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소설 쓰는 작가 지망생은 아니지만, 호기심이 발동하여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 (김진준 옮김, 김영사, 2002)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네, 맞습니다. 샤이닝(The Shining),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캐리(Carrie), 미저리(Misery), 그린 마일(The Green Mile), 그것(It) 등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영화들의 원작 소설 작가가 바로 스티븐 킹입니다. 

 

이 소설가가 글쓰기, 창작론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이미 엄청난 소설의 인세 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어서 굳이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창작론을 쓰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지요. 머리말에 스티븐 킹이 이 책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한번 들어볼까요? 

 

 

"나처럼 많은 소설책을 팔아먹은 사람은 글쓰기에 대하여 '뭔가' 할 말이 있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쉬운 답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가령 샌더스 대령(케이에프씨)이 엄청난 양의 닭튀김을 팔아치웠지만 그 과정에 대해 알고 싶어 할 사람은 별로 없을 듯 하다. 
주제넘게 글쓰기에 대해 말하겠다고 나서려면 적어도 대중적인 성공보다 더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이렇게 짤막한 책일망정 혹시라도 나중에 내가 무슨 문단의 허풍쟁이나 고상한 체하는 얼간이처럼 취급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 책이나 작가라면 이미 세상에 숱하게 널려 있다. ..그러나 문장에 대하여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델릴로나 업다이크나 스타이런 같은 작가에게는 물어보지만 대중소설가에게는 묻지 않는다. .. 
이제부터 나는 내가 창작을 하게 된 과정, 지금 내가 창작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 그리고 창작의 방법 등에 대하여 말해보려고 한다. 이것은 내 본업에 대한 책이며 문장에 대한 책이다."
- 머리말 중에서

 

스티븐 킹의 창작론, 유혹하는 글쓰기

 

이 책은 크게 아래와 같이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글 쓰기에 대한 책에는 대개 헛소리가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은 오히려 짧다. 나를 포함하여 소설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그리 잘 알지 못한다. 소설이 훌륭하거나 형편없다면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책이 짧을수록 헛소리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 머리말 둘

 

(1) 이력서: 스티븐 킹이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자서전 형식으로 서술한 부분

(2) 연장통: 창작에 필요한 자세와 작가로서 갖추야 할 기본적인 도구들을 이야기한 부분

(3) 창작론: 창작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부분

(4) 인생론: 이 책을 쓰는 도중에 일어났던 교통 사고와 그 결과로 얻은 깨달음을 이야기한 부분

 

저는 이들 4개 챕터 중에서 (1) 이력서 부분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대신 (2) 연장통, (3) 창작론은 좀 재미없게, 더디게 읽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글쓰는 작가가 되어보려고 이 책을 읽었던게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관여도나 몰입도가 떨어지는건 어쩔 수 없더군요. ^^; (4) 인생론을 읽을 때는 산다는게 뭔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1) 이력서 부분을 읽을 때 정말 많이, 크게, 눈물까지 흘리면서 웃으면서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배꼽을 잡고 눈물 흘리면서 웃어제끼면서 책을 읽었던 적이... 이 책 말고는 기억이 없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스티븐 킹의 소설 원작을 읽어본 적은 없는데요, 이 책을 보고 나서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가령, 여러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에 하나만 소개해보자면요, 

 

" (중략) 나는 볼일을 마치고 형이 가르쳐준 대로 뒤처리를 했다. 윤기 흐르는 푸른 잎을 잔뜩 뜯어 밑을 닦은 것이다. 그런데 그게 하필이면 덩굴옻나무였다. 
 이틀 후 나는 무릎 뒤에서부터 어깨뼈까지 온몸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고추는 무사했지만 볼알은 두 개의 정지 신호등으로 바뀌었다. 엉덩이에서 갈비뼈까지 안 가려운 곳이 없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던 것은 그날 사용한 손이었다. 그 손은 도널드 덕의 망치에 얻어맞은 미키 마우스의 손만큼 크게 부어올랐고, 손가락끼리 스치는 부위마다 거대한 물집이 일어났다. 물집이 터지면 빨간 생살이 드러났다. 그로부터 6주 동안은 녹말을 푼 미지근한 물 속에서 좌욕을 했다. 나만 바보가 된 기분, 정말 비참하고 모욕적이었다. 열린 문틈으로 어머니와 형이 카드놀이를 하며 웃고 떠드는 소리, 그리고 라디오에서 피터 트립이 히트곡을 발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p35

 

스티븐 킹은 어렸을 때 귀와 편도선에 병이 심해서 학교를 1년 쉰 적이 있더군요. 1년을 쉬는 동안에 만화책, 소설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아마도 그때의 인풋이 훗날 공포 소설의 왕이 되는데 큰 자양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어렸을 때 몸이 아파서 학교에 1년 못가게 되었다면 또래 친구들에게 뒤떨어지고, 사회에서 낙오되고, 인생의 큰 흠집이라고 여기고 안절부절 했을 것 같습니다.  인생 길게보면 정말 "인생지사 새옹지마" 인데 말이지요. 인생 살아오면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하나의 점이 되고 쌓여, 나중에는 그 점들이 연결이 되면서 선이 되고 면이 되고 하잖아요. 모든 순간이 허투루 지나가는 일이 없고, 그게 다 나중의 내가 되는 것을요. 뭔일 일어났다고 호들갑 떨지 말고 좀더 세상 살이에 편안해지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티븐 킹의 이력서 부분에 소개된 다사다난했던 사건 사고들을 보자니 '이렇게 파란만장하고 재미나게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소설가가 되었구만...' 하고 납득이 되더군요. 한국의 수많은 학생들(저의 학생때 포함, 현재의 제 자식들 포함해서)은 새벽에 일어나서 학교 갔다가, 밤 늦게 까지 학원 다니고, 주말에도 학원가고.... 다들 똑같고, 재미난 거라곤 별 것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나면, 그 경험들 속에서 어떤 소설의 이야기 꺼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 내가 참 재미없게 살았구나. 그냥 범생이 처럼 살았구나..... 지금부터라도 재미있게......'

 

 

스티븐 킹의 집은 어렸을 때 무척 가난했고,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 그리고 형과 함께 살았어요. 스티븐 킹의 어머니가 해주셨던 말 한마디가 스티븐 킹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장면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내가 지어낸 것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대부분을 만화책에서 베꼈다는 사실을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실망하시는 것 같았고, 따라서 내 기쁨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윽고 어머니가 공책을 돌려주셨다. 
 "기왕이면 네 얘기를 써봐라, 스티브. <컴뱃 케이시> 만화책은 허섭쓰레기야. 주온공이 걸핏하면 남의 이빨이나 부러뜨리잖니. 너라면 휠씬 잘 쓸 수 있을 거다. 네 얘기를 만들어봐."
...
나는 어머니가 즐거워하시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웃어야 할 장면에서는 틀림없이 웃으셨다- 사랑하는 아들을 기쁘게 하려고 웃으셨는지, 아니면 정말 재미가 있어서 웃으셨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이번에 베끼지 않은 거니?"
 끝까지 읽은 후 어머니가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책으로 내도 될 만큼 훌륭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말은 지금껏 어느 누구에게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래빗 트릭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네 편 더 썼다. 어머니는 한편이 완성될 때마다 나에게 25센트 동전 하나를 주셨고, 네 명의 언니들에게 보내어 두루 읽혔다. 이모들은 마아 어머니를 불쌍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
 네 편의 이야기. 편당 25센트. 그것은 내가 이 일로 벌어들인 최초의 1달러였다. 
- p33

 

 

 '인생론: 후기를 대신하여' 부분에서는 이 책을 쓰는 도중에 산책을 나갔다가 승합차에 치여 수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죽을 고비를 여러차례 넘겼던 얘기가 나옵니다. 스티븐 킹은 이때 "죽음"을 그 어느때보다도 가깝게 느꼈을 것입니다. 6주 동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운 재활의 기간을 거치는 와중에 "글쓰기 창작"은 스티븐 킹에게 살아야 할 목적이었고, 살아갈 수 있는 '생명수'가 되어주었습니다. 세상에 빈손으로 태어나서, 세상에 의미있는 무언가를 창조해내고, 세상이 이전보다는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는 것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게 있을까요? 

 스티븐 킹이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 쓴 "글씨기의 목적"에 대해서 한번 들어보시지요. 

 

 "글쓰기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데이트 상대를 구하거나 잠자리 파트너를 만나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이 책의 일부분은--어쩌면 너무 많은 부분이--내가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 내용이다. 나머지는--이 부분이 가장 쓸모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허가증이랄까.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여러분도 해야 한다는, 그리고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여러분도 해내게 될 것이라는 나의 장담이다. 글쓰기는 마술과 같다. 창조적인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생명수와도 같다. 이 물은 공짜다. 그러니 마음껏 마셔도 좋다. 
 부디 실컷 마시고 허전한 속을 채우시기를."
- p332

 

 

'연장통'과 '창작론' 부분에서는 이 책의 본래 주제인 "유혹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인데요, 저는 데이터 분석하는 사람이지 글쓰기가 본업은 아니므로 주저리주저리 이 포스팅에서 옮겨적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비단 '글쓰기, 창작론' 뿐만이 아니라 모든 영역이 다 그렇듯이, "유혹하는 글쓰기"를 하려면 "많이 읽고, 많이 써봐라"는 조언으로 요약이 될 수 있겠습니다. 뭐, 뻔하다면 뻔한 조언인데, 이것만한 진실이 또 없지 않겠습니까?! 그 어떤 영역이 되었든지 간에요. 

 

저도 2016년 부터 일주일에 한편씩 블로그 포스팅을 꾸준히 해오고 있고, 2021년 7월 현재 620여 편의 글을 포스팅 했으니 "많이 읽고, 많이 써봐라"는 조언에 대해서는 어깨 뿌듯하게 펼 수 있겠네요. 주말마다 2시간~4시간씩 투자해서 꾸준히 글 포스팅해온 제가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__^

 

 

스티븐 킹은 소설의 속도감을 높이기 위해서 [ 수정본 = 초고 - 10% ] 라는 공식에 따라 불필요한 단어를 생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호텔 이야기> 라는 짧은 초벌 소설을 보여주고, 이어서는 [수정본 = 초고 - 10%] 의 공식에 맞게 불필요한 단어를 생략하고 수정한 -- 필요에  따라서는 필요한 부분을 추가하기도 하지만...-- 예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저도 이 포스팅의 초고에서 불필요한 10%를 한번 빼볼까하고 살펴보려니... 뺄게 없어 보이네요. ㅎㅎ  이번 포스팅 글이 그리 길지도 않고, 또 읽다보면 다 재미있죠? 그쵸? ... 요 문장만 삭제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재미 없죠? -_-;

 

 

스티븐 킹은 쓸데없는 "부사의 남발"을 징글징글하게 싫어합니다. 저는 전문 소설가가 아니므로 이 조언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부사 좀 여기저기 가져다 쓰면 뭐 어때서요... 부사 쓴다고 지구가 망하나?  ㅎㅎ (스티븐 킹이 한글 번역해가면서 제 글 읽는 일은 없겠죠? ㅋㅋ)

 

 

모처럼 즐거운 책 소개할 수 있어서 저도 신나네요!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책 읽어보시고 행복하세요! :-)

 

ps. 이 책은 이성을 유혹하는 연애의 기술, 이런 내용 아닙니다. 그냥 글쓰기 관련 책이예요. 혹시 제목을 오해해서 낚이는 분이 있을까 해서 노파심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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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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