 폴은 존으로부터 신비로운 능력을 전달받아서 108세가 되었는데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서커스를 할 줄 아는 쥐 징글스도 64년이 되었는데도 살아있는 데요, 쥐의 수명이 10년이 안되는 것을 고려하먄 폴이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더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병장수”를 누리고 있는 폴은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 자식, 그리고 요양원의 친구들이 하나 둘 씩 죽음을 맞아 곁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계속 마주해야 한다며 “죄없는 존을 죽인 벌을 받고 있는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영생은 저주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을 의미있게 하고 또 “중년의 위기” 이후 후반기의 삶을 설계할 때 나침반이 되어주는 것을 꼽으라면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존은 자신이 죄가 없지만 사형을 받아들이며 이렇게 말해요. 힘들고 지친 영혼에게 죽음은 마지막 안식처가 되어주기도 하나봅니다. 이 장면 너무 슬퍼요.  

 

존 커피: “전 이제 끝내고 싶어요 전 지쳤어요. 비맞은 참새마냥 홀로 떠도는 것도 지쳤고, 인생을 나눌 친구가 없는 것에 지쳤고, 사람들의 추한 작태를 보는 것에 특히 지쳤고, 매일 세상속에서 느끼고 듣는 고통속에서 지쳤고, 그래서 항상 머리속에서 유리가 깨지는 것 같아요."

 

 

(7) 지옥과 천국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는 지옥인 걸까요? 우리가 종교에 귀의해서 구원받아야만 죽은 후에 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일까요? 

폴이 존에게 사형 당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어봐요. 이때 존은 한평생 영화를 본 적이 없다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겠냐고 부탁을 해요. 존과 간수들이 감옥에서 같이 본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의 처음 시작 부분에서 요양원에서 노인 폴이 친구 일레인과 함께 우연히 TV에서 보고나서 오열했던 바로 그 영화예요. 

 

뮤지컬 영화 “톱 햇(Top Hat, 1935)” 에서는 사랑에 빠진 연인이 춤을 추면서 “당신과 함께 있는 여기가 바로 천국”이라고 노래하는 장면이 스크린에 비추고 있고, 사형을 앞둔 존 커피도 역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지금 여기가 천국이예요”라고 말해요. 

 

Musical "Top Hat"
The Green Mile, John Coffey

 

예수님도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7:21) 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분들이 언제, 어디에 계시든 “바로 지금 여기가 천국” 이길 소원합니다. 

 

 

상영 시간이 3시간이 조금 넘는 영화인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3시간 동안 슬프지만 마음 따뜻해지고 싶은 분에게 영화 그린 마일을 권합니다. 또 누가 알겠어요?  그린 마일 영화를 보면서 존 커피가 되뇌었던 "바로 지금 여기가 천국이네요!" 가 여러분의 입에서 나올런지요.

 

비록 코로나로 인해서 밖에 잘 나가지는 못한다지만, 집에 있으면서 영화와 함께 나날이 행복하시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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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 (NVC, Nonviolent Communication), 일상에서 쓰는 평화의 언어, 삶의 언어

마셜 B. 로젠버그 지음,

캐서린 한 옮김,

한국NVC센터

 

비폭력 대화, 마셜 B. 로젠버그 지음

 

15년 전쯤에 퇴근 후에 저녁에 석 달 정도 상담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 책도 커리큘럼 중의 하나여서 이 책 읽으면서 비폭력대화 연습을 했었고, 몇 달 간은 일상 생활 속에서도 잘 사용하면서 지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까맣게 잊고 살다가 이번에 책을 다시 보니 ‘아, 맞아. 이렇게 대화했어야 하는데…’ 싶은거 있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정말… ㅠ_ㅠ 

집 여러번 이사할 때마다 책 수십~수백권씩을 버리곤 했었는데요, 이 책도 그때 아무 생각없이 버렸었나봐요. >_<

 

그래서 말인데요, 이 책은 눈에 잘 보이는 책꽂이에 꽂아놓고, 1년에 한두번씩 반복해서, 잊을만 하면 계속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다시 상기하고, 실생활에 계속 습관이 될 때까지 사용하고 해야 할거 같아요. 그리고 온 가족이 돌려가면서 같이 읽고, 서로 비폭력대화로 대화하면서 자극도 주고요. 

 

교육부에서 초/중/고등학교에서 정규교육 커리큘럼에 ‘비폭력 대화’를 정기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고려해보면 좋겠어요. 인간이란 결국 사회적 동물이고, 사람들 간의 관계는 대화 속에서 싹트고 무르익는 것이잖아요. 서로 상처주는 대화보다는 평화와 화해, 공감과 이해가 가득한 대화를 하는 방법만큼 중요한 삶의 기술(?)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이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것이다. 오늘날 이 세상이 무자비하다면, 그것은 우리의 무자비한 태도와 행동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변하면 우리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은 우리가 매일 쓰는 언어와 대화 방식을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p7) 

 

그럼, 이 책에서 저자 마셜 B. 로젠버그 박사가 알려주는 서로 마음으로 주고받는 관계를 이루기 위한 비폭력대화 모델의 네 가지 요소에 대해서 한번 알아볼까요? 

(이번 포스팅은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인용하면서 내용을 소개하게 되네요. 

 

(1)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2) 느낌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기

(3) 욕구를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에 대해 책임지기

(4)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부탁하기

 

 

(1)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는 ‘평가’와 섞지않는다는 뜻입니다. 관찰에 “평가”가 섞이는 순간 상대방은 이를 “비판”으로 받아들이고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후에 제대로된 소통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래의 예는 책에 소개된 “평가”와 “관찰”의 비교 예인데요, 여러분의 대화 패턴은 어디에 속하는지 한번 보실래요? 

 

평가 : “너는 내가 원하는 건 좀처럼 하지 않아.”

관찰: “최근에 너는 내가 제안한 세 가지를 다 하기 싫다고 했다.”

 

 

(2) 느낌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기 

 

문제는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자신의 또는 상대방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특히, 저를 포함해서 한국의 남자들은 자기의 감정과 느낌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말로 표현하는걸 힘들어 하는 것 같아요. 아래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느낌말 목록’ 인데요, 찬찬히 시간내서 읽어보시고 매 순간마다 ‘지금 내 느낌은?’ 이라고 질문을 던지고 답해보는 연습을 해보면 좋을거 같아요. 

 

[ 느낌말 목록, 보편적인 욕구 목록 ]

비폭력 대화 (by 마셜 B. 로젠버그) - 느낌말 목록, 보편적인 욕구 목록

 

 

그리고 느낌과 생각을 혼동해서 ‘생각’을 마치 ‘느낌’인 것인냥 표현하는 것도 조심해야 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어요. 아래의 예는 ‘생각’을 ‘느낌’인양 잘못 표현한 것인데요, 얼핏 들으면 ‘아, 저게 느낌이 아니라 생각이었구나’를 눈치 못챌 수도 있어요. 

 

“내가 오해를 받고 있다고 느껴져.” 

여기서 ‘오해를 받고 있다’는 말은 실제 느낌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평가한 말이다. 이 상황에서 느낌은 ‘걱정스럽다’ 또는 ‘괴롭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79)

 

 

(3) 욕구를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에 대해 책임지기

 

 

인간은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 에픽테토스, 그리스 스토아학파 철학자-

듣기 힘든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네가지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해요. 

 

첫째, 자신을 탓하기. 

둘째, 다른 사람을 탓하기. 

셋째, 자신의 느낌과 욕구 인식하기. 

넷째, 다른 사람의 느낌과 욕구 인식하기. 

 

눈치 채셨겠지만, 자신이나 또는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은 건강한 방법은 아니며, 대신 “자신이 필요한 것을 표현하면 그 욕구가 충족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사람의 느낌과 욕구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비난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은 자신의 욕구를 돌려서 표현하는 것이다” (p93) 라는 통찰 가득한 문장, 진정 소름 돋지 않나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과도하게 반응한다면 그건 바로 자신의 그림자이고, 자신의 결핍된 욕구를 상대방은 남 눈치안보고 표현하고 누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의 욕구에 대한 거울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시발점이라는 것이지요!

 

이 책 p97의 소제목이 “욕구를 표현하는 것의 어려움과 욕구를 표현하지 못했을 때의 고통” 이예요. 눈에 쏙 들어오고,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소제목이예요. 이런 경험 모두 다 가지고 있지 않나요? 다른 사람의 눈치 보고 또 미움받는 것이 두려워서 나의 욕구를 표현하지 못하고, 나중에 제대로 표현못한 나에 대해 머리속으로 그 상황을 계속 떠올리면서 후회하고 탄식하는 그런 모습이요. 

 

 

(4)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부탁하기

 

NVC의 네번째 요소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해서,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언어로 부탁하기”예요.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구체적인 말로 표현 안해도 상대방이 나의 욕구를 알아줄 것이라고 예상하고 기대하잖아요. 그런데 그거 아니라는 거예요! 대놓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긍정적이고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언어”로 표현하고 부탁하라는 것이예요. 만약 당신이 삶을 더 풍요롭고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말이지요. 저는 이 챕터 읽으면서 부부 사이이 관계에서 서로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기로 마음먹게 되더라구요. 부부라고 서로의 욕구에 대해서 잘 알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 말을 안하는데 어떻게 제대로 알겠어요. 

 

단, “부탁”과 “강요”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해요. 만약 “듣는 사람이 자기가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비난이나 벌을 받을 것이라고 믿게 되면 그 부탁은 강요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해요. (p134) 상대방이 “부탁”이 아니라 “강요”를 받는다고 느낀다면 “복종” 아니면 “반항”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해요. 자, 당신이 부탁을 했는데 상대방이 거절을 했을 때 만약 당신이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비난하거나 하면 그땐 부탁이 아니라 강요가 되는거니깐요, 조심하셔야 해요. 상대방이 부탁을 거절한 자유가 있다는 것 잊지 마세요. 

 

 

(5) 공감으로 듣기

 

“공감이란 다른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것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해요. (p155). 공감으로 듣는 것이 얼마나 어렵냐 하면요, 프랑스 작가 시몬 베유는 말하길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드물고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다. 사실 기적이다. 스스로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어요.(p156)

 

이 챕터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과 공감으로 듣기를 방해하는 장애물들 몇가지(p157)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 내용들 읽으면서 저 소름돋았어요. 왜냐하면 이것들이 모두 다 제가 평상 시 참 잘도 사용하는 표현들이거든요. 오 마이 갓! ㅠ_ㅠ 

 

- 조언하기: “내 생각에 너는 ~해야 해.” “왜 ~하지 않았니?”

- 한술 더 뜨기: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나한테는 더한 일이 있었는데…….”

- 가르치려 들기: “이건 네게 정말 좋은 경험이니까 여기서 배워.”

- 위로하기: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최선을 다했어.”

- 다른 이야기 꺼내기: “그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데…….”

- 말을 끊기: “그만하고 기운 내”

- 동정하기: “참 안됐다. 어쩌면 좋으니.”

- 심문하기: “언제부터 그랬어?”

- 설명하기: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 바로잡기: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거야.”

 

그러면서 저자는 공감으로 듣는 것을 방해하는 우리의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더 좋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가 온 존재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방해한다”고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어요. 특히, 회사에서 논리적이고 효율적인 문제해결, 솔루션, 업무중심적 사고로 하루종일, 일년 내내 강화학습을 하는 남자들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할거 같아요.(네, 제 얘기입니다요! ㅠ_ㅠ)

 

 

이후의 챕터들도 내용을 짧게라도 소개하자니 포스팅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제목만 소개를 하자면요, 

- 제 8장: 공감의 힘

- 제 9장: 우리 자신과 연민으로 연결하기

- 제 10장: 분노를 온전히 표현하기

- 제 11장: 보호를 위해 힘을 쓰기

- 제 12장: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다른 사람을 돋기

- 제 13장: NVC로 감사 표현하기

 

들이예요. 어때요, 읽고 싶은 호기심이 무럭무럭 솓구치지 않나요? 꼭 제가 이 책 영업사원이 된거 같네요. ㅋㅋ

 

이 책의 각 챕터의 마지막에 ‘비폭력 대화 사례’도 나오고, ‘연습문제’도 있어서 책 내용을 복습할 기회도 준답니다. 저자의 생각을 엿보기 전에 꼭 직접 체크해보고 저자의 생각과 비교해보세요. 

 

[에필로그] 강원도 양양 서피비치로 여름 휴가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와이프와 딸에게 버럭 화를 낸 적이 있어요. 그때 와이프가 저한테 한 마디 하더라고요. “치이~ 비폭력 대화 책 읽으면 뭐해. 이렇게 버럭 화낼 거면서…”  이 말 듣고 많이 부끄러웠어요. ㅜ_ㅠ 가장 가까운 가족 간에 비폭력 대화 방식으로 마음을 집중해서 대화하는게 쉬운건 아닌것 같긴 해요. ^^;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습관이 되고 자연스레 입에 착 달라붙게 해야 할텐데요. (혹시 이게 자신없으면… 저처럼 한소리 듣기 싫으신 분은 이 책은 가족들 눈에 안띄게 몰래 읽으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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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 2003)’ 라는 고전(?)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원래 제 블로그에 ‘독서일기’라는 카테고리에 가끔씩 책 읽고 소감을 썼는데요, 이번에 처음으로 영화 얘기를 써봐요. (이 참에 ‘책이랑 영화랑’으로 블로그 카테고리 이름도 바꿨어요.) 

 

굉장히 오래된 영화이기도 하고, 예전에 포스터를 봤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있었는데요, 영화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2004년도에 아카데미 각본상과 골든 글로브 각본상을 수상했던 영화네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

 

(이 블로그 포스팅에는 스포일러가 들어있으니 아직 이 영화를 안보신 분은 여기서부터는 포스팅 읽기를 중단하시길 권합니다.)

 

영화의 줄거리를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외로운 기혼 남녀가 썸타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예요. 소설책 ‘메디슨카운티의 다리’ 같은 그런… 내용이 어찌보면 맨날 드라마에서 보는 뻔하다면 뻔한 내용인데요,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예요. 그래서 각본상을 두군데서나 탔겠지요? 

 

영화는 밥 해리스 (Bill Murray) 가 위스키 광고를 촬영하러 일본에 출장온 장면에서 시작을 해요. 입국을 환영하러 온 여러명의 일본사람들로부터 명함을 건네받으면서 인사하는,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낯선 첫만남에서 시작해서, 시차로 호텔에서 잠을 못자고 뒤척이지요. 광고를 촬영할 때 감독이 일본어로 길게 샬라~ 샬라~ 연기 주문을 하는데요, 통역사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세요” 라고 통역을 해줘요. 그러자 밥이 “그게 다예요?” 라고 되묻지요. 그리고 “고개를 어느쪽부터 돌려요?”라고 밥이 한마디 짧게 물어보자 통역사가 일본어로 감독에게 또 길게 일본어로 자기들끼리 블라~블라~해요. ㅋㅋ 일본어를 못하는 밥 입장에서는 “Lost in Translation” 인거고, 당황스러웠을거 같아요. 이국땅에서 외지인으로 머물다 보면 “우리는 여기에 속하지 않아요.”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고, 그래서 고향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지지요.

 

호텔에 마사지사가 와서는 일본이 특유의 영어 발음을 하는데 밥이 못 알아들어요. 광고 사진사가 영어로 말하는데 역시 밥이 발음을 잘 못알아 듣지요. 병원에서 벤치에 앉아 옆에 있는 일본인 할머니와 영어로 얘기하는데 또 발음을 잘 못알아들어요. “Lost in Translation” 인데요, 웃기기도 하면서 또 영어가 원어가 아닌 저의 처지가 오버랩이 되면서 웃프기도 해요. (영어로 말했는데 원어민이 “Sorry? Pardon? What?…” 이러면 어찌나 당황스럽고 쑥스러운지요. 다들 그렇죠?)

 

(영화 제목 “Lost in Translation”의 경우 통역이 이미 실패했다, 소통에 뭔가 놓친게 있고 전부 전달이 안되었다, 말과 글로는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다, 뭐 이런 느낌인데요, 이걸 한글로 번역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제목의 어감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요? 영어와 한글의 영화 제목 자체가  바로 “Lost in Translation”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하고자 했던 “통역의 실패, 부족, 누수 (Lost in Translation)”은 단지 영어와 일본어를 쓰는 이국인들 간의 언어 장벽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예요. 같은 영어를 쓰는 미국인끼리도, 심지어 뜨겁게 사랑해서, 서로 같이 있기만 해도 좋아 죽을라고 하고 항상 붙어다니다가 결혼까지 한 부부 사이에서도 “소통과 공감의 실패 또는 부족(Lost in Translation)”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바로 이게 우리가 이 영화에 여운을 느끼는 이유이겠지요.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어찌보면 혼자이고,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긴 하지요.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유대감과 동질감도 느끼면서 소통하고 공감하고 싶고, 그러면서 또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속에 자유를 느끼고 싶어하기도 하는 모순되고 미스테리어스한 욕구와 욕망 덩어리가 바로 인간이지요. 샬럿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기위해 책을 읽어보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답을 못찾고 있고, 밥은 노래방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노래(hard song)라면서 “삶은 무의미해요. 바람처럼, 파도처럼…” 가사의 노래를 불러요. 이런게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잖아요. 

 

외로움에 치를 떠는 샬럿(Scarlett Ingrid Johansson)과 밥이 서로를 첫눈에 알아보고 또 빠르게 가까워졌던걸 보면 사람에게는 직감적으로 서로의 욕구 결핍을 알아채는 능력이 있는것 같아요.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없는 반쪽을 서로 끌어당기듯이 말이예요.  

 

샬럿은 결혼 2년차, 밥은 결혼 25년차예요. 대충 계산해보면 샬럿은 26살(?), 밥은 50살(?) 정도 되겠네요. 나이 차이가 띠동갑(24살?) 인데도 서로 말이 통하고, 서로에게 끌릴 수 있다는게 신기해요. 5살 차이만 나도 서로의 공통 관심사가 다르고, 10살 차이만 나도 세대차이나서 10분 이상 같이 있기도 힘들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런데 둘이 대화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해요. 서로 각자의 속마음,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해요. 그리고 서로의 말에만 집중하면서 잘 들어주고요. 영어로된 영화 포스터에 보면 상단에 "Everyone wants to be found"라는 문구가 있어요. 우리는 누구나 다 외롭고, 그래서 누군가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하고, 또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싶어하잖아요. 마치 샬럿과 밥이 그렇듯이요. 

 

밥이 샬럿에게 해줬던 말들 중에 샬럿에게 울림이 있었던 말들이 있었을거 같아요.(대사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기억이 가물가물….) 

 

“전 엘리베이터에서 당신을 처음 봤어요. 그때 당신은 환하게 웃었는데… 그 이후로 당신이 그처럼 웃는 모습을 못봤어요. 자 웃어봐요.”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삶이 좀더 편해져요.” 

 

샬럿과 밥이 서로 얘기하는 장면들은 이전의 샬럿의 전화 통화, 그리고 밥의 전화 통화 장면과 크게 대비가 돼요. 

 

샬럿이 눈물을 흘리면서 전화로 엄마에게 말해요. “오늘 절에 갔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무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건 살아있는것 같지 않다는 절망의 표현일텐데… 하지만 대화는 여기서 끝나요. 전화 건너편의 엄마는 “I’ve got to go. Talk to you later” 라면서 전화를 끊어요. 그리고 이런 패턴이 계속 반복이 돼요. 샬럿의 남편은 독백하듯이 일 얘기만 하다가, “오늘은 하루 쉬면 안돼?”라며 외로움에 힘겨워하는 SOS를 치는 샬럿을 뒤로하고 부랴부랴 또 일하러 떠나요.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고 키스를 하지만, 같이 있어도 외로워하는 샬럿의 마음을 모르는 것 같아요. “Lost in Translation” 이예요. 

 

이런 패턴은 밥도 마찬가지예요. 밥과 아내가 전화통화를 하다보면 아이들 얘기 80%, 인테리어 얘기 19%, 밥의 감정 1% 얘기(“나에 대해 걱정해줄 시간이 있기는 하구?”)하려고 하면 아내는 “I’ve got to go. I’ll call you later. Bye”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려요. 속깊은 얘기로 더 들어가지 못하고, 더 이상의 대화를 회피하면서 전화가 끝나요.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 일까요. 이런 장면들은 저를 되돌아보게 하기도 해요. 

 

밥이 결혼 25년차라고 하니 샬럿이 웃으면서 말해요. “그러면 당신은 분명 중년의 위기를 겪고 계시겠군요.” 라구요. 저도 나이를 먹고보니 “중년의 위기”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오더군요. ㅎㅎ “위기”라는 말이 “위협과 기회”를 둘 다 내포하고 있는 말이잖아요. “중년의 위기”는 인생의 반환점에 전반기를 뒤돌아보고, ‘앞으로도 지금처럼같이 살 것인가?’라는 고민속에 후반기의 삶을 그려보는 시간이기에 참 귀한거 같아요. 나이 든다는 것에는 ‘젊음’의 눈부신 아름다움과 원기충만함을 잃어간다는 슬픔도 있지만, 또 품격과 여유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인식하고 더 지혜롭게 통제하고 누리고, 또 뭔가를 생산하면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분명한 혜택도 있어요. 

 

샬럿이 이어서 물어봐요. “그래서 포르쉐는 사셨어요?” 라고요. ㅎㅎ  누군가에게는 포르쉐가 로망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포르쉐타는 사람을 보면서 세상사람 시선에 목말라하는 속물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을텐데요, 중년의 좋은 점 중의 하나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또 그걸 지를 수 있는 경제적이고 심리적인 능력과 용기(객기?) 아니겠어요?! 아, 저도 포르쉐 사고 타보고 싶어요. ㅋㅋ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 영화 여성감독이 만들었을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검색해보니 Sofia Coppola 여성감독이던데요, 이 영화의 각복도 직접 썼어요. 어쩐지 미묘한 감정의 디테일이 대사나 화면에 살아있더라니!

 

왼쪽 사진의 여성 감독이 바로 Sofia Coppola 예요. 패션 디자이너에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니 다재다능한 분이예요. 

 

영화 대부의 감독 포드 코폴라 감독의 외동딸이라네요. (대부3에 배우로도 출연했다고 하는데, 배우로서는 혹평을 받았다고 해요. 이때의 혹평 덕분에(?) 각본가 겸 영화감독으로 전향(?) 한거 같아요. 인생은 새옹지마!)

 

 

영화의 제일 마지막 장면에 리무진을 타고 공항으로 향하던 밥은 쓸쓸히 거리를 혼자 걷고 있는 샬롯을 보고는 리무진에서 내려 샬롯에게 향해요. 그리고는 샬롯을 꼬옥 껴안고서 귓속말로 무어라 말하고는 굿바이 인사를 하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각자의 가족에게로 돌아가지요. 이때 밥이 샬롯에게 귓속말로 무어라고 말했을지 궁금해요. 둘이 편안하게 씨익 웃었던걸 보면 혹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봐요.

“샬롯, 당신과 함께한 며칠이 내겐 너무나 행복하고 소중했어요. 만나면 설레고, 그래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함께 했던 순간 순간들이 그리울 거예요. 당신은 이쁘고 아직 젊어요. 당신이 하고 싶은걸 찾아서 해봐요. 계속 글도 쓰고요. 당신은 웃을 때가 더 이뻐요. 자, 한번 웃어봐요.”  뭐,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ㅎㅎ 아니면 말고요. 

 

 

둘은 이렇게 헤어졌고 각자의 길을 가겠지요. Life goes on. 샬롯과 밥의 삶, 가정은 이전과 같았을까요, 아니면 달라졌을까요? 

 

ps. 스칼렛 요한슨하면 영화 ‘어벤져스’의 액션 히어로, 여전사로서의 ‘블랙위도우’가 떠올랐는데요, 이 영화를 보고 난 후로는 호텔 창가에 걸터앉아 빌딩숲을 쳐다보고 있는, 헤드폰을 끼고 버스를 타고 있는, 도시를 홀로 걷고 있는, 노래방에서 난 특별해라며 유혹하는 노래를 부르는, 외로우면서도 매력적인 여성으로서의 ‘샬럿’이 먼저 떠오를것 같아요. 스칼렛 요한슨이 이렇게 매력적인 배우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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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격(格)’ (신수정 저, 턴어라운드) 을 읽고서

부제: 성장하는 나, 성공하는 조직, 성숙한 삶

 

* 격 格 : 주위 환경이나 일의 형편에 걸맞게 어울리는 분수와 품위 (한국어사전)

 

페이스북에서 제가 팔로우하면서 평소 즐겁고 유익하고 보고 있는 신수정님께서 그동안 써놓으셨던 글들 중에서 추려서 책으로 출간하셨다는 소식을 보고, 바로 사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페이스북에서 제가 ‘좋아요’를 가장 많이 누른 분이 신수정님이므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데 저도 아주 미약하나마 힘을 보탠 셈입니다.(숟가락 얹기 신공.. ㅋㅋ) ^^v 

 

일의 격, 신수정, 턴어라운드

 

이 책은 표지와 부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1) 성장하는 나, (2) 성공하는 조직, (3) 성숙한 삶의 3 파트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글들이 1~2 페이지로 읽기에 부담없는 길이로 되어 있으며, 매 문단마다 숫자로 번호가 매겨져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글 올리시는 포맷 그대로 유지). 저는 (3) 성숙한 삶 파트를 가장 재미있게 음미하면서 읽었습니다. 책 읽는 분들마다 목차를 보면서 가장 땡기는 부분 먼저 부담없이 읽어나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요, 그게 이 책의 좋은 점 중의 하나예요. 

 

책 내용이 이론적인면과 현실적인 면이 잘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책을 읽다보면 수긍이 많이 갑니다. 책 내용이 설득력 있을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신수정님의 인생 미션과 독특한 이력에 기인한다고 생각해요. 아래는 책의 서문에 나오는 저자 소개 글이예요. 

 

“신수정, 현재 KT의 Enterprise 부문장을 맡고 있다. 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하였고 글로벌 기업, 창업, 벤처, 중견기업, 삼성, SK 등 다양한 기업들을 거치며 일, 리더십, 경영 역량을 쌓았다. 인간을 이해하는 데 관심이 많아 다양한 코칭, 심리, 자기계발 코스를 수료하였다. 삶, 일, 경영과 리더십에 대한 통찰을 나누어 사람들에게 파워와 자유를 주고 한계를 뛰어넘는 비범한 성과를 만들도록 돕는 선한 영향력을 추구하는 것을 삶의 미션으로 삼는다. Inspiring coach 이자 Leader 로 스스로의 역할을 정의한다.”

 

이처럼 저자의 다양한 경험과 학습으로 부터 나오는 연결과 공감의 힘, 어느 극단으로 치우침없는 균형과 절제의 미덕은 이 책은 큰 차별화 요소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첨단 기업경영 기법, 조직문화, 방법론 등을 무비판적으로 선진사례라면서 받아들이기 보다는 Context, 자기 회사의 실력을 감안해서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젊었을 때 신학자, 목사가 되고자 성경공부에 매진했던 경험도 있어서 책의 여기 저기에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데요, 적재적소에 설명과 함께 인용하다보니 종교가 무엇이든지 간에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게 좀 신기하기는 해요. 가령, “비둘기처럼 순수하되 뱀처럼 지혜로워라”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직장이나 조직에서 뭔가 성과를 이루고 변혁을 만들려면 순수한 의도 못지않게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정치력, 냉철함, 손에 진흙 뭍히기를 주저하지 않는 추진력이 필요하다고도 말합니다. 

 

책 내용과 주제가 워낙 방대해서 요약해서 정리하기는 어려울거 같구요, 인상깊었던 내용이나 구절 몇 개 맛보기로 소개해봅니다. 

 

 

1장. 성장 (成長) : 일의 성과를 극대화 시키는 기술

 

‘성공의 가장 큰 적은 실패가 아닌 지루함’

1. 한 책(‘아주 작은 습관의 힘’, 제임스 클리어, 비즈니스북스, 2019)을 읽다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는 유명 코치에게 물었다. “뛰어난 선수와 보통 선수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능력, 운 이런 답을 기대했는데 코치는 이렇게 답했다. “지루함을 견디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훈련하다 보면 어느 시점 지루해집니다. 보통 선수는 이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훈련을 소홀히 하기 시작합니다.”

2. 아마추어는 기분 좋을 때만 훈련한다. 보통 선수는 매일 훈련하지만 지루할 때면 대충 한다. 그러나 뛰어난 선수는 상관없이 훈련한다. 

 

정말 그런거 같아요. 저도 처음엔 타고난 능력, 운 이런게 제일 먼저 떠올랐는데요, '지루함을 이기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차이를 만든다는 통찰. 요즘 일본에서 올림픽이 시작되어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훈련 이야기가 많이 나오게 될텐데요, 이들도 '지루함을 이겨내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선수들' 이겠지요. 피겨퀸 김연아 선수도 그렇고, 프리미어리그의 손흥민 선수도 그렇고, 모두 지독한 연습벌레 였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보셨을거 같아요. 

 

이처럼 '독서광', '책 중독'에 빠져 있는 저자 덕분에 다양한 분야의 책들에서 뽑은 인사이트를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해석을 더해서 떠먹기 좋게 밥상을 떠억하고 차려놓았답니다. 

 

‘바쁜 사람은 항상 바쁘다’

3. 가끔 ‘저는 너무 바빠요. 좀 여유롭게 일할 수 없을까요?’라고 상담하는 분들을 만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분들의 상당수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환경에서조차 스스로를 바쁘게 굴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대개 (항상은 아니다) 바쁜 사람은 여유로운 일을 맡아도 바쁘고, 여유로은 사람은 정신없는 일을 맡아도 여유롭다. 

 

이 또한 정말 그런거 같아요.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다 똑같이 전력질주 한다거나, 위임하지 못하고 혼자서 다 하려한다거나, 안해도 되는 일을 하면서 안바빠도 되는데 바쁘면서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고 자기위안을 삼고 있는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과연 연주를 가장 잘 하는 연주자가 최고의 성공을 할까?’

3. 포뮬러라는 책을 읽으니 이런 내용이 나온다. 런던의 한 연구팀은 클래식 경연 대회에 결선에 오른 세 사람 중 누가 우승할지 한 집단에는 소리만 들려주고, 또 한 집단은 연주 모습과 소리를 같이 들려주고, 또 한 집단은 소리는 끈 채 연주 모습만 보여주었다. 이 평가 집단은 아마추어와 프로 심사원들로 구성했다. 

 

4. 당연히 연구팀은 소리만 들려준 그룹이 가장 정확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아마추어 심사원이든 프로 심사원이든 소리를 끈 채 연주 모습만을 보여준 그룹이 우승자를 가장 높은 확률로 맞추었다. 소리만이 실제 경쟁력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또한 놀라운 통찰력 아닌가요? 실력만 중요한게 아니라 보이는 모습도 중요하다는 점이요. 실력만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외모, 패션, 제스쳐, 포즈, 성량… 등 보여지는 모습에서 우러나는 매력도 무시 못할만큼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하기 좋든 싫든 사람들에게 작동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가꾸는 노력도 필요하겠습니다. 나이를 한참이나 먹은 저도, 이젠 외모와 패션에 신경을 좀 쓰면서 다닙니다. 

 

 

여기서 잠깐, 인상적인 글이 너무 많아서 몇 개 추려서 쓰려고 하다 보니 책 내용 인용으로 블로그 포스팅이 도배가 될 거 같아서 여기서 그만 하렵니다. ^^; 

 

 

 

저자가 애정을 가지고 썼다는 ‘우연과 필연’에 대한 부분,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으로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했다는 말을 인용했던 부분 (하나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가 추가로 수집되면 이 피드백을 반영해서 필요 시 방향을 바꿀 줄 아는 사람) 의 경우 통계학을 전공한 사람한테는 확률론이라는 매우 익숙한 개념이예요. 베이지언 통계학(Bayesian inference)이 다루는 게 선험적인 경험과 지식(prior probability)에 더해서 새로 획득한 데이터로 부터 얻은 정보를 업데이트 해서 새로운 확률(posteria probablity)을 계산하고, 이에 기반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거든요. 위대한 철학과 사상들 끼리는 만나는 지점이 있다니깐요. 비록 사용하는 언어는 다르더라도 말이지요. 

SW 개발 방법론에 '애자일 개발 방법론 (Agile methodology )' 이라고 있는데요, Pivotal Labs 에서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들을 대상으로 전파해온 방법론도 애플리케이션의 핵심 효용과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기능과 UI/UX를 담은 MVP(Minimum Viable Product) 를 정의해서 빨리 서비스를 최종사용자를 대상으로 론칭을 하고, 이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애플리케이션을 업그레이드 하는 반복 과정(iteration cycle, process)을 빨리, 여러번, 반복적으로 하면서 하라는 것과 일맥 상통합니다. 기존의 Waterfall 방법론에서 하는 것처럼 완벽한(?) 마스터플랜 하에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것보다, 빨리 실패하고 그로부터 빨리 배워서, 빨리 적응하고, 필요하면 Pivot(방향 전환)을 할 수도 있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것이지요.(Pivotal 은 작년에 VMware로 인수합병되었고, Pivotal Labs는 VMware Labs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저자가 딱딱한 경영학 기술, 기법에만 의존하지 않고 심리학, 상담, 코칭 등에 대해서도 책도 많이 읽으시고, 세미나도 참석하시고, 코칭도 받아보면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더해서 개인, 조직의 성장과 성공에 대해 얘기하고, 더 나아가 성숙과 품격의 단계까지 다같이 올라가기를 조언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그래서 더 효과적인거 같아요. 다른 경영학 책들은 사람 냄새가 안나거든요. 

 

특히,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하는 나 자신의 선택과 책임, 자유, 남들로 부터 미움받을 용기에 대해서 책의 이곳 저곳에서 반복해서 소개해주는게 좋더라구요. ‘잘 안돼도 괜찮아. 나는 지금 이대로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야’라며 매사에 너무 심각하지 말고, 잘 안돼도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고,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눈치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매 순간 행복을 느끼면서 살 수 있다고 말해줄 때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상담가, 날 위로해주는 어른 같습니다. 

 

저자는 글을 꾸준히 쓰기 위한 마음가짐, 태도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는데요, 너무 길게, 잘 쓰려, 완벽하려 하지 말고, 일단 짧게라도 꾸준하게 쓰기를 강조해요. 유명하지 않으면 누가 신경쓸 사람도 없고, 자꾸 글을 쓰다보면 글쓰는 힘과 실력이 쌓이니깐요. ‘축적과 발산’의 관점에서 보면 글쓰기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단 많이 읽고 또 쓰면서 실력을 축적하고, 그 중에서 사람들이 공감하는 글이 빛을 발하면서 발산하는 시점이 오기를 준비하라는 것이지요. 

이 글을 읽었을 때 일주일에 하나씩 꾸준히 블로그 포스팅하고 있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블로그 포스팅 하나 하려면 공부하고, 코딩하고, 도식화해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로 정리하고, 글쓰고 하는데 3~4시간씩 걸리거든요. 블로그 포스팅을 매 주말마다 5년째 해오고 있으니 나름 뿌뜻해요. 

 

독서후기가 일관된 스토리가 없이, 주저리 주저리, 왔다갔다 한거 같아요. ^^;

요약하자면, 책 값 하나도 안 아까우니 목차 한번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책 사서 일독 권합니다. 

페이스북에서 그동안 쭉 봐왔던 글들인데도 다시 책으로 묶여진 내용을 다시 보니 또 새롭고, 와닿고 그래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

 

 

ps. 이 책의 폰트가 너무 작아서요, 책 읽는 내내 ‘그래, 나 노안이 왔지!’를 상기시켜주어서 속상하더군요. 출판사 편집자가 테스트 리딩 몇 명 해봤다면 폰트 크기 키우라는 피드백을 분명 받았을거 같은데요, 좀 아쉽습니다. 폰트 키우고 문장 간 간격 줄이면 책 페이지 수가 많이 늘어날것 같지는 않습니다.

 

ps. 책 표지도 우중충 하고, 책 제목 '일의 격'도 맨날 일만 하는 회사원 대상으로 쓴 재미없는 책처럼 보여요. 제 와이프랑 제 딸한테 재미있으니 읽어보라고 권했더니 표지랑 제목을 보고서는 도망갈라고 그래요. 저자는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나,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제가 아는 어느 누구보다 젊게 사는 분이세요. 하지만 책 표지나 제목은 너무 나이든 티를 팍팍 내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엄격하고, 무겁고, 진지하고, 딱딱하기만 하고, 힘이 너무 들어가 있고...   40대 직딩 아저씨 타켓이라면 잘 소구하는 편이구요, 그게 아니라면 솔직히 세련된 멋이 없고 formal 하게 느껴져요. -_-;

 

ps. 책 페이지 마다의 제일 마지막 한 두줄에는 상당한 위트와 엑기스가 녹아들어가 있어요. 질문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아서 다음 장으로 바로 못 넘어가고 제 자신을 되돌아보면 생각하게끔 하기도 해요. 이 책을 읽는 솔솔한 재미 중의 하나가 제일 마지막줄 읽는 것이었어요. 이제 여러분 차례네요. Enjoy reading! Happy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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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설 쓰는 작가 지망생은 아니지만, 호기심이 발동하여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 (김진준 옮김, 김영사, 2002)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네, 맞습니다. 샤이닝(The Shining),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캐리(Carrie), 미저리(Misery), 그린 마일(The Green Mile), 그것(It) 등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영화들의 원작 소설 작가가 바로 스티븐 킹입니다. 

 

이 소설가가 글쓰기, 창작론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이미 엄청난 소설의 인세 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어서 굳이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창작론을 쓰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지요. 머리말에 스티븐 킹이 이 책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한번 들어볼까요? 

 

 

"나처럼 많은 소설책을 팔아먹은 사람은 글쓰기에 대하여 '뭔가' 할 말이 있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쉬운 답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가령 샌더스 대령(케이에프씨)이 엄청난 양의 닭튀김을 팔아치웠지만 그 과정에 대해 알고 싶어 할 사람은 별로 없을 듯 하다. 
주제넘게 글쓰기에 대해 말하겠다고 나서려면 적어도 대중적인 성공보다 더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이렇게 짤막한 책일망정 혹시라도 나중에 내가 무슨 문단의 허풍쟁이나 고상한 체하는 얼간이처럼 취급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 책이나 작가라면 이미 세상에 숱하게 널려 있다. ..그러나 문장에 대하여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델릴로나 업다이크나 스타이런 같은 작가에게는 물어보지만 대중소설가에게는 묻지 않는다. .. 
이제부터 나는 내가 창작을 하게 된 과정, 지금 내가 창작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 그리고 창작의 방법 등에 대하여 말해보려고 한다. 이것은 내 본업에 대한 책이며 문장에 대한 책이다."
- 머리말 중에서

 

스티븐 킹의 창작론, 유혹하는 글쓰기

 

이 책은 크게 아래와 같이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글 쓰기에 대한 책에는 대개 헛소리가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은 오히려 짧다. 나를 포함하여 소설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그리 잘 알지 못한다. 소설이 훌륭하거나 형편없다면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책이 짧을수록 헛소리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 머리말 둘

 

(1) 이력서: 스티븐 킹이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자서전 형식으로 서술한 부분

(2) 연장통: 창작에 필요한 자세와 작가로서 갖추야 할 기본적인 도구들을 이야기한 부분

(3) 창작론: 창작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부분

(4) 인생론: 이 책을 쓰는 도중에 일어났던 교통 사고와 그 결과로 얻은 깨달음을 이야기한 부분

 

저는 이들 4개 챕터 중에서 (1) 이력서 부분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대신 (2) 연장통, (3) 창작론은 좀 재미없게, 더디게 읽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글쓰는 작가가 되어보려고 이 책을 읽었던게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관여도나 몰입도가 떨어지는건 어쩔 수 없더군요. ^^; (4) 인생론을 읽을 때는 산다는게 뭔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1) 이력서 부분을 읽을 때 정말 많이, 크게, 눈물까지 흘리면서 웃으면서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배꼽을 잡고 눈물 흘리면서 웃어제끼면서 책을 읽었던 적이... 이 책 말고는 기억이 없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스티븐 킹의 소설 원작을 읽어본 적은 없는데요, 이 책을 보고 나서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가령, 여러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에 하나만 소개해보자면요, 

 

" (중략) 나는 볼일을 마치고 형이 가르쳐준 대로 뒤처리를 했다. 윤기 흐르는 푸른 잎을 잔뜩 뜯어 밑을 닦은 것이다. 그런데 그게 하필이면 덩굴옻나무였다. 
 이틀 후 나는 무릎 뒤에서부터 어깨뼈까지 온몸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고추는 무사했지만 볼알은 두 개의 정지 신호등으로 바뀌었다. 엉덩이에서 갈비뼈까지 안 가려운 곳이 없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던 것은 그날 사용한 손이었다. 그 손은 도널드 덕의 망치에 얻어맞은 미키 마우스의 손만큼 크게 부어올랐고, 손가락끼리 스치는 부위마다 거대한 물집이 일어났다. 물집이 터지면 빨간 생살이 드러났다. 그로부터 6주 동안은 녹말을 푼 미지근한 물 속에서 좌욕을 했다. 나만 바보가 된 기분, 정말 비참하고 모욕적이었다. 열린 문틈으로 어머니와 형이 카드놀이를 하며 웃고 떠드는 소리, 그리고 라디오에서 피터 트립이 히트곡을 발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p35

 

스티븐 킹은 어렸을 때 귀와 편도선에 병이 심해서 학교를 1년 쉰 적이 있더군요. 1년을 쉬는 동안에 만화책, 소설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아마도 그때의 인풋이 훗날 공포 소설의 왕이 되는데 큰 자양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어렸을 때 몸이 아파서 학교에 1년 못가게 되었다면 또래 친구들에게 뒤떨어지고, 사회에서 낙오되고, 인생의 큰 흠집이라고 여기고 안절부절 했을 것 같습니다.  인생 길게보면 정말 "인생지사 새옹지마" 인데 말이지요. 인생 살아오면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하나의 점이 되고 쌓여, 나중에는 그 점들이 연결이 되면서 선이 되고 면이 되고 하잖아요. 모든 순간이 허투루 지나가는 일이 없고, 그게 다 나중의 내가 되는 것을요. 뭔일 일어났다고 호들갑 떨지 말고 좀더 세상 살이에 편안해지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티븐 킹의 이력서 부분에 소개된 다사다난했던 사건 사고들을 보자니 '이렇게 파란만장하고 재미나게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소설가가 되었구만...' 하고 납득이 되더군요. 한국의 수많은 학생들(저의 학생때 포함, 현재의 제 자식들 포함해서)은 새벽에 일어나서 학교 갔다가, 밤 늦게 까지 학원 다니고, 주말에도 학원가고.... 다들 똑같고, 재미난 거라곤 별 것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나면, 그 경험들 속에서 어떤 소설의 이야기 꺼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 내가 참 재미없게 살았구나. 그냥 범생이 처럼 살았구나..... 지금부터라도 재미있게......'

 

 

스티븐 킹의 집은 어렸을 때 무척 가난했고,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 그리고 형과 함께 살았어요. 스티븐 킹의 어머니가 해주셨던 말 한마디가 스티븐 킹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장면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내가 지어낸 것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대부분을 만화책에서 베꼈다는 사실을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실망하시는 것 같았고, 따라서 내 기쁨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윽고 어머니가 공책을 돌려주셨다. 
 "기왕이면 네 얘기를 써봐라, 스티브. <컴뱃 케이시> 만화책은 허섭쓰레기야. 주온공이 걸핏하면 남의 이빨이나 부러뜨리잖니. 너라면 휠씬 잘 쓸 수 있을 거다. 네 얘기를 만들어봐."
...
나는 어머니가 즐거워하시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웃어야 할 장면에서는 틀림없이 웃으셨다- 사랑하는 아들을 기쁘게 하려고 웃으셨는지, 아니면 정말 재미가 있어서 웃으셨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이번에 베끼지 않은 거니?"
 끝까지 읽은 후 어머니가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책으로 내도 될 만큼 훌륭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말은 지금껏 어느 누구에게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래빗 트릭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네 편 더 썼다. 어머니는 한편이 완성될 때마다 나에게 25센트 동전 하나를 주셨고, 네 명의 언니들에게 보내어 두루 읽혔다. 이모들은 마아 어머니를 불쌍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
 네 편의 이야기. 편당 25센트. 그것은 내가 이 일로 벌어들인 최초의 1달러였다. 
- p33

 

 

 '인생론: 후기를 대신하여' 부분에서는 이 책을 쓰는 도중에 산책을 나갔다가 승합차에 치여 수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죽을 고비를 여러차례 넘겼던 얘기가 나옵니다. 스티븐 킹은 이때 "죽음"을 그 어느때보다도 가깝게 느꼈을 것입니다. 6주 동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운 재활의 기간을 거치는 와중에 "글쓰기 창작"은 스티븐 킹에게 살아야 할 목적이었고, 살아갈 수 있는 '생명수'가 되어주었습니다. 세상에 빈손으로 태어나서, 세상에 의미있는 무언가를 창조해내고, 세상이 이전보다는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는 것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게 있을까요? 

 스티븐 킹이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 쓴 "글씨기의 목적"에 대해서 한번 들어보시지요. 

 

 "글쓰기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데이트 상대를 구하거나 잠자리 파트너를 만나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이 책의 일부분은--어쩌면 너무 많은 부분이--내가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 내용이다. 나머지는--이 부분이 가장 쓸모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허가증이랄까.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여러분도 해야 한다는, 그리고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여러분도 해내게 될 것이라는 나의 장담이다. 글쓰기는 마술과 같다. 창조적인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생명수와도 같다. 이 물은 공짜다. 그러니 마음껏 마셔도 좋다. 
 부디 실컷 마시고 허전한 속을 채우시기를."
- p332

 

 

'연장통'과 '창작론' 부분에서는 이 책의 본래 주제인 "유혹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인데요, 저는 데이터 분석하는 사람이지 글쓰기가 본업은 아니므로 주저리주저리 이 포스팅에서 옮겨적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비단 '글쓰기, 창작론' 뿐만이 아니라 모든 영역이 다 그렇듯이, "유혹하는 글쓰기"를 하려면 "많이 읽고, 많이 써봐라"는 조언으로 요약이 될 수 있겠습니다. 뭐, 뻔하다면 뻔한 조언인데, 이것만한 진실이 또 없지 않겠습니까?! 그 어떤 영역이 되었든지 간에요. 

 

저도 2016년 부터 일주일에 한편씩 블로그 포스팅을 꾸준히 해오고 있고, 2021년 7월 현재 620여 편의 글을 포스팅 했으니 "많이 읽고, 많이 써봐라"는 조언에 대해서는 어깨 뿌듯하게 펼 수 있겠네요. 주말마다 2시간~4시간씩 투자해서 꾸준히 글 포스팅해온 제가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__^

 

 

스티븐 킹은 소설의 속도감을 높이기 위해서 [ 수정본 = 초고 - 10% ] 라는 공식에 따라 불필요한 단어를 생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호텔 이야기> 라는 짧은 초벌 소설을 보여주고, 이어서는 [수정본 = 초고 - 10%] 의 공식에 맞게 불필요한 단어를 생략하고 수정한 -- 필요에  따라서는 필요한 부분을 추가하기도 하지만...-- 예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저도 이 포스팅의 초고에서 불필요한 10%를 한번 빼볼까하고 살펴보려니... 뺄게 없어 보이네요. ㅎㅎ  이번 포스팅 글이 그리 길지도 않고, 또 읽다보면 다 재미있죠? 그쵸? ... 요 문장만 삭제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재미 없죠? -_-;

 

 

스티븐 킹은 쓸데없는 "부사의 남발"을 징글징글하게 싫어합니다. 저는 전문 소설가가 아니므로 이 조언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부사 좀 여기저기 가져다 쓰면 뭐 어때서요... 부사 쓴다고 지구가 망하나?  ㅎㅎ (스티븐 킹이 한글 번역해가면서 제 글 읽는 일은 없겠죠? ㅋㅋ)

 

 

모처럼 즐거운 책 소개할 수 있어서 저도 신나네요!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책 읽어보시고 행복하세요! :-)

 

ps. 이 책은 이성을 유혹하는 연애의 기술, 이런 내용 아닙니다. 그냥 글쓰기 관련 책이예요. 혹시 제목을 오해해서 낚이는 분이 있을까 해서 노파심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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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 이맘 노무현 대통령님이 생각납니다

서거하신지 벌써 12년이 흘렀는데도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생각하면서 지난달에 읽었던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에이치 출판사) 책에 대해 남겨봅니다

 

책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 정부' 시절에 8년간 연설비서관을 했던 강원국님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하면서 대통령으로부터 보고 듣고 배운, 사람을 움직이는 글쓰기에 대한 비법을 정리한 책입니다.

 

책의 목차 중에 보면 "왕관을 쓰려는 자, 글을 써라" 라는 제목이 있답니다. 저보고 글을 잘 쓰고, 연설도 잘 해서 왕관을 쓴 우리나라의 최고의 전직 대통령 두 분을 꼽으라면 단연 고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겠지요. (현직 포함 세 분을 꼽으라면 현 문재인 대통령님 추가요! ^__^)

 

한 명의 대통령을 모시기도 예사롭지 않은데, 두 명의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을 지냈고, 게다가 그 두 명의 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명연설로 유명하신 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님라면야 강원국씨는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제목의 책을 쓸 자격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암요! 

 

글쓰기에 관해 제대로 배우고 싶은 분이라면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책 일독을 권합니다. 유익하고, 재미있기까지 합니다.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저자는 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에 대해 비슷한 점도 많지만 차이점 또한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 특징을 비교하기를 "예의 중시 vs. 교감 중시" 라고 하였습니다. 단 하나의 가장 훌륭한 연설문 스타일이란 없으며, 연설을 하는 사람의 색깔이 배어있는 연설문이 자연스럽고 좋은 연설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요리에 빗대어서 말씀해주시는 좋은 글쓰기를 하는 방법을 아래에 소개해봅니다. 하나 하나가 요리랑 연상이 되어서 이해하기 쉽고 수긍이 갑니다. :-)

 

"노무현 대통령은 언젠가 글쓰기를 음식에 비유해서 얘기한 적도 있다. 

1. 요리사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 너무 욕심부려서도 안 되겠지만.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2.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좋아야 하지. 싱싱하고 색다르고 풍성할수록 좋지. 글쓰기도 재료가 좋아야 해. 
3. 먹지도 않는 움식이 상만 채우지 않도록, 군더더기는 다 빼도록 하게. 
4. 글의 시작은 애피타이저, 글의 끝은 디저트에 해당하지. 이게 중요해. 
5. 핵심 요리는 앞에 나와야 해. 두괄식으로 써야 한단 말이지. 다른 요리로 미리 배를 불려 놓으면 정작 메인요리는 맛있게 못 먹는 법이거든. 
6. 메인요리는 일품요리가 되어야 해. 해장국이면 해장국, 삼계탕이면 삼계탕. 한정식같이 이것저것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해서 써야 하지. 
7.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하잖아. 과다한 수식이나 현학적 표현은 피하는 게 좋지. 
8. 음식 서빙에도 순서가 있다네. 글도 오락가락, 중구난방으로 쓰면 안돼. 다 순서가 있지. 
9. 음식 먹으러 갈 때 식당 분위기 파악이 필수이듯이, 그 글의 대상에 대해 잘 파악해야 해. 사람들이 일식당인 줄 알고 갔는데 짜장면이 나오면 얼마나 황당하겠어. 
10. 요리마다 다른 요리법이 있듯 글마다 다른 전개방식이 있는 법이지. 
11. 요리사가 장식이나 기교로 승부하려고 하면 곤란하네. 글도 진심이 담긴 내용으로 승부해야 해. 
12. 간이 맞는지 보는 게 글로 치면 퇴고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 
13.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이 최고지 않나? 글도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야 해. "

-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에이치 출산사), 22~23페이지 -

 

 

책의 중간 중간에 나오는 이 책의 글쓴이 강원국님의 '이야기' 코너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특히 "이야기 둘 : 청와대 생활과 과민성대장증후군" 코너는 눈물을 흘리면서 (너무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웃겨서... ㅠ_ㅠ) 읽었습니다.  웃으면 안되는 상황인데 그 모습이 상상이 되다보니 안 웃을 수가 없더라구요. 남자 소변기가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한번 보시지요. ㅋㅋ

 

"긴장의 연속이었던 8년간의 청와대 생활은 나에게 과민성대장증후군이란 달갑지 않은 선물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2002년 국장 진급 임명장 받는 날이었다. 청와대 행사라는 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문제가 된다. 지각을 하거나 예행연습에 불참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과천에서 경복궁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나는 그 날도 넉넉하게 집을 나섰다. 긴장해서인지 화장실이 급해 신용산역에서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빈칸이 없다. 줄을 서서 기다렸다. 도저히 안 돼 칸칸마다 두드리며 호수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물 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결심했다. 대통령 임명장을 받는 날, 사고가 나선 절대 안 됐다. 바지를 내리고 급한 대로 소변기에 앉았다. 화장실에 들어오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사람들이 뭔지 모르지만 귀신에 홀린 듯 순간적으로 엄청난 혼돈을 느끼며, 못 들어올 데 들어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나갔다. 난 그때 처음 알았다. 남자 소변기가 이렇게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을."

- 대통령의 글쓰기, 64페이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설문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다보면, 결국에는 "누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 연설을 하는가가 연설문의 "내용"이나 "형식"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아니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님과 노무현 대통령님은 소수의 힘있고 부유한 자들의 편이 아니라 다수의 서민들이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꾸고, 이를 조금씩이나마 일구어나가기 위해 거쳐온 생애가 가지는 힘, 무게, 진정성에서 우러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국민들에게 큰 울림이 되는 것이리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존경하는 고 김대중 대통령님과 사랑하는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사진으로 책에 대한 소개 글을 마칠까 합니다. 

 

두 분이 많이 그립습니다. 

 

* 사진 출처: http://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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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제가 올해 읽었던 책 중에서 인상깊었던 2권의 책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저희 집의 중2 아들과 초4 딸이 있답니다.  그래서 예사롭지 않게 읽은 책들 이예요. ㅎㅎ)

 

"중2병의 비밀", 그리고 "무기력의 비밀" 이라는 책들인데요, 모두 김현수 의사선생님께서 지은 책이고, 책 제목에 '비밀'이 들어가 있습니다.  (책 표지도 약간 비슷해요. 묵직해보이는 가방을 맨 아이 그림이 들어가 있습니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저자 김현수 선생님의 프로필을 인용해보면 아래와 같은데요, 저자 소개글을 읽고 나면 제가 길게 책의 내용을 소개하지 않아도 저자가 품어온 문제인식과 아이들과 함께하는 세상을 좀더 행복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저자가 밟아온 삶의 궤적이 책에 대한 신뢰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로서의 첫 발령지인 '소년교도소'에서 '문제행동은 심리적 구조 신호'라는 것을 느끼면서 정신의학을 지망했다.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한 이후 2001년 서울 봉천동에 '사는기쁨 신경정신과'와 지역주민상담센터 '빵과영혼'을 열었고, 이듬해에는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을 세워 지금까지 교장을 맡고 있다. 학업 중단, 가출, 비행, 학교폭력, 인터넷 중독, 은둔형 외톨이 등 다양한 청소년들의 어려움과 함께해 왔다.

  현장에서 다양한 아픈 아이들을 마난면서 '아이가 힘든 것이 단지 부모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각성을 갖게 되어 부모 교육 지원뿐 아니라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의 정부 기관과 시민모임과 함께 활동해오기도 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아픈 아이들이 늘어가는 교실에서 선생님도 아프다.'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아이들도 행복하고 교사도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과정을 모색해 오기도 하였다.

  현재는 명지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장과 환자공감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는 안산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장으로 아픔을 함께 했다.

 

    - 출처 : 중2병의 비밀, 표지의 김현수 저자 소개 내용

 

 

 

 

중학생과는 말이 잘 안 통한다고 해서 부모나 선생님은 중학생을 가리켜 "외계인"이라고도 하고, 어디로 튈지 몰라서 "럭비공"이라고도 합니다.  교과서에서는 "사춘기" 시기를 가리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도 표현해놓았습니다.

 

학부모나 선생님도 분명 이런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왔기에 중학생 자녀를, 중학교 학생을 잘 이해할 법도 한데, 위와 같은 말이 요즘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쓰이는 걸 보면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요즘 애들 버릇없어"라는 말이 2천년 전이나, 요즘이나 계속 쓰이고 있듯이 말이죠...)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다 자녀를 좀더 잘 이해하고, 자녀와 소통하고, 자녀가 힘들어하는 것이 있다면 도와주고 지원해줄 수 있기를 바랄것이라고 봐요.  그런데 이때 '내가 사춘기 때에는 나는 안그랬던 것 같은데... 내가 살던 시절에는 안 그랬는데...' 이렇게 시작하면 아마도 한발짝도 진전을 보이기 힘들겁니다.  왜냐하면 학부모 세대가 살던 시절이랑 "요즘" 아이들이 사는 시대가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중2병의 비밀" 의 목차를 한번 찬찬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대략 이 책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구나 감을 잡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소위 "요즘" 아이들을 이해하려면 차분히 "요즘 아이들 설명서"를 가지고 공부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저자가 그동안 숱하게 "요즘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생생한 현장의 기록들이 담긴 책이라면 말이지요.

 

 



[ "중2병의 비밀" 목차 ]


1. 작은 가족이 주는 외로움 
    : 요즘 아이들은 형제 없이 사춘기를 겪어내야 한다.
 
2. 정서적 외로움
    : 마음을 놓치면 아이도 놓친다.
 
3. 자신감이 없을 때의 외로움
    : 집에서는 '왕자', 학교에서는 '엑스트라'
 
4. 잘하지 못할 때의 외로움
    : 15세의 위기, 벼락치기로 쫒아갈 수 없는 세상
 
5. 변화된 몸이 주는 외로움
    : 올라오는 성적 욕구, 누구와 이야기해야 하나요?
 
6. 적응 안 되는 몸이 주는 외로움
    : "몸이 근질근질한데 어쩌라고요!"
 
7. 존중받지 못할 때의 외로움
    : "제발 나만의 영역을 존중해주세요"
 
8. 세대 차이를 느낄 때의 외로움
    : 최고와 최선에 대한 시각 차이
 
9.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을 때의 외로움
    : 관심은 Yes, 간섭은 NO!
 
10. 소속감이 없을 때의 외로움
    : "친구는 또 다른 나, 방해꾼이 아니에요"
 
11. 덜 자란 전두엽이 만드는 외로움
    : 문제행동 뒤에는 호르몬이 있다
 
12. 중2병은 잘못된 사회를 향한 아이들의 메시지입니다.


 

 

 

 

책 중간 중간에 삽화도 들어가 있고, "요즘"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보니 딱딱한 이론서를 보는 듯한 난해함이나 '이거 나랑은 상관없는데...'라는 괴리감은 느끼기 힘들거예요.

 

 

 

책이 대강당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한 내용처럼 구어체로 되어있다거나, 수강 중인 학부모로부터 질문을 받고 저자가 답변하는 대화체로 되어있는 부분도 있고 해서 쉽게 빨리 빨리 읽힙니다.  다만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아마 짐작컨데 책을 읽는 중간 중간 '우리 아이는 어떻지?  나는 우리 아이에게 어떻지?  음... 그동안 내가 이게 문제였나?  이걸 몰랐었네?  오늘 오후에 아이가 돌아오면 이렇게 얘기를 해볼까? 다음번에는 이렇게 해볼까? ...' 등 등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중2병의 비밀" 책은 "자녀가 중학생이 된다는 것은 이별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라는 프롤로그로 시작하며, "자녀가 중학생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것입니다"라는 에필로그로 끝납니다.

 

책의 목차에서도 보면 온통 '외로움'이라는 말로 도배가 되어 있는데요, 자녀가 중학생이 되면서 '이별'이 시작되는 와중에 자녀도 외롭고, 부모도 외롭고, 모두가 외로운 상황이 연출됩니다.  이 외로운 이별을 슬기롭게 대처하면 '새로운 만남'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중2병의 비밀"의 저자가 얘기해주는 "아이와의 정서적 교감을 높이기 위해 부모가 명심해야 할 자기점검 Tip"을 아래에 공유하오니 한번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이제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인정하고 대해주어야 합니다.
  • 행동이나 과제를 점검하는 것보다 아이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명심해주세요.
  • 아이들과 대화를 하려면 말하기보다 듣기가 먼저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 사춘기가 시작되면 부모의 기대가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 아이의 문제가 크게 다가오면, 혹시 내가 문제를 너무 크게 보는 것은 아닌가도 점검해주세요.

                - 출처 : "중2병의 비밀", 김현수 지음, Denstory, 2015, p61

 

 


 

두번째 추천 책인 "무기력의 비밀"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저자 김현수 선생님이 요 몇년 들어서 가장 많이 강연 요청을 받는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무기력한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합니다.

 

신문 지상이나 방송, 책에도 보면 '3포 세대', '5포 세대', 'N포 세대'라는 말이 보통명사화 되어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혹시 자녀 중에 "나 좀 내버려 둬",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난 하고 싶은게 없어", "난 할 줄 아는게 하나도 없어", "몰라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가 있나요?  혹시 자녀가 학교에 가면 잠만 자고 오는 아이, 아니면 학교 가기 싫다고 하는 아이가 있나요?  그렇다면 "무기력의 비밀"이라는 책이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저자는 아이들의 무기력에 대해서 "이것은 비명이요, 무기력한 아이들의 침묵은 더 큰 마음의 목소리다. 희망 없음(hopeless)을,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태(helpless)임을, 자신을 포기하고 싶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기력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비명을 지르고, SOS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이를 무시하거나 혹은 화내고 혼내기만 한다고 자녀가 바뀔거 같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아이들의 무기력을 응급상황에 비유하면서 "마음의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위급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한다고 해서 위급환자가 완전히 치유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으면 그 위급환자는 자칫 죽음이나 치명상을 입게 되어 완치와 행복한 삶을 기약할 수 없게 되겠지요.

 

저자 역시 이 책에서 말하는 '역설과 긍정', '환대, 참여, 존중', '격려', '지원' 등의 방법이 무기력한 아이를 완전히 생기발랄하고 희망 가득한 아이도 돌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아이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존중해주면서 기다려주지 않으면, 너무 성급하게 아이가 변하기를 바라면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 구조적인 시스템'의 문제 또한 같이 고민을 해야 하고 '개인 차원, 가정 차원의 노력'과 함께 '사회적인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 구조적인 시스템의 문제와 해법에 대해서는 다른 책을 통해서 말하겠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어찌 되었든 응급처치를 위한 "마음의 심폐소생술"이 꼭 필요한 것은 부정 못할 것입니다.

 

 

"무기력의 비밀" 목차를 한번 보시지요.

 



[ "무기력의 비밀" 목차 ]


Part 1. 무기력 시스템 이해하기


01. 무기력 상태 이해하기
02. 원인에 따라 나타나는 무기력 현상
03. 관점의 전환, 무기력의 숨은 의미
04. 무기력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1) 사회적 무기력
05. 무기력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2) 가정과 학교에서의 무기력
06. 무기력의 심리유형별 특징
07. 무능함을 보여주는 회피와 4가지 패러다임




Part 2. 무기력한 아이들 돕기 - 잠자는 거인을 깨우는 법


여는 글 : 한 번에 한 명씩 구출하기


01. 변화를 이끄는 마음의 심폐소생술 (1) 역설과 긍정
02. 변화를 이끄는 마음의 심폐소생술 (2) 환대, 참여, 존중
03. 무기력에서 벗어나 다시 살도록 돕기 - 격려
04.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유형별 방법
05. 무기력한 아이들을 돕는 지원 전략
    : 회복탄력성 발휘하도록 돕기
    : 관계를 통해 도약하기
    : 성취감이라는 기름 붓기


닫는 글 : 나는 내 삶을 마음껏 살아보았나?
 

 

 

 


 

사족을 덧붙이자면, 정지우 감독의 "4등" 이라는 영화도 위의 책들 "중2병의 비밀", "무기력의 비밀"과 함께 패키지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 포스터에 자그마하게 써진 부제목 "난 수영이 좋은데 꼭 1등만 해야 하나요?"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아이들이 분면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이 있을 텐데요, 그걸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해보고, 찾아보고, 겪어보고, 시행착오도 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하는게 원래 누구나가 살면서 성장해나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일텐데요, 그걸 못 기다려주고, 못 믿어주고, 자녀가 해야 할 성장통을 부모가 대신 의사결정해주고 "내가 시키는 대로 나를 따르라"고만 하는게 요즘의 우리 세대의 부모들이 아닌가 싶어요.

 

 

 

 

 

영화 "4등", 요즘의 우리나라의 자녀 교육의 현실을 가감없이 서늘하게 묘사해놓기도 했고, 엄마와 주인공 아들이 주고 받는 대화, 엄마와 수영 코치의 대화, 엄마와 주인공 아들의 동생이 주는 받는 대화 속에서 많은 생각할 꺼리, 부모로서 자신을 돌아볼 꺼리를 주는 영화였습니다. (더 이상 내용을 쓰면 스포일러가 될 듯 하니 여기까지만... ^^;)

 

아무쪼록, 중학생 자녀를 두신 학부모라면 자녀를 좀 더 잘 이해하고, 그래서 자녀와 더 행복한 일상 꾸러나가는데 이번 포스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안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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