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서부 전선 이상 없다.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2022)
감독: 에드워드 버거
배급사: 넷플릭스
이 영화의 원작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입니다. 이미 1930년과 1979년(델버트 만 감독)에 영화화가 되었구요, 2022년에 넷플릭스에서 배급한 동명 영화는 벌써 3번째 영화화된 것입니다. 저는 넷플릭스에서 배급한 3번째 영화를 봤어요.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장면들, 그리고 생각들 적어봅니다.
(1) 이 영화는 제가 그동안 봐왔던 세계 대전 영화와는 달리, 영국인, 프랑스인, 미국인이 아니라 독일 군인이 주인공인 세계 1차 대전 영화입니다. 그동안의 세계1/2차 대전 영화에서 독일군은 악의 축, 무찔러야 할 적, 인간의 탈을 쓴 악마로 묘사되곤 했는데요, 이번 영화에서는 독일군도 뜨거운 피가 흐르고, 죽음을 무서워하고 살고자 하며, 옆의 전우의 죽음에 슬퍼하고, 가족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묘사가 됩니다. 여태껏 세계대전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독인군 주인공인 파울이 죽을 까봐 가슴 졸이면서 본 영화네요. 누구의 시선으로 영화를 만드느냐가 정말이지 엄청난 관점의 전환을 일으켜요.
(2) 영화의 주인공 파울은 17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군에 자원입대를 하게 됩니다. 이때 학교의 늙은 선생이 새파랗게 젊은 고등학생들을 선동하여 전쟁의 총알받이가 되게끔 하는 장면이 나와요. “전쟁은 늙은이들이 일으키고 피는 젊은이들이 흘린다.”는 말이 저런거구나 싶었어요. 이래서 젊은이들은 투표 잘해야 합니다.
(3) 파울은 후퇴를 하던 중 물 웅덩이에 빠지게 되고, 프랑스 군에게 포위되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이에 파울은 죽은 척하고 쓰러져있는데요, 프랑스 군이 이를 눈치채고 파울을 죽이려 해요. 그래서 둘은 육박전을 치르게 되는데요, 이때 파울이 대검으로 프랑스 군인의 가슴을 찌르게 됩니다. 이 둘이 서로 뒤엉켜서 삶과 죽음을 사이에 두고 싸우는 모습이 너무나 처절하고 잔인해요. 전쟁의 참상이 이렇게 비열하고, 잔혹한거구나 싶게요. 파울은 자신이 죽인 프랑스 군인의 옷품에서 수첩을 꺼내는데요, 거기에서 나온것은 자신이 죽인 프랑스 군인이 평범한 인쇄공이었고,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였다는 것이었어요. 이를 안 파울은 오열해요. 전쟁 하면 무슨 이념, 종교, 주의, 대의명분을 얘기하는데요, 실제 일어나는 전쟁의 최전선에서는 왜 싸우는지도 모른채 그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오직 원초적인 생존본능만으로 서로를 죽이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래야 내가 사니깐요.
전쟁 영화하면 블록 버스터급의 화려한 전투 스펙터클에 그동안 취해있었다면, 이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 비인간성을 직시하게 합니다.
(4) 독일의 정치인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는 국가 지도자와 군인들의 오판으로 시작된 전쟁에 죄없는 독일의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휴전 협상을 주도하게 됩니다. 군인들은 명예를 언급하며 휴전을 반대하지만, 마티아스는 “내 아들이 전쟁에서 죽었는데, 그 명예는 어디서 찾느냐?”면서 더 이상의 의미없는 젊은이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휴전을 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영화 밖의 이야기인데요, 독일 청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휴전 협상단으로 나섰던 마티아스는, 휴전 후 ‘매국노’라는 오명을 쓰고 독일 청년에 의해서 암살 당했다고 합니다. 정말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5) 안전한 서부 전선의 후미에서 고기와 와인을 마시면서 독일군을 지휘하는 야전사랑관 프리드리히 장군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태어나 군인으로서 승승 장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곧 전쟁이 끝나니 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신세한탄하는 장면이 나와요. 피가 튀기는 전쟁의 최전선이 아닌, 생명의 위협이 없는 전선의 후미에서 장기판의 졸을 가지고 놀이를 하듯 전쟁을 지휘하는 프리드리히 장군 입장에서는 전쟁이 끝나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예요. 미친놈…
1918년 11월 11일 11시 휴전 협정이 발효되기 20분 전, 프리드리히 장군은 독일군에게 서부 전선으로 진격하여 땅을 더 차지하고 군인으로서 마지막 명예를 얻고 귀향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자신은 물론 전선의 후미에 그대로 남아있고… 완전 미친놈이예요.)
이 장면은 한국의 6.25 영화인 <고지전>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휴전을 몇 분 앞 둔 시점에 38선으로 진격을 명령한 군 지휘관, 휴전을 단 몇 분 남기고 진행된 마지막 고지전에서 또 희생된 수많은 생명들…
(6) 휴전을 하루 남긴 고요한 날에, 파울은 자신을 챙겨준 고참 군인이자 전우인 카트와 함께 마지막으로 프랑스 농장으로 거위와 달걀을 훔치러 갑니다. 이때 카트가 “전쟁은 열병 같아.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갑자기 들이닥쳤지. 신은 가만히 보고만 있어.” 라는 말을 해요. 왜 하는지도 모르는 전쟁,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열병 처럼 순식간에 사람들을 불사르면 번지는 전쟁이 정말 열병 같아요.
카트는 결국 프랑스 농장에서 거위 알을 훔쳐 먹다가 농장 아들이 쏜 총에 맞아서 죽어요. 휴전을 고작 하루 남기고 달걀 하나와 삶을 바꾼것이 되어버렸어요. 너무나 허무하게도 말이지요.
(7) 영화의 마지막에 파울이 구해준 새로온 신병이 파울을 포함한 사망한 전우의 군번 인식표를 수집하는 장면은 영화 초반 신병으로서 사망한 전우의 군번 인식표를 수집하던 파울의 모습과 오버랩이 됩니다. 5초, 아니 1초만 휴전 협정 발효를 알리는 싸이렌이 더 일찍 울렸더라면… 파울은 살 수 있었을텐데… 하는 자조섞인 한숨이 나왔던거 같아요.
(8) 영화의 마지막에 이런 자막이 나와요.
“전쟁은 참호전의 양상으로 굳어졌고, 1918년 12월 전쟁이 끝났을 때는 오직 서부 전선에 적은 이동만 있었을 뿐이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수많은 생명을 빼앗아갔던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수행되었던 것일까?
전쟁에서 과연 승자가 있을 수 있을까?
그동안 국가나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전쟁들은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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