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추 (Late Autumn), 김태용 감독, 2011년 ]

김태용 감독의 2011년 영화 "만추"를 2024년 10월 가을의 어느날 이제서야 봤습니다. 
 


이 영화 제작하고 나서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는 결혼을 했고, 또 탕웨이는 2011년 5월 백상예술대상에서 외국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니 꽤 특별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네요. ㅎㅎ

(* 경고: 여기서부터는 스포 가득한 감상평이니 아직 영화를 안 본 분은 주의하셔요.)

영화 제목 "만추 (Late Autumn)" 에서 느껴지는 첫 인상은 "진하고 깊은 외로움"이예요. 
감옥에 혼자 갇혀 있어야 했던 애나, 어머니를 잃은 애나, 집에 왔지만 어머니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애나의 싸인에만 관심을 가지는 형제자매 친척들, 애나가 느꼈을 감정이 시애틀의 "만추" 그 자체였을거 같아요. 
 
몇 개 인상 깊었던 장면들 위주로 느꼈던 점 풀어볼께요. 
 

(장면 1) 감옥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어머니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애나

여자주인공 중국인 애나(탕웨이 역)는 남편을 죽였다는 혐의로 감옥에 갇혀있는 2537번의 죄수예요. 어머니의 죽음으로 장례식장에 참석하기 위해 72시간 동안만 보석으로 풀려났어요.  
남자주인공 한국인 훈(현빈 역)은 돈을 받고 여자들의 남자 애인이 되어주는 에스코트예요. 훈은 전 애인의 남편에게 쫒기고 있는 신세예요. 
남녀 주인공이 어쩌보면 더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수 없을만큼 가장 밑바닥의 신세예요. 
보통의 인연이 아니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이예요. 
 





(장면 2) 시애틀 놀이공원

애나와 훈 간에 친근감이 싹트고 사랑이 물들어가기 시작한 장면을 꼽으라면 둘이서 시애틀의 놀이공원에 가서 놀던 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문닫은 놀이공원에서 둘이서만 범퍼카를 타다가, 동화의 한 장면처럼 무대가 열리고, 애나와 훈 앞에 헤어진 연인인 듯한 두 남녀가 무성영화처럼 옥신각신을 해요. 이때 훈과 애나는 무성영화에 대사를 입히듯 둘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게 돼요. 
우리가 영화를 보고, 연극을 보고, 소설책을 읽고, 이런게 어찌보면 지금의 내 마음을 투영하고 그래서 공감받고 싶은 바램이 있어서 인가봐요. 

* 애나: "난 당신의 사랑을 원해요."
 




(장면 3) 시애틀 시장

시장에서 애나는 자신이 남편을 살해 한 혐의로 수감 중인 죄수이며, 몇 시간 후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해요. 그리고, 훈이 못알아 듣는 중국어로 왜 자신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이야기를 하지요. 이때 중국어를 모르는 훈은 오직 자신이 아는 중국어인 "하오(좋다)"와 "화이(싫다)"로 생뚱맞게 맞장구를 치면서 애나의 얘기를 들어요. 대화라는게... 뭔가 즉각적인 솔루션을 바라는게 아니라면... 그저 옆에 있으면서 눈을 마주하면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가봐요. 
 




(장면 4) 장례식 후 식사

훈은 애나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꽃을 들고가서 조문을 하고, 애나와 조문객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요. 
이때 애나의 이전 남자 친구인 왕징과 한 테이블에 앉게 되죠. 
비록 훈은 지난밤 애나가 중국어로 말한 애나와 왕징 간에 있었던 일을 못 알아들었을테지만, 애나와 왕징 간의 어색한 표정을 읽고는 둘이 심상치않은 관계인것을 간파해요. 

그리고 훈과 왕징은 서로 몸싸움을 하게 되죠. 얼핏보면 생뚱맞아보이고 잘 이해가 안가는 대사가 나와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에 깊었던 대사요. 

* 훈: "이 사람이 내 포크를 썼어요."



그런데 애나가 훈의 편을 들면서 왕징에게 화를 내고, 왜 훈에게 사과를 하지 않느냐고 화를 내지요. 
7년전 어느날 왕징이 유부녀인 애나에게 찾아가 같이 도망가자고 했다가 애나 남편이 이를 알게 되고, 애나 남편은 애나를 폭행하고, 애나는 기절하게 돼죠.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집에 들어간 애나는 집안에 차갑게 죽어있는 남편을 보게 되죠. 아마 남편이 왕징을 죽이겠다고 왕징과 싸우다가 우발적으로 왕징이 애나의 남편을 죽이고 도망갔던게 아닌가 싶어요.(영화의 첫 장면에 얼굴이 멍들고 넋이 나간 애나의 모습을 보면... 애나가 남편을 살인했을거 같지는 않아요. 왕징이 애나의
남편을 죽인 장면이나 명시적인 대사는 없고 그냥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애나가 훈과 시애틀의 시장을 구경하고 나서 벤치에 앉아 얘기하던 중에 "그땐 그를 위해 죽을 수도 있을만큼 좋아했어요" 라고 말하던 장면이 있었어요. 왕징을 사랑했던 애나는 왕징을 위해 대신 살인자라는 혐의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간거 같아요. 

그런데 애나가 감옥에 간 사이에 왕징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던 거예요. 애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말이죠. 

이런 애나의 사정을 알고나서 훈을 편들면서 애나가 왕징에게 화냈던 대사, 그리고 왕징의 대답을 보면 이제 이해가 될거예요. (유부녀였던 애나는 왕징의 여자가 아니었던거고, 왕징은 사과 한마디 없었던거고...)

* 애나: "왜 이사람 포크를 썼어요? 당신 게 아니라구요! 그런데 사과도 안하잖아요. 그래도 되는 거예요?" 
* 왕징: "미... 미안해"

평생 살인범의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하고 7년간 왕징 대신 감옥살이를 한 애나에게, 왕징은 드디어 "미안해"라고 사과를 해요. 





(장면 5)  옥자와 훈

* 옥자: "나랑 도망가서 살자, 응?"

왕징이 애나에게 했던 말을 옥자는 훈에게 해요. 그런데 애나에게 사랑에 빠진 훈은 이를 거절해요. 
옥자의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요.(훈의 친구가 옥자 남편 얘기를 하며 훈보고 몸 사리면서 잠시 쉬라고 하자, 훈은 "그런거 무서우면 이 일 어떻게 하냐"고 했던걸 보면... 핑계같아요)



그런데 이게 애나와 왕징의 7년전 모습의 데자뷰처럼 느껴져요. 
애인으로부터 도망가서 같이 살자는 제안을 받은 애나와 훈, 그리고 질투심과 배신감으로 이성을 상실한 애나의 남편, 그리고 옥자의 남편. 
애나는 남편이 죽어서 살인범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되고, 훈은 옥자가 죽어서 살인범 혐의로 감옥에 갈 처지예요. 
(옥자는 남편이 죽인걸까요? 아니면 자살을 한걸까요? 전 옥자의 남편이 옥자를 죽이고 훈에게 뒤집어 씌운게 아닌가 싶어요.)



(장면 6)  키스

애나가 감옥으로 다시 돌아가는 버스를 훈은 같이 타게 되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버스가 잠깐 휴게소에 정차를 하게 되죠. 
그리고 훈은 애나가 출옥하는 날 이곳 휴게소의 카페에서 애나를 기다릴테니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해요. 
그리고 2분 27초동안 애나와 훈은 키스를 하게 되죠. 2분 27초... 
이 장면을 보면서 저의 숨 쉬는 소리, 침 꼴깍 삼키는 소리만 들렸던거 같아요. 



훈이 주는 시계를 계속 돌려주려 했던 애나, 훈이 준 명함을 휴지통에 버렸던 애나, 훈과의 시애틀 데이트 후 돈을 주면서 남자 에스코트와 거래로 끝내려했던 애나, 하지만 훈과의 짧지만 잔잔했던 함께 했던 시간들 속에 애나의 마음도 열렸나봐요. 사랑스럽고 또 간절하게 훈과 키스를 하는걸 보면 말이죠. 

애나는... 감옥에 간 훈을, 언제 세상에 나올지 알 수 없는 훈을... 기다리려나요? 몇 번의 늦 가을을 보내야 하려나요? 



(장면 7) 

옥자의 남편이 사냥개를 데리고 훈을 찾아내서 하는 짧은 대화예요. 

* 옥자 남편: "옥자가 너랑 있으면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 훈: "그냥 얘기했습니다.(We just talked)"



결국, 사랑은 소통인가봐요. 영화 제목 "만추"처럼 "외로움"에 병든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 얘기를 귀기울이고 들어줄 단 한 사람, 비록 중국어로 얘기해서 알아듣지 못할 망정 고개 끄덕어주고 추임새를 넣어줄 단 한 사람, 지금 몇 시냐고 시간을 물어봐주고 안부를 물어봐 줄 단 한 사람, 첫 장면에서 왜 나한테 돈을 빌릴 생각을 했냐는 애나의 질문에 "당신이 웃었잖아요"하면서 그걸 "Yes"로 해석할 줄 아는 단 한 사람, 말하지 않아서 표정 속에서 더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단 하사람, 온 몸으로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한건가봐요. 

당신에게는 늦은 가을, 아무 이유없이 "그냥", "애기할 누군가"가 있나요? 

없다면, 영화 "만추"를 볼 시간이네요. 
즐겁게 감상하세요. 

728x90
반응형
Posted by Rfriend
,

제목: 서부 전선 이상 없다.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2022)
감독: 에드워드 버거
배급사: 넷플릭스


이 영화의 원작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입니다. 이미 1930년과 1979년(델버트 만 감독)에 영화화가 되었구요, 2022년에 넷플릭스에서 배급한 동명 영화는 벌써 3번째 영화화된 것입니다. 저는 넷플릭스에서 배급한 3번째 영화를 봤어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장면들, 그리고 생각들 적어봅니다. 

 


(1) 이 영화는 제가 그동안 봐왔던 세계 대전 영화와는 달리, 영국인, 프랑스인, 미국인이 아니라 독일 군인이 주인공인 세계 1차 대전 영화입니다. 그동안의 세계1/2차 대전 영화에서 독일군은 악의 축, 무찔러야 할 적, 인간의 탈을 쓴 악마로 묘사되곤 했는데요, 이번 영화에서는 독일군도 뜨거운 피가 흐르고, 죽음을 무서워하고 살고자 하며, 옆의 전우의 죽음에 슬퍼하고, 가족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묘사가 됩니다. 여태껏 세계대전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독인군 주인공인 파울이 죽을 까봐 가슴 졸이면서 본 영화네요. 누구의 시선으로 영화를 만드느냐가 정말이지 엄청난 관점의 전환을 일으켜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주인공 파울)



(2) 영화의 주인공 파울은 17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군에 자원입대를 하게 됩니다. 이때 학교의 늙은 선생이 새파랗게 젊은 고등학생들을 선동하여 전쟁의 총알받이가 되게끔 하는 장면이 나와요. “전쟁은 늙은이들이 일으키고 피는 젊은이들이 흘린다.”는 말이 저런거구나 싶었어요. 이래서 젊은이들은 투표 잘해야 합니다. 


(3) 파울은 후퇴를 하던 중 물 웅덩이에 빠지게 되고, 프랑스 군에게 포위되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이에 파울은 죽은 척하고 쓰러져있는데요, 프랑스 군이 이를 눈치채고 파울을 죽이려 해요. 그래서 둘은 육박전을 치르게 되는데요, 이때 파울이 대검으로 프랑스 군인의 가슴을 찌르게 됩니다. 이 둘이 서로 뒤엉켜서 삶과 죽음을 사이에 두고 싸우는 모습이 너무나 처절하고 잔인해요. 전쟁의 참상이 이렇게 비열하고, 잔혹한거구나 싶게요. 파울은 자신이 죽인 프랑스 군인의 옷품에서 수첩을 꺼내는데요, 거기에서 나온것은 자신이 죽인 프랑스 군인이 평범한 인쇄공이었고,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였다는 것이었어요. 이를 안 파울은 오열해요.  전쟁 하면 무슨 이념, 종교, 주의, 대의명분을 얘기하는데요, 실제 일어나는 전쟁의 최전선에서는 왜 싸우는지도 모른채 그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오직 원초적인 생존본능만으로 서로를 죽이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래야 내가 사니깐요. 

전쟁 영화하면 블록 버스터급의 화려한 전투 스펙터클에 그동안 취해있었다면, 이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 비인간성을 직시하게 합니다.  


(4) 독일의 정치인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는 국가 지도자와 군인들의 오판으로 시작된 전쟁에 죄없는 독일의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휴전 협상을 주도하게 됩니다. 군인들은 명예를 언급하며 휴전을 반대하지만, 마티아스는 “내 아들이 전쟁에서 죽었는데, 그 명예는 어디서 찾느냐?”면서 더 이상의 의미없는 젊은이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휴전을 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영화 밖의 이야기인데요, 독일 청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휴전 협상단으로 나섰던 마티아스는, 휴전 후 ‘매국노’라는 오명을 쓰고 독일 청년에 의해서 암살 당했다고 합니다. 정말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휴전 협상 마티아스)



(5) 안전한 서부 전선의 후미에서 고기와 와인을 마시면서 독일군을 지휘하는 야전사랑관 프리드리히 장군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태어나 군인으로서 승승 장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곧 전쟁이 끝나니 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신세한탄하는 장면이 나와요. 피가 튀기는 전쟁의 최전선이 아닌, 생명의 위협이 없는 전선의 후미에서 장기판의 졸을 가지고 놀이를 하듯 전쟁을 지휘하는 프리드리히 장군 입장에서는 전쟁이 끝나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예요. 미친놈…
1918년 11월 11일 11시 휴전 협정이 발효되기 20분 전, 프리드리히 장군은 독일군에게 서부 전선으로 진격하여 땅을 더 차지하고 군인으로서 마지막 명예를 얻고 귀향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자신은 물론 전선의 후미에 그대로 남아있고… 완전 미친놈이예요.)  

이 장면은 한국의 6.25 영화인 <고지전>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휴전을 몇 분 앞 둔 시점에 38선으로 진격을 명령한 군 지휘관, 휴전을 단 몇 분 남기고 진행된 마지막 고지전에서 또 희생된 수많은 생명들… 


(6) 휴전을 하루 남긴 고요한 날에, 파울은 자신을 챙겨준 고참 군인이자 전우인 카트와 함께 마지막으로 프랑스 농장으로 거위와 달걀을 훔치러 갑니다. 이때 카트가 “전쟁은 열병 같아.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갑자기 들이닥쳤지. 신은 가만히 보고만 있어.” 라는 말을 해요. 왜 하는지도 모르는 전쟁,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열병 처럼 순식간에 사람들을 불사르면 번지는 전쟁이 정말 열병 같아요. 

카트는 결국 프랑스 농장에서 거위 알을 훔쳐 먹다가 농장 아들이 쏜 총에 맞아서 죽어요. 휴전을 고작 하루 남기고 달걀 하나와 삶을 바꾼것이 되어버렸어요. 너무나 허무하게도 말이지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파울과 카트)



(7) 영화의 마지막에 파울이 구해준 새로온 신병이 파울을 포함한 사망한 전우의 군번 인식표를 수집하는 장면은 영화 초반 신병으로서 사망한 전우의 군번 인식표를 수집하던 파울의 모습과 오버랩이 됩니다. 5초, 아니 1초만 휴전 협정 발효를 알리는 싸이렌이 더 일찍 울렸더라면… 파울은 살 수 있었을텐데… 하는 자조섞인 한숨이 나왔던거 같아요. 


(8) 영화의 마지막에 이런 자막이 나와요. 

“전쟁은 참호전의 양상으로 굳어졌고, 1918년 12월 전쟁이 끝났을 때는 오직 서부 전선에 적은 이동만 있었을 뿐이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수많은 생명을 빼앗아갔던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수행되었던 것일까? 
전쟁에서 과연 승자가 있을 수 있을까? 
그동안 국가나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전쟁들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728x90
반응형
Posted by Rfriend
,

영화 "그린 북 (Green Book)"

감독: 피터 패럴리
출연: 비고 모텐슨 (토니 발레롱가 역), 마허샬라 알리(돈 셜리 역)

영화의 제목인 “그린 북(Green Book)”은 1950~60년대 아직도 흑인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 남부 지방에 흑인이 여행할 때 안심하고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을 안내해주는 책을 말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인종차별”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를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와 백인 운전사의 로드 무비 형식을 빌려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론 인종차별의 민낯을 직시하며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입니다.  

영화 그린북 (Green Book)

 


이 영화는 1962년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입니다. 영화 마지막에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두 명의 실존 인물 사진이 나와요. 유족은 이 영화에 허구가 많이 가미되었다면서 반발했다고는 하네요.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극장 총 수익이 3억 416억 달러로 영화 흥행도 큰 성공을 거둔 영화예요.  

영화는 교양과 품위를 갖춘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박사와, 말과 행동이 거칠고 서민적이며 허풍과 임기응변 선수인 “백인” 운전사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의 8주 간의 미국 남부 트리오 공연 (피아노, 첼로, 베이스) 동안 둘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다룹니다. 일반적으로 “흑인”과 “백인” 하면 떠오르는 선입관과는 정반대의 설정인데요, 이런 선입관에 반하는 관계 속에서 인종 차별에 대한 얘기를 풀어나가는 감독의 줄타기가 대단합니다. 아래의 영화 장면처럼 돈 셜리 박사는 마치 왕족처럼 차려입고 상아 의자에 앉아 내려다보고 있고, 토니 발레롱가는 직업을 얻기 위해 인터뷰를 보는 입장에서 아래쪽 허름한 의자에 앉아 올려다보고 있어요. 처음엔 좀 어색하지 않으세요? (우리가 이리 세뇌되어있어요. -,-;)




저는 이 영화에 나오는 자잘한 유머가 무척 재미있었어요. 돈 셜리 ‘박사(Doctor)’ 라고 해서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인줄 알았는데 카네기홀에 사는 피아니스트라고 해서 놀랐다는 토니 부부의 얘기, 핏츠버그에는 가슴 큰 여자가 많아서 찌찌버그라고 불린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핏츠버그에 가면 직접 두 눈으로 확인을 해보겠다는 토니, “죠팽”은 아무나 칠 수 있지만 이런 음악은 당신만 연주할 수 있다는 토니의 응원성 멘트에 돈 셜리가 “쇼팽”을 나처럼 치는건 아무나 못하죠 하면서 정중하게 바로잡아 주는 장면이라든지… 방긋 미소지게 하는 소소한 장면들이 여럿 있어요. :-)

영화 마지막 즈음에 첼리스트가 말해주는 장면 중에 돈 셜리가 북부에서 공연하면 남부에서보다 3배나 더 많은 공연료를 받고 또 인간적으로 대접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남부지역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면서 낮은 공연료에도 순회공연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돈 셜리가 남부 지역 공연을 자원했는데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고자 용기를 냈다는 말이 큰 감동이 있었어요. 

“왜냐면 천재성만으론 부족하거든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용기가 필요해요.”
(Because genius is not enough. It takes courage to change people's hearts.)


토니와 돈 셜리가 여행을 하면서 처음에는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갈등하지만 점차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또 서로 약한 부분을 도와주면서 일면 닮아가는 과정이 기분좋게 그려졌어요. 가령, 토니가 부인에게 편지를 쓸 때 돈 셜리가 세익스피어처럼 아름다운 문장으로 편지를 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든지, 후라이드 치킨을 손으로 잡고 먹어본 적이 없는 돈 셜리에게 토니가 강권하면서 기어이 손으로 먹는 후라이드 치킨의 맛을 볼 수 있게 해준다던지… 편지 코치를 받던 토니가 동생과 연락을 끊고 지내는 돈 셜리 박사에게 먼저 편지를 써보라고 권하는 장면… 마지막 공연을 깽판치고 크리스마스 전에 뉴욕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을 못자고 운전하다가 지친 토니가 도저히 안되겠다며 숙박시설에서 잠을 자고 가자고 하자 돈 셜리는 운전대를 잡고 교대로 운전을 해주는 장면… 참 훈훈하고 따뜻한 장면들이예요. 
(돈 셜리 유족은 영화가 너무 미화되었다고 반발했다고 하네요. -,-;)


돈 셜리와 토니 발레롱가가 항상 사이좋게 공연을 다녔던 건 아니고, 싸우기도 했는데요, 돈 셜리가 비가 내리는 와중에 차를 박차고 나가서 울부짖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돈 셜리는 “나는 충분히 흑인도 아니고, 난 충분히 백인도 아니고, 난 충분히 남자도 아니고… 그럼 난 뭐지?” 라고 소리쳐요. 

흑인이면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앵글로색슨 백인처럼 교양있고 품위있게 말하고 행동하는 돈 셜리. 남부지방에서 흑인 여러명이 농장에서 일하고 있고, 백인 토니가 고장난 차를 수리하고, 돈 셜리 박사는 차 옆에서 기다리고, 농장의 흑인들과 돈 셜리가 눈이 마주치는 장면은 느리게 지나가면서 긴 여운을 남겨요. 돈 셜리는 수영장에서 남자랑 둘이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잡히기도 해요. 돈 셜리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면서 사회에서 비주류로서 당할 수 있는 차별을 당하고 있는지라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 싶어요. 그럼에도 돈 셜리는 남 탓, 사회 탓만 하고 주저앉는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남부지방 순회공연을 해요. 그래서 더 감동이예요. 

 

돈 셜리는 인종차별에 뚜껑이 열려서 주먹이 먼저 나가는 토니에게 "폭력으로는 못 이겨요. 품위(dignity)가 이겨요." 라고 말해요. 마하트마 간디가 연상되는 장면이었어요. 

 


저는 이 영화 그린북을 인종 차별을 너무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 미덕을 갖춘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language exchange 를 하고 있는 미국 변호사분과 이 영화 얘기를 나누었는데요, 미국 내 흑인들 중에는 이 영화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이들이 꽤 있다고 해요. 이 영화가 백인이 각본을 쓰고, 백인이 제작을 하고, 백인이 감독을 했고, 백인 역할의 토니가 더 주목을 받은 영화이고, 백인 토니는 문제해결사로, 흑인 돈 셜리는 문제를 일이키고 도움을 받는 인물로 묘사가 되었다면서 흑인 사회에서는 이 영화에 화가 난 이들이 많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한국인이다보니 영화를 이렇게 못 봤구나, 흑인들은 기분 안좋게 이 영화를 볼 수도 있구나 싶어서 좀 놀랬어요. 자라온 배경과 정체성이 누구의 시선이냐에 따라서 영화가 달리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의 미덕, 인종차별에 대해서 문제제기하고, 흑인과 백인이라는 두 세계의 굉장히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또 가르쳐주고 배우면서 같이 성장하고 변화해가는 모습을 때론 미소짓게, 때론 뭉클하게 이야기로 풀어낸 이 영화의 미덕은 높여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주말에 뭘 하면 좋을지 고민이세요? 맥주 한잔 곁들이면서 그린북(Green Book)’ 영화 한편 때리세요! ^_-*

728x90
반응형
Posted by Rfriend
,

이번에는 직장인 들에게 피와 살이 될 심리학 책 한권 소개할께요. 
작년 연말 휴가 때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게 단숨에 읽은 책이기도 하고, 이 책을 좋아할 만한 친구에게 기쁜 맘으로 선물한 책이기도 해요. 


회사에서 무기가 되는 28가지 심리 기술
<심리학 직장 생활을 도와줘>, 박진우 지음, 비즈니스맵

 

심리학 직장 생활을 도와줘, 박진우 지음, 비즈니스맵

 


저자인 박진우 조직심리학 박사는 “직장인의 안녕감과 조직의 성과 향상을 위해 심리학 연구를 업무 현장에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조직의 성과 향상”은 많이 들어봤어도 “직장인의 안녕감”은 생소하면서도 왠지 따뜻하고 고맙게 느껴져요. 안녕감이라… ^^b

에필로그에서 박진우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를 보면 우리 인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직장 생활의 행복을 위해 심리학이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믿음과 이 책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알 수 있어요. 

‘심리학이 직장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해 모두 28개 주제에 관한 얘기를 전달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일과 사랑이 삶의 전부라고 말했을 만큼 일과 일터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활들을 해결하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문제다. 일터에서는 불안, 스트레스, 좌절감, 시기, 질투 등 부정 정서도 경험하지만 자긍심, 효능감, 통제력, 성취감 등 인생에 있어 최고의 순간도 함께 겪는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터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효과적인 대안을 찾아내 실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심리학이 이 과정에 완벽한 답을 줄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시도해 볼 수 있는 단초는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 글이 독자들의 소중한 일터에서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이 책은 ‘성장’, ‘관계’, ‘성취(성공)’, ‘리더쉽’ 이라는 크게 네 개의 파트, 총 28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8개의 각 주제는 모두 ‘착각’, ‘진실’, ‘직장 속으로’, ‘자가 진단 검사와 점수 계산’, ‘심리학이 알려주는 진실’, ‘심리학이 제안하는 슬기로운 직장 생활 팁’, ‘요약’의 순서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으로 시작해서 심리학이 알려주는 '진실'로 포문을 열고, ‘직장 속으로’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볼 수 있을 법한 상사, 동료, 후배를 등장시켜서 독자의 관심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마력이 있는 책이예요. (저자가 고민 많이 하신 듯…)

 

심리학 직장 생활을 도와줘, 목차

 


저자는 산업 및 조직심리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만큼 ‘과학적 방법론’ 으로서의 심리학에 충실해요. “현상에 관해 기술”하고 “인과 관계를 설명”할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예측”에도 활용할 수 있는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이 우리가 “착각”하고 있거나 그럴싸한 말 뿐인 가짜 심리학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책에 보면 집착적으로 과학적 실험으로 검증된 연구 결과만을 인용하고 근거로 하여 책의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저자가 매일 매일 논문 읽기로 연구를 거듭했을 나날들이 책에서 고스란히 느껴져요. 

 

심리학 직장 생활을 도와줘, 착각

 

심리학 직장 생활을 도와줘, 진실

 


28개의 매 주제마다 ‘자가 진단 검사와 점수 계산’이 나오는데요,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자신을 돌아보게끔 하는 몇 안되는 특이한 책이기도 해요. 각 주제별로 이 자가 진단 점수의 결과에 기반해서 (단 하나의 정답을 따르라가 아니라), 독자별로 각자 다른 각 유형별로 서로 다른 조언을 해주고 있답니다. 꽤 똑똑하고 설득력있는 책이지요?! 

 

심리학 직장생활을 도와줘, 자가진단 및 점수 계산

 


만약 저보고 ‘직장 속으로’에 나왔던 고민을 듣고는 조언을 해주라고 누군가가 부탁을 했다면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참 고민이 많고 자신있게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을거 같은게 대부분이예요. 그직장 속으로’에서 나왔던 나와 내 동료, 상사, 후배의 고민에 대해서 ‘심리학이 제안하는 슬기로운 직장 생활 팁’에서는 심리학의 과학적 연구에 기반한 통찰로 부터 얻을 수 있는 조언을 들을 수 있는데요,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또 직장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돼는 내용들이예요! 소위 공자님 맹자님 말씀 마냥 그냥 듣기 좋은 소리,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구요,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근거가 있는 팁들이예요. 

 

심리학 직장 생활을 도와줘, 직장 속으로

 

심리학이 제안하는 슬기로운 직장 생활 팁

 


각 주제의 마지막 ‘요약’은 본문의 핵심 내용을 한번 더 요약해서 정리하고 복습하는 시간이예요. 저자가 정말 친절한 분이구나 싶어요. 아니면 세뇌를 시켜서 정말로 정말로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충만한 분이라고 해야 하려나요. ㅎㅎ

 

심리학 직장 생활을 도와줘, 요약


499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기에 부담이 될 수도 있는데요, 저자도 말하듯이, 목차를 보고서 먼저 읽고 싶은 주제 먼저 눈이 가는대로, 손이 가는대로 읽어나가면 좋을 거 같아요.(함정이 있다면, 모든 주제가 다 재미있을 거 같아서 뭘 먼저 읽어야 할지 참 고민이라는… ㅋㅋ) 책을 일단 읽다보면 재미있어서 계속 읽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편집이 잘 되어 있어서 가독성도 좋고, 중간 중간 쉬어가기도 좋구요. 


페이스북에서 저자를 팔로우 하고 있는데요, 가요의 가사와 심리학을 연결시켜서 브런치에 쓰는 칼럼을 잊을만 하면 올려주세요. 그런데 그 글들이 참 기가 막히게 위트있고 재미있으면서도 역시 유익한 글들이예요. 박진우 저자의 ‘가요와 심리학의 만남’(?)에 관한 책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대하게 돼요. ^^*


직장 생활을 행복하게 하고 성과를 내고자 하는 이 세상의 모든 리더, 동료, 상사, 후배들에게 이 책을 흐뭇하게 권합니다.

저는 한번 더 읽어보려고 해요. 그럴 만한 값어치가 있는 책이니깐요. 우훗~!  ^_-

728x90
반응형
Posted by Rfriend
,

이번에는 그림책을 소개하려고 해요. 


“나는 기다립니다…”
다비드 칼리 글, 세르주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문학동네. 

 

나는 기다립니다... (다비드 칼리 글, 세르주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문학동네)

 

 

2007년 7월에 1판 1쇄로 시작해서 2022년 5월에 1판 28쇄를 기록했네요. 이미 많이 유명한 책인가봐요. 역시! ^^b

 


그림책하면 어린아이만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거 같아요. 
심지어는 어른이 되어서 읽으면 더 와닿는 그림책도 있잖아요. 
이번에 소개하려는 “나는 기다립니다…” 그림책도 엄마, 아빠랑 아이가 함께 읽기에 참 좋은 책이예요. 

어른이 읽어도, 아니 어른이 읽으면 더 느끼는게 많은 그런 그림책인거 같아요. 


먼저, 책의 형태가 가로로 길고 세로로는 짧은 특이한 모양이지요?! 
책의 제목처럼 “기다림” 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가로로 길~~~~게 기다리는 모습을 표현했어요. 

 

나는 기다립니다. 어서 키가 크기를

 

그리고 표지의 그림에서 보듯이 빨간색 선이 보이잖아요. 
이 빨간색 선은 뜨개질을 할 때 쓰는 끈이예요. 
사람과 사람의 인연과 관계, 그리고 오~랜~ 기다림을 끈으로 표현했어요. 

 


“나는 기다립니다” 그림책은 우리 인생에 관한 이야기예요. 


“어서 키가 크기를” 기다리는 어린아이가 점점 커서 엄마 아빠와 놀고, 먹고, 크고, 
그러다가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서 데이트 하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전쟁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들과 놀고, 
부부가 마냥 행복하기만 하지는 않기에 가끔은 싸우기도 하면서 “미안해”라는 한 마디를 기다리고, 
커가는 아이들의 안부 전화를 기다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프고, 그러다가 사랑하는 이와 사별을 하고, 
깊은 슬픔 속에 다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장성한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새 식구가 될 아기를 기다린다는 이야기예요.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과장없이 담담하게 우리의 일생을 이야기해요. 
빽빽한 설명없이, 기다란 책의 대부분을 하얀 색 여백으로 남겨놓은 채, 단지 한두줄의 짧은 말 몇마디로 우리의 일생을 이야기해요. 
지루해서 견디기 힘든 기다림’이 아니라, 소망과 희망을 담은 ‘기다림’으로 우리의 일생을 이야기해요. 

 

새 식구가 될 아기를 나는 기다립니다

 

 

행복하기만 한, 장밋빛 일생만을 그렸다기 보다는 우리의 진짜 일생, 일상을 담담하게 그렸어요. 

아래의 그림 "나는 기다립니다. "미안해."라는 한 마디를..." 을 보면 심드렁 삐져있는 부부의 모습에 ㅋㅋ 하고 웃게 돼요. 

서로에게 속상하고 화나 있어 꼬일대로 꼬여있는 마음 한켠에는 "미안해."라는 한 마디를 기다리는 우리의 연약하면서도 진솔한 모습을 보게 돼요. 정말 그래요. 좀더 마음의 여유가 있고, 좀더 성숙하고, 좀더 용기있는 사람이 먼저 "미안해."라고 말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가 풀리고, 화해하고 용서하게 되고, 그러고나면 한단계 더 성숙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되잖아요. 

 

나는 기다립니다. "미안해."라는 한 마디를...

 

 


이 그림책을 처음 봤을 때 그림이 어린아이가 대충 끄적끄적 그린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그림책을 자꾸 볼 수록, 찬찬히 들여다볼 수록, 각 장의 글의 핵심을 정확하면서도 간결하게 표현해놓은 그림에 놀라게 돼요. 
아래 그림에 나와있는 얼굴의 표정을 한번 보세요. 아이들의 안부전화를 기다리는 아빠의 궁금해하면서도 뭔가 흐믓해하는 마음이 전해지지 않나요? ^^

 

나는 기다립니다. 아이들의 안부 전화를
나는 기다립니다. 아이들의 안부 전화를...



마지막 장은 “끝”이 아니라 “끈”이예요. ^_^ 
(원서에는 어떻게 표현이 되어있을 지 궁금해요. 한글 번역본에서만 “끝”을 “끈”으로 해놨을 듯 해서요. 안수연 옮긴이의 위트겠죠?!)

 



여러분은 일생을 살면서 누구를, 무엇을 기다리시나요? 
저는 2022년 12월 31일, 올 해의 마지막날에 마지막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2023년 1월 1일 희망찬 새해를 기다려봐요.  

 

Life goes on~!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728x90
반응형
Posted by Rfriend
,

<통찰의 시간>, 신수정 지음, 알투스 출판사

이미 알만한 분들은 다 알고 계신 ‘일의 격’의 저자 신수정님께서 새로운 책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깨어나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 555개의 통찰” 이라는 부제목을 가진 책, “통찰의 시간”이예요. 

통찰의 시간, 신수정 지음, 알투스

 


프로로그에서 저자가 ‘일의 격’과 ‘통찰의 시간’을 비교해주셨는데요, 

“‘일의 격’의 글들은 필자가 50대에 쓴 비교적 긴 글들의 모음이기에 나만의 경험과 균형 있는 시각이 충분히 담겨 있다. 반면, 트위터에 쓴 글은 40대에 기록한 짧은 글들이며 나만의 경험과 통찰보다는 앞선 분들의 통찰을 정리한 글들이 많았다. 대신 간결하고 직설적이었다. 이 책은 그 글들을 기반으로 하되, 이후 페이스북의 글들 중 ‘일의 격’에 실리지 않았지만 해당 주제와 연결되는 최근의 글들도 일부 축약하여 추가했다.”
- 저자 프롤로그 중에서 - 

두 책을 모두 읽어본 저로서는 ‘일의 격’과 ‘통찰의 시간’을 세트로 같이 읽으시는걸 추천합니다. 
‘일의 격’이 세련된 고급 식당에서 정갈하게 서빙되는 음식을 주방장이 떠먹여주듯 친절하고 맛있다면, ‘통찰의 시간’은 커피 머신으로 뜨거운 물을 통과시켜서 커피콩에 있는 커피의 액기스를 꾸욱 갓 내려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같아요. 

단위 투입 시간 당 가성비가 높은 것 중의 하나가 독서잖아요. 책을 한권 낸다는 것은 저자의 수년~수십년의 경험과 통찰의 정수를 뽑아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인 만큼 간접체험과 배움에 있어서는 독서가 단연 최고일텐데요, ‘통찰의 시간’ 저자는 책 중독, 활자 중독에 걸린 분이세요. 신수정 저자께서 책 수백권을 읽어보시고 거기에서 다시 액기스를 뽑아서 ‘통찰의 시간’에 한입에 먹기 좋게 요리를 해주셨다고 봐도 될거 같아요. 

저자가 소개한대로, 아래의 책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글이 대체적으로 짧아요. 책 형식이 참 파격적이예요.  마치 초콜렛 볼 하나 한입에 꿀꺽 하듯이 먹기에 부담이 없고 술술 읽혀요. 

통찰의 시간, 신수정 지음

 

저자가 머리글에 밑줄 쫘악 그어서 강조한 부분도 소개할께요. 

 

"나는 독자들이 이 책에 있는 555개의 모든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를 원하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주제나 목차 중 아무것이나 읽으시라. 555개의 문장 중 한두 개라도 자신에게 공감과 영감을 준다면, 그래서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관점을 바꿀 수 있다면, 그리고 행동하며 변화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이 챆을 낸 보람과 가치는 바로 거기에 있다." 

 

네, 마음에 드는 주제나 목차 중 아무것이나 읽으시면 되는데요, 아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다 읽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겁니다. ㅋㅋㅋㅋ


‘통찰의 시간’ 목차를 한번 살펴볼께요. 

1장. 통찰
2장. 배움
3장. 행동
4장. 성공
5장. 리딩
6장. 행복


목차를 보면 우리의 삶과 관계의 변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변화시키고 후대에 남기는 일련의 인생 여정에 있어 모두 필요한 것들이지요? 

‘일의 격’ 책의 목차도 보면 ‘1장. 성장: 일의 성과를 극대화 시키는 기술’, ‘2장. 성공: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리더십의 발견’, ‘3장. 성숙: 일과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 인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저자가 중요시여기는 성장, 성공, 성숙이 ‘통찰의 시간’에서도 여전히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통찰의 시간’이 아무래도 트위터에서 140자 제약 아래 짧게 통찰력있는 내용을 요약한 글이 많다보니 아무래도 준비가 안된 상태라면 제대로 소화를 못 시키고 그냥 꿀꺽 삼켜버릴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렇다고 또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는게, 책을 읽다보면 본인이 그 당시에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갈망하는 주제에 대한 것이라면 아마도 20배 줌이 되어 비록 단 한줄의 글이더라도 눈 앞에 크게 살아숨쉬며 튀어나올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 제 경험상이요. 그러니 가까운 곳에 책을 두고서 목차에서 눈에 끌리는 부분을 그때그때 부담스럽지 않게 읽다보면 ‘통찰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을 뽑으라면, 저자 에필로그의 아래 글을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어요. 저자의 진심이 느껴지고, 저자의 그동안의 일련의 활동들과 이 책이 일관성있게 연결이 되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태어나고 사라진다. 이 중 뛰어나고 잘난 사람들도 많다. 최고의 선수, 최고의 CEO, 최고의 부자, 최고의 관료, 최고의 종교지도자, 최고의 의사, 최고의 변호사, 최고의 정치인…… 그러나 우리의 기억 속에 ‘위대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분이 과연 몇분이나 되는가? 
그렇다면, '위대함'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자신을 넘어선 '가치'를추구하고 변화를 만들어 내는 데서 나온다. 1등 부자, 1등 정치인, 1등 선수, 1등 CEO, 1등 합격자가 위대한 것이 아니다. 설령 많은 실패를 하고 권력이나 부가 없더라도 소명의식과 세상에 대한 공감이있고, 주위 사람들을 위해 의를 위해 진실을 위해 세상을 더 낫게 하기 위해 세상에 작은 빛으로 살아가신 분들이 위대하다.
최고는 해당 분야에 단 한 명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위대함은 누구나 가능하다. 최고는 되지 못했어도 평범하지만 위대한 우리의 부모님, 우리의 선생님들도 있다. 후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분투한 우리의 선배들도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졌다.
단 한 번뿐인 인생, 최고가 되기 위해서 살 것인가? 작더라도 조금더 큰 뜻을 품고 위대함을 만들어 볼 것인가? 이 작은 책을 내면서필자 스스로도 후자의 인생을 살 것을 다시금 다짐한다. 또한, 이 책을 통해 '통찰의 시간'을 살아가는 위대함을 선택하는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 저자 에필로그 중에서 -

신수정 저자님을 페이스북에서 팔로잉 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왜냐하면 ‘친구만 보기’로 페이스북에 포스팅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매주 주말이면 맛있는 보약을 꼬박꼬박 챙겨먹듯이 마음에 울림이 있는 글들을 페이스북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예요. 


* ‘일의 격(格)’ (신수정 저, 턴어라운드) 책 읽고 느낀 점 쓴 글은 https://rfriend.tistory.com/668 여기에 있어요. 

 

ps. 보너스로, <통찰의 시간> 출간을 기대하는 829분의 SNS 응원에 제 이름도 있어요. 으쓱~ ^^v 

신수정 저자님, 귀한 책 내주셔서 '통찰의 시간'을 살아가는 위대함을 선택하는데 있어 길잡이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활동도 응원합니다! 

 

통찰의 시간, 신수정 지음

728x90
반응형
Posted by Rfriend
,

[책]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원서: Letters to a young therapist)

메리 파이퍼 (Mary Pipher) 지음, 안진희 옮김, 위고 출판사

 

이번에 소개할 책은 심리치료사이면서 작가이자 부모인 메리 파이퍼(Mary Pipher)가 제자 심리치료사인 로라에게 보내 편지를 엮은 책입니다. 영어 원서의 제목인 "Letters to a young therapist" 의 뜻 그대로 말이지요.  

 

책이 전반적으로 참 따뜻하고 또 어른스러워요.  그때그때 유행하는 심리치료 기법이나 이론에 열광하거나 치우치기보다는, 사람들 삶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균형을 잡고 조바심 내지 않으면서 기본에 충실한 심리치료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말하고 있어요.  30여년 간의 환자들을 만나면서 한 심리치료의 관록이겠지요. 

(왼쪽 사진은 저자 Mary Pipher)

 

목차에 보면 겨울, 봄, 여름, 가을의 4계절로 구분이 되어있어요. 1년여에 걸쳐서 쓴 편지이기도 하고, 우리의 인생이 4계절과 닮은 면도 있어서겠지요?  책이 빨리 읽히지 않고, 대신에 편지 하나 읽고는 한참을 골몰히 나를 돌아보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예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가로서 글솜씨도 이 책의 매력 포인트 중의 하나예요.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Letters to a young therapist

 

아래의 영어 원서("Letter to a Young Therapist", Revised Edition)의 표지와 위의 번역서 표지("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도 서로 다르네요. 번역서 내용이 너무 좋아서 ebook도 사서 원서로 읽어보려고 해요. 

 

Letters to a Young Therapist by Mary Pipher

 

 

번역서의 표지에 있는 말, "좋은 심리치료는 마음의 풍경을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의 풍경을 바꾼다는 것은 그리 쉽지많은 않은 일이겠지만, 영향이 크다는 의미겠지요? 

p69. 좋은 심리치료는 마음의 풍경을 바꾸어야 합니다. 심리치료를 받은 이후 사람들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 모든 것운 균형의 문제입니다. 저는 소심하고 불안감이 심한 사람에게는 더 강해지고 대담해지라고 격려합니다. 또한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남자들에게는 좀 더 온화해지라고 좀 더 자기표현을 잘할 수 있도록 독려합니다. 

 

 

 

저자는 감사하며 사는 행복을 본인이 누리고 있으며, 타인의 성장에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p72.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은 천국으로 가득 차 있다.” 나이를 점점 먹어가고 모든 현상에서 삶을 더 가치 있게 여기게 될수록, 저는 파랗고 푸른 행성에서 보내는 시간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이 더없이 귀중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비극은 아름다운 어떤 존재가 성장하고 싶어 하는데 다른 어떤 존재가 그것을 저지할 때입니다.  저는 손녀 케이트가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한 인간으로 활짝 꽃피우기를 바랍니다. 

 

 

 

저자는 일상의 루틴을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어요. 정말 그렇지요?! 


p77. 지속성은 우리 직업에서 과소평가된 자질입니다. 심리치료의 일부는 평범한 일을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대식증 환자의 식단 일지 확인하기, 우울증에 걸린 대학생에게 운동하라고 권하기,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잠깐만”을 남용하지는 않는지 확인하기. 이런 일들은 마법처럼 느껴지거나 인상적인 영상을 남기지는 않습니다. 허지만 매일 이를 닦고 신선한 야채를 먹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일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99. 우리가 내담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 중 하나는 그들에게 일상을 건강하고 규칙적으로 꾸리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상에는 명상, 마사지, 운동 같은 활동들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 이런 리추얼들은 사람들에게 기대할 만한 무언가를 제공해줍니다. 

 

 

 

저자는 성공적인 심리치료의 핵심에 사람 사이의 관계(relation)의 '연결'(connection)에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82. 성공적인 부동산 투자의 비결이 ‘입지’라면 우리 일의 비결은 ‘연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담자들의 정서, 행동, 생각을 서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내담자들이 심리치료사, 그들의 가족,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바랍니다. 

 

 

저자는 감정(emotion)을 느끼고, 관찰하고, 솔직하게 직시하고 인정하기를 권하고 있어요.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잖아요? 


92.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똑바로 바라봅니다. 이들은 슬프면 울고 화가 나면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온화한 감정들만 가지고 있는 체하지 않습니다. 그러기보다는 감정들을 관찰하고 묘사합니다. 

 

 

 

저자는 어떨 때는 '삶은 계속된다, 계속되어야 한다'는 당위적인 명제를 솔직하게 내담자에게 말해준다고도 해요. 

 

112. 하지만 윈스턴 처칠이 말했죠. “지옥을 통과하고 있다면 계속 움직이는 수밖에.”

114. 하지만 무엇보다 당신이 주로 그녀에게 이야기하거나 조언하게 될 것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버팀으로써 버틴다”하는 사실일 것입니다. 

 

 

 

아래 문장은 제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 중의 하나예요. 40대가 되고 보니 더욱 와닿는 것 같아요. 


117. 이런저런 조언으로 책 한 권을 채울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은 다음의 세 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삶을 사세요.”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고 취미생활을 즐기세요. 당신을 웃게 만들고 당신의 배터리를 재충전해주는 일들을 하세요. 아기를 꽉 껴안거나, 요리수업을 듣거나, 영화감상모임에 가입하세요. 

168. 사람들이 자신의 유년기로부터 가장 즐겁게 기억하는 세 가지는 가족식사, 야외활동, 가족여행입니다. 그러니, 로라, 당신이 상담하는 가족들에게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여행을 떠나고, 자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권유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서 결혼의 환상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또 많이들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저자는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어요. 환상은 말 그대로 현실이 아니니깐요. 


136. 로라, 내담자들에게 결혼에 대해 환상을 품지 말라고 경고하세요. 사람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여러 상황 속에서 그 사람을 지켜봐야 합니다. 내담자들에게 애인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보라고 권유하세요.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하세요. 여성들에게는 남성이 다른 여성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잘 들어보고 그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어떻게 대하는지 잘 살펴보라고 하세요. 또한 애인이 과거의 인연들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주위를 기울여야 합니다. 상대를 비난하는 사람은 좋지 않습니다. 질투가 심하거나, 비밀이 많거나, 다른 사람을 조종하려 드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 경계를 넘고 한계를 존중하지 않는 상대는 시간이 흐르면서 폭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나치게 빨리 사이가 너무 뜨거워지는 것 또한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안정된 사람들은 천천히 나아갑니다. 


 

아래 글은 읽으면서 키득거리면서 웃었어요. 힘빼고 있는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상담하고, 글쓰고, 사람 만나기! ^__^


188. 심리상담이나 글쓰기를 할 때 지나치게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은 잠을 잘 때나 오루가즘을 느낄 때, 다른 사람한테 호감을 얻고자 할 때 지나치게 열심히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효과가 없죠. 

 

 

 

저자는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에 대해서 솔직하게 내담자에게 표현해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저도 동의해요. 과연 가치중립적일 수가 있을까 싶거든요. 


200. 일부 이론가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가 가치중립을 표방할 수도 없고 또 가치중립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에 대해 내담자들에게 솔직하게 표현해야 하는 윤리적 의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 똑같지요? 자신의 존재 자체가 거부당한다고 느낄 때 반발이 생기고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이 불끈 솓아오른다는 점이요. 이게 '변화의 역설'이라고 하는 거군요. 


214.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변화의 역설’에 대해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낄 때에민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변화에 대한 저항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조건입니다. 누가 어떤 사람이 “비판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흉을 볼 때마다 저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습니다. “비판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변화의 주체는 결국은 자기 자신!


224. 그녀는 제 마술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저는 마술사가 아닙니다. 오직 당신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저자는 100% 만땅의 삶 대신에 70% 정도 달성하고 30% 정도는 여유가 있는 삶이 지속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완벽하려고 하다간, 부러지는 수가 있지요. '최대자 maximizers' 보다는 "충분히 괜찮아"라고 현재에 감사하는 '만족자 satisfizers'가 행복하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겠지요. 저도 이번 블로그 포스팅 "이정도면 충분히 괜찮아"라고 스스로 만족하는 걸로... ㅎㅎ


227. 부모이자 심리치료사이자 작가로서, 저는 목표를 70퍼센트 정도 달성합니다. 저 자신에게 이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면 중년의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완벽을 기대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236. 연구 결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만족자satisfizers’와 ‘최대자maximizers’입니다. 최대자는 항상 최고의 선택을 내리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만족자는 “충분히 괜찮아”라고 말합니다. (중략) 인간이 겪는 고통의 대부분은 95퍼센트의 좋은 삶을 살면서도 나머지 5퍼센트를 달성하려고 할때 생깁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저자의 글은 참 따뜻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인 심리치료사로서 자부심과 긍지, 보람이 전해져요. 


248. 이 책을 쓰면서 저는 심리치료사로 일하는 것이 제게 있어서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을 넘어서 저 자신의 삶을 일구어나가는 것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심리상담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하나의 방식,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이죠. 


비단 심리치료사나 심리치료/상담을 전공으로 하려는 학생 뿐만이 아니라, 심리치료/상담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충분히 공감이 되고 도움이 되는 생각거리와 지혜를 던져주는 책이기에 추천해요. 

728x90
반응형
Posted by Rfriend
,

지난 주말이랑 삼일절 휴일에 뮤지컬 음악감독 김문정씨의 첫번째 에세이, <이토록 찬란한 어둠> (김문정, 흐름출판, 2021) 책을 읽었어요. 

 

책의 표지에 있는 저자 소개글을 인용해보자면, 김문정씨는 "대한민국 최고의 뮤지컬 음악감독. 국내 최초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 THE PIT ORCHESTRA의 지휘자. 한세대학교 공연예술학과 교수. <명성황후> 건반 연주자로 뮤지컬 음악을 시작한 저자는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지금까지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미스 사이공>, <명성황후>, <맨 오브 라만차>, <에비타>, <모차르트!>, <영웅>, <서편제>, <레베카>, <웃는 남자>, <마리 앙투아네트>, <팬텀>, <광화문 연가> 등 50여 편의 뮤지컬 공연 음악감독을 맡았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최고의 뮤지컬 음악감독이라고 말해도 이견이 없을거 같아요. 

 

이토록 찬란한 어둠 (김문정, 흐름출판)

 

 

이 책을 읽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이, '아, 뮤지컬 보고 싶다!' 였어요. 저의 경우 저자 소개란에 나와있는 뮤지컬 중에서 직접 극장에 가서 관람한 것은 하나도 없었구요, <레미제라블>과 <맘마미아>만 영화로 본 정도예요. 이렇게 많은 뮤지컬에 국내에서 공연이 되었다는걸 몰랐기도 했고, 뮤지컬에 미처 관심을 못 가졌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음악과 춤과 연극이 총 망라된 종합예술로서의 뮤지컬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구요. 저자는 "뮤지컬이라는 마법 (Musical, Magical)"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딱 맞는 말 같아요. 코로나 끝나면 온 가족 다 같이 "뮤지컬이라는 마법"을 보고, 느끼고, 즐기러 가고 싶어졌어요! 

 

이토록 찬란한 어둠: 뮤지컬이라는 마법

 

저자의 살아온 이야기를 읽다보면,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미친듯이 몰입해서 프로세셔널하게 하면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전문가이자 리더"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뮤지컬 건반 연주자로, 작곡가로, 그리고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확대하고 성장하는 모습, 그 속에서 치열하게 부딪치고 두렵더라도 꿈을 쫒아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힘겨워하면서도 주어진 시간 속에서 초집중하면서 성과를 일궈내는 모습, 어느정도 명성을 쌓고 난 후에는 후배들을 위해 없던 길을 닦고 시스템(가령, THE PIT ORCHESTRA)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 등이 나와요. 어느 하나 쉽지 않은 과정일텐데,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뮤지컬이라는 마법"의 힘에 저자 스스로가 흠뻑 빠져있었기 때문일거예요. 

 

아래의 사진은 저자가 참여한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 "THE PIT"가 공연한 콘서트 <ONLY>의 한 장면이예요. 비록 이 콘서트를 가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 전해지는 장면에서 뮤지컬 피트가 오롯이(ONLY) 주인공이 되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연주하는 음악이 풋풋하고 상쾌한 숲 속의 공기를 따라서 전해지는 듯해요. 저자가 "THE PIT"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읽어보면 한 업계의 영향력 있는 리더가 되어 영향력을 행사하는게 이렇게 멋있고 의미있는 일이구나 감명받게 돼요.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를 만든 지 15년 만에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제대로 된 비지니스를 진행할 수 있는 전문 기획사를 세웠다. 이름은 'THE PIT'. 오보에 연주자인 김진욱이 대표를 맡았고 나를 비롯한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단원으로 함께 하고 있다. 회사를 만든 이유는 시스템을 갖추고 싶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나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비정규직 연주자들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서 우리 스스로 나서기로 했다. 하늘에서 답이 뚝하고 떨어질 일은 없으니 기약 없이 기다릴 바에 우리기리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보자, 혼자라면 힘든 문제도 함께 움직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다수가 함께하면우리의 의견을 펼 수 있고, 그러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바뀌고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취지였다. 평범한 직장인처럼 4대 보험이라는 혜택도 받고 안정적인 노후를 기대하는 삶을 우리도 살 수 있게 되었으면 싶었다. 2019년 회사를 설립했고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p263)

 

너무 멋있지 않나요?! 

 

콘서트 ONLY, (c)THE PIT

 

저자가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추측컨데 아마도 뮤지컬에 대한 애정, 그리고 또 뮤지컬 무대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제 역할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는 동료, 선후배에 대한 애정에서 였을 것 같아요. 뮤지컬 무대의 밑에 잘 안보이는 곳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곳을 '피트'라고 하는데요, 저자는 "피트, 어둡고 찬란한 우주"라고 표현을 해놨어요. 

 

"오래도록 뮤지컬 음악감독으로서 자리를 지켰던 건 이 일이 늘 새롭고 좋기 때문이었다. 이 세계에 발을 들이고 나니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었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50여 개가 넘는 작품 속에서 내 손끝으로 수많은 음악의 집을 지어왔다. (...) 한 가지 업을 오래, 깊이 해온 입장에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세상에 알리는 것도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무대 위의 앙상블을 비롯해 무대 밖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스태프들까지, 공연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존종받고 사랑받기를 바란다. 앞으로 동료들과 함께 뮤지컬을 만들어나가며 지금 여기에서 조금 더 전진해볼 생각이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수 있도록, 이 발걸음이 멈춰 서지 않기를 바라면서." (본문 중에서)

 

 

저자가 '음악감독의 소양'에 대해서 얘기하는 장면 중에서 기억에 남는 말이 있어요. 바로 '체력'에 대한 얘기를 하는 부분이요. 저도 요즘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체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몸소 느끼고 있거든요.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가장 기본은 '체력'이라고. 매일 세 시간 동안 흔들림 없이 온몸으로 지휘하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좋은 컨디션으로 평정심을 유지해야 일관된 소리를 낼 수 있다. 연주자들과 배우들은 지휘봉의 작은 떨림까지 알아채기 때문에 지휘가 조금만 달라져도 금방 눈치 챈다. 속에서부터 에너지를 채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잘 먹고, 작은 일에도 크게 웃고, 누군가의 단점보다 장점을 찾는 일에 몰두하며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내려고 노력한다. 몹시 단순하지만 이것이 몸과 마음의 체력 모두 단련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본문 중에서)

 

 

김문정씨가 음악을 시작한 계기가 참 인상적이예요.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저자가 그 집의 피아노를 치면서 재미있게 놀았었나봐요. 그런데 그 집 주인 아주머니가 매몰차게 피아노 뚜껑을 닫으면서 피아노 그만 치라고 무안을 주었나봐요. 그 모습을 안쓰럽게 보았던 저자의 어머니가 적금을 깨서 바로 다음날 피아노를 사주셨다는 거예요. 그 피아노로 저자와 동생을 물론 동네 친구들까지 모두 모여 집에서 피아노를 장난감삼아 같이 치면서 놀았다는 거예요. 저자는 그때의 그 경험이 "음악은 같이 하면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 추억이었다고 해요. 집의 피아노로 동네 친구들 앞에서 나름 연주회도 열고, 유희열(네, 우리가 아는 그 유희열)님과 함께 고등학교 때 밴드도 하고, 학교에서 음악 지휘도 했다고 해요. 참 지혜롭고 사랑 깊은 어머니지요?! 어머니가 사주신 피아노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머니께서 "적금을 깨서 바로 피아노를 사주지 않으셨다면", "동네 친구들이 집에 같이 와서 피아노를 가지고 노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그렇다면 지금의 음악감독으로서의 저자가 있을 수 있었을까 싶어요. 

 

뮤지컬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는 좋아하는 분야의 대모께서 들려주는 이야기에 쏙 빠질수밖에 없을 거구요, 뮤지컬에 관심이 없었던 분이라면 이참에 뮤지컬의 매력에 쏙 빠질거예요. 그러니 모든 분에게 추천해요. 비단 뮤지컬 주제 뿐만이 아니라 사람사는 이야기 (딸로서, 엄마로서, 선생님으로서, 선배로서, 동료로서, 후배로서...) 에 사람의 향기가 물씬 뭍어있어요. (책 읽다가 어느 부분에선 눈물 흘리기도 했어요... ㅜ_ㅜ)  그리고, 딸을 가진 부모님들에게는 "딸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여성으로서 역할 모델"로도 이 책의 저자 김문정씨의 스토리가 큰 울림이 있을 것 같아요. 

 

"이토록 찬란한 어둠", 책도 보고, 코로나 잠잠해지면 "뮤지컬"도 보러가면 행복 만땅일 것 같습니다!  :-) 

728x90
반응형
Posted by Rfriend
,

요즘 회사일이 숨 쉴 틈도 없이 프로젝트의 연속인지라 책을 읽을 여유도 없고, 책을 읽어도 회사 일 관련된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 프로그래밍 등과 관련된 분야의 책들만 읽었어요. 흑... ㅜ.ㅜ  그러다가 설 연휴 맞이해서 모처럼 에세이 책 읽어보았네요. 책상에 어지럽게 쌓여있는 책들 중에서 제목이랑 표지가 뭔가 젊은 감성이 물씬 풍기고 세련되어 보여서 집어 들었어요.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이소호 에세이, 창비)

 

"시키는 대로" 부분에 밑줄 쫘악~!  ㅋㅋ  요즘 젊은 작가는 제목에서 부터 이런 센스를 부리네요!  

"제멋대로"도 빼뚤빼뚤 제멋대로예요.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이소호 에세이, 창비

 

저자는 자신을 "시인 이소호"로 소개를 하네요.  "이경진"에서 "이소호"로 개명을 했다고도 하구요. 

 

책을 펼치면 첫 장이 시인 이소호씨가 (이경진의 이름이었던) 초등학생 때 썼던 일기로 시작을 해요. 그것도 "우리 가족"에 대한 일기예요.  느낌 오지 않나요? 이 수필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면 이런것도 독자를 대상으로 해서 글을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강박적이고 수위가 높은 "솔직함"이예요. 일기, 그리고 가족 이야기 만큼 개인적이고 그래서 타인에게 솔직하게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요?  이소호 시인은 "우리 가족"에 대한 "일기"를 공개하는 것으로 수필집의 첫 장을 열었어요. 말 다했죠! 

 

"솔직한 글쓰기"는 누군가에게는 '나만 힘든게 아니었구나'하는 위안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나만 이렇게 생각한게 아니었구나'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반면에 홍상수 영화를 볼 때 느껴지는 있는 그대로의 맨 날 것의 생생한 모습을 직접 보게 되었을 때의 불편함도 동반하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고요. 

 

"첫 줄은 형편없이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요, 아니예요.  나름 신선하고 재미있었어요. :-)

 

 

서울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 선생님인 아버지를 따라서 부산으로, 그리고 아버지의 꿈을 쫒아 온 가족이 전라북도 무주로 이사간 후의 삶에 대해서 저자는 "누군가는 추억이라고 쓰고 나는 그걸 지옥이라고 읽지"라면서 10대의 삶이 너무나 비참했노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 수필집을 이소호 시인의 아버지는 읽어보셨으려나 문득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좀 되더라고요. 읽는 독자로서 저는 왠지모를 관음증(?)이 도져서인지, 아니면 내면의 의식의 흐름을 쫓아 술술 읽히는 소설책의 한 장, 한 장을 읽듯이 재미있게, 때론 키득거리면서 읽었거든요. 

 

무주에서의 무료한 삶이 싫었기에 글을 썼고, 무주를 탈출해서 서울로 기어코 가기 위해 대학 진학을 꿈꾸게 했던 만큼 인생에 있어서 쓸모없는 것이란 없는 것인가봐요. 그게 비록 "추억"은 아니었고 "지옥"이었을 망정이라도요. 

 

엄마에 대해서는 절대로 닮고 싶지 않지만 자신도 모르게 닮아있는 사람으로 소개를 하고 있어요.  "솔직한 일기 쓰기"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서 처음으로 가르쳐주셨던 분이 엄마예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정체성에 맞추어 살다보니 좋아하던 연극배우의 커리어를 중단해야 했던 어머니. 딸 서울 전세금을 대주었다는 이유로 연락도 없이 불쑥 서울로 찾아오고 잔소리하시는 어머니.... 이런걸 애증의 관계라고 해야 하나요. 이 부분을 읽는데 제 어머니, 아내, 딸이 오버랩되면서 '이 나라, 이 시대에 여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되묻게 되더군요. 마음이 좀 무거웠어요. 

 

연년생 동생과의 에피소드는 생경한 욕설이 날아다니는 장면마다 저는 키득거리면서 읽었어요.  ㅋㅋ  다 큰 자매 둘이서 남미 여행갔다가 욕하면서 머래채 잡고 싸우는 모습이 그려지는데요, 시인도 욕을 찰지게 하는 구나 싶어서 웃겼어요. 그리고 이런 얘기를 책에 쓸 수도 있구나 싶어서 놀라기도 했구요.  이 수필집을 읽다보니 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어도 "참 다르구나" 싶고, 우리 사람은 모두 "전지적 자기 중심 시점"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뚜렷한 존재구나 싶어요. 

 

회사 생활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꼰대"와 "갑질"에 대해서 까놓았어요. 아직도 저런 회사가 있을 까 싶게 회사가 좀 심하긴 하던데요, "자발적 왕따"를 당하면서 다른 회사 직원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저자도 그닥 회사생활을 하기에는 적합한 사회적 인간은 아니었던거 같아요. (요즘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점심 혼자 먹는게 그리 이상하지 않으니 이소호 시인같은 자발적 외톨이가 더이상 비주류는 아닐 수도 있겠네요.)  회사 직원 대상으로 하는 서베이에 회식이랑 야근 관련된 꼰대질 그만하라는 글을 "솔직 담백하게" 썼다가 회사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는 장면에서는 왠지 모를 통쾌함을 느꼈다가도, 아무런 송별회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부분에서는 왠지 외로워보였어요. 똘끼와 광기, 자유로운 영혼의 시인이 회사생활을 병행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던 것일까요?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의 제목처럼 제멋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야 하는게 시인이기에요. 시인으로서 다달이 날아오는 카드값 고지서에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여주는 걸 보면, 참, 세상에서 온전히 독립해서 자기 앞가림하면서 제멋대로 산다는게 쉬운일이 아니예요. "시키는 대로"의 삶을 떠나서 "제멋대로"의 삶을 사는데는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그쵸? 

 

외할아버지에 대해 회고하는 부분은 읽는 내내 마음이 푸근하고 따뜻하고 애뜻했어요. 외할아버지가 체크남방을 즐겨입으시고, 해외 여러나라를 여행하신 멋쟁이시더라구요. 외손녀들에게도 차별없이 골고루 사랑을 나누어주시고, 몰래 특별 용돈도 챙겨주시면서 그걸 낙으로 삼으셨던 분이셨어요. 외할아버지의 임종에 이소호 시인이 펑펑 울었다는 부분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이의 슬픔, 애잔함, 그리움이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에세이는 정말 얼마만에 읽는지 모르겠어요. 그동안 참 팍팍하고 삭막하게 살았던거 같은데요, 모처럼 재미있는 에세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구글링해서 저자에 대한 기사랑 사진도 좀 찾아봤어요.2018년에 시집 "캣콜링"으로 제 37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셨던데요, 나중에 이소호 "시인"의 시집도 읽어봐야 겠어요. 

728x90
반응형
Posted by Rfriend
,

[책] 클라라와 태양 (Klara and The Sun,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2021년)

 

올 추석 연휴 기간 동안에 가즈오 이시구로가 쓴 <클라라와 태양>이라는 소설책을 읽었습니다. 인공지능을 전공한 전문가의 시선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를 관찰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구성하는 소설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공지능의 가까운 미래는 어떠한 모습일지 궁금했습니다. 

 

책 제목의 "클라라(Klara)"는 인공지능 로봇 친구 (Artificial Intelligence Friend, 에이에프) 의 이름이예요. 그리고 태양(The Sun)"은 인공지능 로봇의 영양원 (태양광 발전)이면서 또 클라라가 신비한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 숭배의 대상이기도 해요. 이 책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에이에프(AI Friend) 클라라의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소설이예요.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이 책의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Kazuo Ishiguro) 는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예요.  

국내에는 <남아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 <나를 보내지 마 (Never Let Me Go)> 등 예닐곱권의 책이 이미 번역되어 있고, 또 이 두 책은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어요. 

이름도 그렇고, 왼쪽의 사진을 봐도 그렇고, 작가가 일본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일본계 영국인이예요. 

가즈오 이시구로는 5살때까지 일본에서 살다가, 아버지를 따라서 영국으로 건너가서 계속 영국에서 살았다고 하네요. 

영국에 살면서 동양인 외모 때문에 차별을 받았었는지, 오기로 "가장 영국적인 것을 써주겠다"며 쓴 <남아 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 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니 아픔을 문학으로 잘 승화한 최고의 케이스가 아닐까 싶어요. 

이 책의 뒷 표지에 보면 "<나를 보내지 마>와 <남아 있는 나날> 사이에 다리를 놓는 가즈오 이시구로 최고의 작품"이라는 홍보 문구가 나와요. 저는 앞서의 두 작품(Never Let Me Go, The Remains of the Day)은 책말고 영화로 봤는데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이 두 작품에 대해서도 포스팅 해볼께요. 

 

 

(... 여기서 부터는 책 내용이 많이 나오므로, 아직 책을 안 읽으신 분은 계속 읽을지 잠시 고민해주세요.... ^^;)

 

이 소설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몇 가질 질문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포스팅을 해보겠습니다. (줄거리에 대해서는 위키피디아 찾아보시면 돼요).  책을 읽으신 분들은 추가로 다른 재미있는 질문들을 던져보면 좋을거 같아요. 

 

1. (조시가 죽게 된다면) 클라라는 조시를 대체할 수 있을까?  

2. 유전자 변형 생명공학으로 향상된 인간, 당신의 선택은?

3. 변덕스러운 인간 vs. 일관적이고 헌신적인 인공지능 로봇 친구 중에서 누가 좋은가?

4. 인공지능이 가져올 일, 직업의 미래는?

5. 이해할 수 있는,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 

6. 불가사의한 존재에 대해 숭배하는 종교는 본성인가?

 

 

 

1. (조시가 죽게 된다면) 클라라는 조시를 대체할 수 있을까?  

 

 클라라는 최신형의 에이에프(AI Friend)는 아니지만, 사람들을 관찰하고, 배우고, 감정을 읽고 표현하는데 매우 능숙합니다. 그래서 조시라는 여자 아이가 클라라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고, 조시의 어머니도 클라라가 조시를 잘 관찰하고 모방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해보고는 클라라를 선택해서 구매하게 됩니다. 

 조시의 어머니는 유전자 조작에 의해 생명의 위험할 정도로 아픈 조시가 첫째 딸처럼 죽게 될 경우, 에이에프 클라라가 조시의 대신해서 딸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아픈 조시를 데리고 초상화 (클라라게 입게 될 조시의 외형) 를 그린다는 명목으로 사진을 찍어가면서 조시의 외형을 본뜨고, 또 클라라에게는 조시를 잘 관찰하고 배워서 조시처럼 생각하고 행동해달라고 부탁 (지시?)을 합니다. 

 

그럼, 과연 클라라는 (조시가 죽게 된다면) 조시를 대체해서 어머니의 딸이 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학습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없는, 사람만의 특별한 무엇, 가령, 영혼(sprit)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요? 

 

소설의 주인공 클라라는 처음에는 인공지능 친구가 사람(조시)를 학습하여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가, 마지막에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고 입장을 바꿉니다. 

 

아래는 공학자인 아버지와 클라라가 나누는 대화예요. (p321~322)  

 "말씀하신 마음이요." 내가 말했다. "그게 가장 배우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방이 아주 많은 집하고 비슷할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에이에프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 방들을 전부 돌아다니면서 차례로 신중하게 연구해서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도 옆길에서 끼어들려고 하는 차에 경적을 울렸다. 
 "하지만 네가 그 방 중 하나에 들어갔는데, 그 안에 또 다른 방이 있다고 해봐. 그리고 그 방 안에는 또 다른 방이 있고. 방 안에 방이 있고 그 안에 또 있고 또 있고. 조시의 마음을 안다는 게 그런 식 아닐까? 아무리 오래 돌아다녀도 아직 들어가 보지 않은 방이 또 있지 않겠어?"
 나는 이 말을 잠시 생각해 본 다음 대답했다. "물론 인간의 마음은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한계가 있을 거예요. 폴 씨가 지적인 의미로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배워야 할 것에는 끝이 있을 겁니다. 조시의 마음은 방안에 또 방이 있는 이상한 집을 닮았을 수 있지요. 하지만 이게 조시를 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저는 최선을 다하겠어요. 제가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대화에서 클라라가 하는 대답은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시각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요. 양질의 충분한 학습 데이터와 시간, 컴퓨팅 자원이 있다면 학습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요. 사람의 생각의 숫자로 이루어진 벡터 공간으로 표현할 수 있고, 학습할 수 있다고 보고 있지요.(딥러닝의 아버지인 제프리 힌튼 선생님의 말씀이예요.) 

 

 

 

아래의 대화는 클라라가 야적장에서 매니저와 나누는 대화예요. (p441~442)

 (매니저) "네 말이 틀림없이 맞을 거야. 클라라. 그런데 '조시를 계속 이어 간다'라는게 무슨 뜻이야? 무슨 소리지?"
 (클라라) "저는 조시를 배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래야만 했다면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잘되었을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정확하게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머니, 릭, 가정부 멜라니아, 아버지. 그 사람들이 가슴속에서 조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는 다가갈 수가 없었을 거예요. 지금은 그걸 확실하게 알아요."
(매니저) "그래, 클라라.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한다니 다행이다."
(클라라)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에게 계속 찾고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팔디 씨가 틀렸고 제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결정한 대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이는 다분히 소설가가 쓸 수 있는, 인문학의 관점의 감성적인 대답이네요. 클라라에게 조시의 모습을 본 뜬 외형의 표피 옷(?)을 입힌다고 한들, 인간 조시와 맺었던 추억, 감정들까지 클라라에게 입혀줄 수는 없을 테니깐요. 

 

인공지능은 사람의 지능, 생각, 감정을 학습할 수 있을까요?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이자 수학자, 논리학자 였던 앨런 튜링은 1950년대에 "기계가 지능을 가질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튜링 테스트"를 제안해요. A 사람과 B 기계가 C 사람과 대화를 했을 때, C 사람이 A와 B 중에서 누가 사람이고 누가 기계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면, 기계도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할 수 있는것 아니냐는 것이죠.  튜링 테스트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인공지능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 일상 생활 속에도 (아직은 대화가 어색하고 불완전하긴 하지만) 인공지능 스피커라든지, 서비스별 챗봇 등을 볼 수 있어요. 

 

다만, 인간을 학습하는 것과는 별개로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는 완전히 다른 영역의 질문인지라 클라라의 마지막 대답이 더 적절한 대답일거 같아요. 시간의 흐름속에 쌓인 "관계"는 학습할 수 없는 거니깐요. 

 

 

 

2. 유전자 변형 생명공학으로 향상된 인간, 당신의 선택은? 

 

조시는 유전자 변형 생명공학 (정확하게 어떤 방법인지는 설명 없음) 에 의해서 지능이 '향상'된 부류에 속하는 아이예요. 반면에 조시의 친구 릭은 '향상'이라는 조치를 받지 않은 평범한 아이이구요. '향상'된 조시는 교사에게 지도받을 권리를 받고, 유망한 대학에도 진학하고, 사회적으로 우대받을 기회를 얻은 대신에 "나쁜 건강과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해요. 실제로 조시의 언니는 향상된 시술을 받고 태어났다가, 어렸을 때 건강이 나빠져서 생명을 잃고 말아요. 그리고 조시도 언니처럼 몹시 아프고요. 

 

소설에서 보면 '향상'된 아이들이 모여서 '사회적용 학습'을 위한 파티를 해요. 이때 '평범'한 릭도 조시의 초대로 파티에 참석하는데요, '향상'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로부터 멸시어린 시선을 받아요.  '평범'한 릭은 건강에는 문제가 없지만, 교육에서도 차별을 받고, 그래서 좋은 직장을 가질 수도 없을 것 같은 암움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어요. 

 

자,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자녀를 위해서 '향상 & 생명의 위험'과 '평범 & 건강한 몸'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어요? 참 어려운 질문이예요. 쉽게 답을 못하겠어요. 

 

한국 사회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아이들을 닥달해서 하루 종일 학원돌리고, 주말에도 아이들 숨도 못쉬게 공부만 시키고 하는게 어찌보면 조시의 엄마가 선택했던 '향상'의 21세기 한국의 사회상과도 어느정도 통하는 면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마도 한국 사회의 지금 세대의 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라도 향상을 선택'하겠다는 쪽이 더 많지 않을가 예상해봐요. 한국사회에서 '남과 비교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게 너무 만연해 있다보니깐요. ㅠ_ㅠ

 

'잘 사는게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무어라고 답할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것 같아요. 




3. 변덕스러운 인간, vs. 일관적이고 헌신적인 인공지능 로봇 친구 중에서 누가 좋은가?

 

소설에서 보면 인간 조시, 어머니, 릭은 변덕스러운 반면, 에이에프 클라라는 일관적이고 헌신적이예요. 

 

 '향상'된 아이들과의 파티에서, 클라라에게 딴지를 거닌 아이들의 장난에 조시는 부응하면서 "상향 버전의 에이에프를 살 걸 그랬나?" 라고 말해요. 클라라가 제일 좋다고 할때는 언제고, 다른 아이들 눈치보면서 클라라 마음에 염장질을 하는 조시를 좀 보세요. 

 조시 어머니도 클라라와 폭포를 보러 가서는 클라라에게 따뜻한 말을 많이 해줘요. 하지만, 조시가 많이 아프자 "클라라를 버리고 조시 옆에서 하루 종일 있을 수 있어"라고 조시에게 말하기도 해요. 

 조시의 베프인 릭도 어렸을 때 조시와 평생을 같이 하겠다는 약속을 서로 해요. 하지만, '향상'된 조시는 대학교에 가고, '평범'한 릭은 대학교에 못가면서 어렸을 때 조시와 한 약속은 철부지였을 때 뭣모르고 한 약속이었다면서 약속은 잊기로 해요. 

 

 반면, 클라라는 항상 사람에게서 배우려 하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비폭력 대화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해요. 그리고 클라라는 주인에게 얼마나 헌신적이고 충성하는지 몰라요. 심지어는 마지막에 야적장에 버져진 후에도 배신당했다는 분노 없이 일관되게 조시를 그리워하고 또 감사하게 생각해요. 

 

 저한테 만약 클라라 같이 대화도 사랑스럽게 잘 하고, 헌신적이며, 게다가 일관적이기까지 한 에이에프가 있다면 무척 좋아할 거 같긴해요. 사람들이 애완동물 강아지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거 아닐까 싶기도 해요. ㅎㅎ  


 

4. 인공지능이 가져올 일, 직업의 미래는?

 

소설에서 조시의 아버지 폴은 인공지능에 의해서 대체되었고, 무직상태의 대체된 사람들이 모여사는 커뮤니티 마을에 살고 있어요. 폴이 유능한 공학자였는데도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된 걸 보면 좀 섬뜩하기도 해요. 

그런데 이게 미래의 얘기만은 아니예요. 이미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어요. 가령, 신분당선에는 기관사가 없는거 아세요? 컨설팅회사 맥킨지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현재 직업의 3분의 1이 지능형 에이전트나 로봇과 같은 AI 기술로 대체될 것으며, 자익적으로는 거의 모든 인간의 직업을 대체해 모든 이에게 AI가 만든 보물이 제공된다"고 예측하고 있어요. 

 

AI타임즈 (2020.09.02일 기사 중에서)

 

 한국에서 잘 나가는 소위 '사'자 붙은 의사, 판사 등의 직업도 AI로 인해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될거예요.  한국의 학교와 학원에서는 20세기의 성공공식에 근거해서 창의성과 질문하는 힘 대신에 암기식, 서열식 줄세우기 교육에만 매달리고 있는데요, 이대로 괜찮은가하고 심각하게 질문해봐야 해요.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살아갈 세계는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부모세대의 성공공식을 자녀에게 강요하는게 과연 효과적인 전략일까요? 

 

이런 측면에서 이 소설이 제기한 "인공지능 친구가 따라할 수 없는 인간만의 특성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이 가이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코로나로 촉발된 '기본소득'에 대한 정치사회적 논의도 'AI로 인해 대체될 직업'과 연관지어서 정치권과 사회에서 계속 논의가 되어여 할 주제일거예요. AI로 인해 대체되는 직업의 양과 속도가 많고 빠를텐데요, AI로 대체된 사람들의 '직업 역량 교육과 전향'은 아무래도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요. 이 소설 속의 아버지 폴도 '기본소득'의 혜택을 받고 있는것 같아요. 

 

 

 

5. 이해할 수 있는,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 


초상화 작가 카팔디씨는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AI가 블랙박스여서 그 안을 모르기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클라라와 어머니에게 찾아와서는 클라라를 해체해서 인공지능의 사고하는 내부 매커니즘을 이해하는 연구를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해요. 

 

요즘 각광받고 있는 딥러닝(Deep Learning)은 인간의 뇌(뉴런, 시냅스 등)를 모방한 측면이 있어요. 그리고 역으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게 사람의 지능을 이해하는데 힌트라든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도 있을거 같아요.

 

최근에 "설명가능한 인공지능 (Explainable AI, XAI)" 분야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이 되고 있어요. 저도 “Hands-On Explainable AI (XAI) with Python" 이라는 책을 사서 요즘 공부하고 있어요. ㅎㅎ

 

Hands-On Explainable AI(XAI) with Python

 

그런데 이게 최근에 딥러닝으로 대표되는 AI 모델이 점점 커지고 있다보니 도대체 '설명가능한'을 어느정도로 봐야 하느냐는 의문이 들기는 해요. 가령, Open AI 가 만들어서 공개한 자연어 처리 모델인 GPT-3 는 성능이 어마무시한데요(마치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움), 무려 1,750억개의 파라미터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 나올 GPT-4 모델은 100조(兆

)개의 파라미터를 사전학습할거라고 하네요. 무려 100조개의 파라미터라면, 이걸 사람이 하나씩 까본다고 한들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요? 복잡도가 너무 높아서 이해하려고 했다가 기가 질려버리기 십상이예요. -_-;;;

 



6. 불가사의한 존재에 대해 숭배하는 종교는 본성인가?

 

에이에프 클라라는 태양으로부터 영양분(에너지)를 받아서 움직여요. 클라라가 매장에서 진열되어 있을 때 창밖의 길 모퉁이에 있던 거지와 개가 다 죽어가다가도 아침에 뜨는 해를 쬐고는 다시 생기와 활력을 얻는 모습을 보게 되요. 그리고는 '태양에는 생명의 기운과 치유의 힘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숭배(?)를 하게 돼요. 

 

인간이 자연의 힘의 원리에 대해서 무지했던 원시시대에 자연을 숭배했던 미신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지요? ㅎㅎ  


[ 책 읽기를 마치며 ]

 

이 책 <클라라와 태양>이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하니 기다려 보죠. 

인공지능 친구와 관련된 영화로 "그녀 (Her, 2013)" 도 함께 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무척 잘 만든, 재미있는 영화예요. 

 

728x90
반응형
Posted by Rfri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