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 2003)’ 라는 고전(?)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원래 제 블로그에 ‘독서일기’라는 카테고리에 가끔씩 책 읽고 소감을 썼는데요, 이번에 처음으로 영화 얘기를 써봐요. (이 참에 ‘책이랑 영화랑’으로 블로그 카테고리 이름도 바꿨어요.) 

 

굉장히 오래된 영화이기도 하고, 예전에 포스터를 봤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있었는데요, 영화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2004년도에 아카데미 각본상과 골든 글로브 각본상을 수상했던 영화네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

 

(이 블로그 포스팅에는 스포일러가 들어있으니 아직 이 영화를 안보신 분은 여기서부터는 포스팅 읽기를 중단하시길 권합니다.)

 

영화의 줄거리를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외로운 기혼 남녀가 썸타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예요. 소설책 ‘메디슨카운티의 다리’ 같은 그런… 내용이 어찌보면 맨날 드라마에서 보는 뻔하다면 뻔한 내용인데요,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예요. 그래서 각본상을 두군데서나 탔겠지요? 

 

영화는 밥 해리스 (Bill Murray) 가 위스키 광고를 촬영하러 일본에 출장온 장면에서 시작을 해요. 입국을 환영하러 온 여러명의 일본사람들로부터 명함을 건네받으면서 인사하는,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낯선 첫만남에서 시작해서, 시차로 호텔에서 잠을 못자고 뒤척이지요. 광고를 촬영할 때 감독이 일본어로 길게 샬라~ 샬라~ 연기 주문을 하는데요, 통역사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세요” 라고 통역을 해줘요. 그러자 밥이 “그게 다예요?” 라고 되묻지요. 그리고 “고개를 어느쪽부터 돌려요?”라고 밥이 한마디 짧게 물어보자 통역사가 일본어로 감독에게 또 길게 일본어로 자기들끼리 블라~블라~해요. ㅋㅋ 일본어를 못하는 밥 입장에서는 “Lost in Translation” 인거고, 당황스러웠을거 같아요. 이국땅에서 외지인으로 머물다 보면 “우리는 여기에 속하지 않아요.”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고, 그래서 고향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지지요.

 

호텔에 마사지사가 와서는 일본이 특유의 영어 발음을 하는데 밥이 못 알아들어요. 광고 사진사가 영어로 말하는데 역시 밥이 발음을 잘 못알아 듣지요. 병원에서 벤치에 앉아 옆에 있는 일본인 할머니와 영어로 얘기하는데 또 발음을 잘 못알아들어요. “Lost in Translation” 인데요, 웃기기도 하면서 또 영어가 원어가 아닌 저의 처지가 오버랩이 되면서 웃프기도 해요. (영어로 말했는데 원어민이 “Sorry? Pardon? What?…” 이러면 어찌나 당황스럽고 쑥스러운지요. 다들 그렇죠?)

 

(영화 제목 “Lost in Translation”의 경우 통역이 이미 실패했다, 소통에 뭔가 놓친게 있고 전부 전달이 안되었다, 말과 글로는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다, 뭐 이런 느낌인데요, 이걸 한글로 번역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제목의 어감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요? 영어와 한글의 영화 제목 자체가  바로 “Lost in Translation”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하고자 했던 “통역의 실패, 부족, 누수 (Lost in Translation)”은 단지 영어와 일본어를 쓰는 이국인들 간의 언어 장벽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예요. 같은 영어를 쓰는 미국인끼리도, 심지어 뜨겁게 사랑해서, 서로 같이 있기만 해도 좋아 죽을라고 하고 항상 붙어다니다가 결혼까지 한 부부 사이에서도 “소통과 공감의 실패 또는 부족(Lost in Translation)”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바로 이게 우리가 이 영화에 여운을 느끼는 이유이겠지요.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어찌보면 혼자이고,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긴 하지요.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유대감과 동질감도 느끼면서 소통하고 공감하고 싶고, 그러면서 또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속에 자유를 느끼고 싶어하기도 하는 모순되고 미스테리어스한 욕구와 욕망 덩어리가 바로 인간이지요. 샬럿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기위해 책을 읽어보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답을 못찾고 있고, 밥은 노래방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노래(hard song)라면서 “삶은 무의미해요. 바람처럼, 파도처럼…” 가사의 노래를 불러요. 이런게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잖아요. 

 

외로움에 치를 떠는 샬럿(Scarlett Ingrid Johansson)과 밥이 서로를 첫눈에 알아보고 또 빠르게 가까워졌던걸 보면 사람에게는 직감적으로 서로의 욕구 결핍을 알아채는 능력이 있는것 같아요.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없는 반쪽을 서로 끌어당기듯이 말이예요.  

 

샬럿은 결혼 2년차, 밥은 결혼 25년차예요. 대충 계산해보면 샬럿은 26살(?), 밥은 50살(?) 정도 되겠네요. 나이 차이가 띠동갑(24살?) 인데도 서로 말이 통하고, 서로에게 끌릴 수 있다는게 신기해요. 5살 차이만 나도 서로의 공통 관심사가 다르고, 10살 차이만 나도 세대차이나서 10분 이상 같이 있기도 힘들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런데 둘이 대화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해요. 서로 각자의 속마음,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해요. 그리고 서로의 말에만 집중하면서 잘 들어주고요. 영어로된 영화 포스터에 보면 상단에 "Everyone wants to be found"라는 문구가 있어요. 우리는 누구나 다 외롭고, 그래서 누군가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하고, 또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싶어하잖아요. 마치 샬럿과 밥이 그렇듯이요. 

 

밥이 샬럿에게 해줬던 말들 중에 샬럿에게 울림이 있었던 말들이 있었을거 같아요.(대사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기억이 가물가물….) 

 

“전 엘리베이터에서 당신을 처음 봤어요. 그때 당신은 환하게 웃었는데… 그 이후로 당신이 그처럼 웃는 모습을 못봤어요. 자 웃어봐요.”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삶이 좀더 편해져요.” 

 

샬럿과 밥이 서로 얘기하는 장면들은 이전의 샬럿의 전화 통화, 그리고 밥의 전화 통화 장면과 크게 대비가 돼요. 

 

샬럿이 눈물을 흘리면서 전화로 엄마에게 말해요. “오늘 절에 갔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무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건 살아있는것 같지 않다는 절망의 표현일텐데… 하지만 대화는 여기서 끝나요. 전화 건너편의 엄마는 “I’ve got to go. Talk to you later” 라면서 전화를 끊어요. 그리고 이런 패턴이 계속 반복이 돼요. 샬럿의 남편은 독백하듯이 일 얘기만 하다가, “오늘은 하루 쉬면 안돼?”라며 외로움에 힘겨워하는 SOS를 치는 샬럿을 뒤로하고 부랴부랴 또 일하러 떠나요.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고 키스를 하지만, 같이 있어도 외로워하는 샬럿의 마음을 모르는 것 같아요. “Lost in Translation” 이예요. 

 

이런 패턴은 밥도 마찬가지예요. 밥과 아내가 전화통화를 하다보면 아이들 얘기 80%, 인테리어 얘기 19%, 밥의 감정 1% 얘기(“나에 대해 걱정해줄 시간이 있기는 하구?”)하려고 하면 아내는 “I’ve got to go. I’ll call you later. Bye”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려요. 속깊은 얘기로 더 들어가지 못하고, 더 이상의 대화를 회피하면서 전화가 끝나요.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 일까요. 이런 장면들은 저를 되돌아보게 하기도 해요. 

 

밥이 결혼 25년차라고 하니 샬럿이 웃으면서 말해요. “그러면 당신은 분명 중년의 위기를 겪고 계시겠군요.” 라구요. 저도 나이를 먹고보니 “중년의 위기”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오더군요. ㅎㅎ “위기”라는 말이 “위협과 기회”를 둘 다 내포하고 있는 말이잖아요. “중년의 위기”는 인생의 반환점에 전반기를 뒤돌아보고, ‘앞으로도 지금처럼같이 살 것인가?’라는 고민속에 후반기의 삶을 그려보는 시간이기에 참 귀한거 같아요. 나이 든다는 것에는 ‘젊음’의 눈부신 아름다움과 원기충만함을 잃어간다는 슬픔도 있지만, 또 품격과 여유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인식하고 더 지혜롭게 통제하고 누리고, 또 뭔가를 생산하면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분명한 혜택도 있어요. 

 

샬럿이 이어서 물어봐요. “그래서 포르쉐는 사셨어요?” 라고요. ㅎㅎ  누군가에게는 포르쉐가 로망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포르쉐타는 사람을 보면서 세상사람 시선에 목말라하는 속물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을텐데요, 중년의 좋은 점 중의 하나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또 그걸 지를 수 있는 경제적이고 심리적인 능력과 용기(객기?) 아니겠어요?! 아, 저도 포르쉐 사고 타보고 싶어요. ㅋㅋ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 영화 여성감독이 만들었을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검색해보니 Sofia Coppola 여성감독이던데요, 이 영화의 각복도 직접 썼어요. 어쩐지 미묘한 감정의 디테일이 대사나 화면에 살아있더라니!

 

왼쪽 사진의 여성 감독이 바로 Sofia Coppola 예요. 패션 디자이너에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니 다재다능한 분이예요. 

 

영화 대부의 감독 포드 코폴라 감독의 외동딸이라네요. (대부3에 배우로도 출연했다고 하는데, 배우로서는 혹평을 받았다고 해요. 이때의 혹평 덕분에(?) 각본가 겸 영화감독으로 전향(?) 한거 같아요. 인생은 새옹지마!)

 

 

영화의 제일 마지막 장면에 리무진을 타고 공항으로 향하던 밥은 쓸쓸히 거리를 혼자 걷고 있는 샬롯을 보고는 리무진에서 내려 샬롯에게 향해요. 그리고는 샬롯을 꼬옥 껴안고서 귓속말로 무어라 말하고는 굿바이 인사를 하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각자의 가족에게로 돌아가지요. 이때 밥이 샬롯에게 귓속말로 무어라고 말했을지 궁금해요. 둘이 편안하게 씨익 웃었던걸 보면 혹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봐요.

“샬롯, 당신과 함께한 며칠이 내겐 너무나 행복하고 소중했어요. 만나면 설레고, 그래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함께 했던 순간 순간들이 그리울 거예요. 당신은 이쁘고 아직 젊어요. 당신이 하고 싶은걸 찾아서 해봐요. 계속 글도 쓰고요. 당신은 웃을 때가 더 이뻐요. 자, 한번 웃어봐요.”  뭐,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ㅎㅎ 아니면 말고요. 

 

 

둘은 이렇게 헤어졌고 각자의 길을 가겠지요. Life goes on. 샬롯과 밥의 삶, 가정은 이전과 같았을까요, 아니면 달라졌을까요? 

 

ps. 스칼렛 요한슨하면 영화 ‘어벤져스’의 액션 히어로, 여전사로서의 ‘블랙위도우’가 떠올랐는데요, 이 영화를 보고 난 후로는 호텔 창가에 걸터앉아 빌딩숲을 쳐다보고 있는, 헤드폰을 끼고 버스를 타고 있는, 도시를 홀로 걷고 있는, 노래방에서 난 특별해라며 유혹하는 노래를 부르는, 외로우면서도 매력적인 여성으로서의 ‘샬럿’이 먼저 떠오를것 같아요. 스칼렛 요한슨이 이렇게 매력적인 배우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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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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