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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2.01 [책]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이소호 에세이, 창비)

요즘 회사일이 숨 쉴 틈도 없이 프로젝트의 연속인지라 책을 읽을 여유도 없고, 책을 읽어도 회사 일 관련된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 프로그래밍 등과 관련된 분야의 책들만 읽었어요. 흑... ㅜ.ㅜ  그러다가 설 연휴 맞이해서 모처럼 에세이 책 읽어보았네요. 책상에 어지럽게 쌓여있는 책들 중에서 제목이랑 표지가 뭔가 젊은 감성이 물씬 풍기고 세련되어 보여서 집어 들었어요.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이소호 에세이, 창비)

 

"시키는 대로" 부분에 밑줄 쫘악~!  ㅋㅋ  요즘 젊은 작가는 제목에서 부터 이런 센스를 부리네요!  

"제멋대로"도 빼뚤빼뚤 제멋대로예요.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이소호 에세이, 창비

 

저자는 자신을 "시인 이소호"로 소개를 하네요.  "이경진"에서 "이소호"로 개명을 했다고도 하구요. 

 

책을 펼치면 첫 장이 시인 이소호씨가 (이경진의 이름이었던) 초등학생 때 썼던 일기로 시작을 해요. 그것도 "우리 가족"에 대한 일기예요.  느낌 오지 않나요? 이 수필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면 이런것도 독자를 대상으로 해서 글을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강박적이고 수위가 높은 "솔직함"이예요. 일기, 그리고 가족 이야기 만큼 개인적이고 그래서 타인에게 솔직하게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요?  이소호 시인은 "우리 가족"에 대한 "일기"를 공개하는 것으로 수필집의 첫 장을 열었어요. 말 다했죠! 

 

"솔직한 글쓰기"는 누군가에게는 '나만 힘든게 아니었구나'하는 위안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나만 이렇게 생각한게 아니었구나'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반면에 홍상수 영화를 볼 때 느껴지는 있는 그대로의 맨 날 것의 생생한 모습을 직접 보게 되었을 때의 불편함도 동반하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고요. 

 

"첫 줄은 형편없이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요, 아니예요.  나름 신선하고 재미있었어요. :-)

 

 

서울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 선생님인 아버지를 따라서 부산으로, 그리고 아버지의 꿈을 쫒아 온 가족이 전라북도 무주로 이사간 후의 삶에 대해서 저자는 "누군가는 추억이라고 쓰고 나는 그걸 지옥이라고 읽지"라면서 10대의 삶이 너무나 비참했노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 수필집을 이소호 시인의 아버지는 읽어보셨으려나 문득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좀 되더라고요. 읽는 독자로서 저는 왠지모를 관음증(?)이 도져서인지, 아니면 내면의 의식의 흐름을 쫓아 술술 읽히는 소설책의 한 장, 한 장을 읽듯이 재미있게, 때론 키득거리면서 읽었거든요. 

 

무주에서의 무료한 삶이 싫었기에 글을 썼고, 무주를 탈출해서 서울로 기어코 가기 위해 대학 진학을 꿈꾸게 했던 만큼 인생에 있어서 쓸모없는 것이란 없는 것인가봐요. 그게 비록 "추억"은 아니었고 "지옥"이었을 망정이라도요. 

 

엄마에 대해서는 절대로 닮고 싶지 않지만 자신도 모르게 닮아있는 사람으로 소개를 하고 있어요.  "솔직한 일기 쓰기"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서 처음으로 가르쳐주셨던 분이 엄마예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정체성에 맞추어 살다보니 좋아하던 연극배우의 커리어를 중단해야 했던 어머니. 딸 서울 전세금을 대주었다는 이유로 연락도 없이 불쑥 서울로 찾아오고 잔소리하시는 어머니.... 이런걸 애증의 관계라고 해야 하나요. 이 부분을 읽는데 제 어머니, 아내, 딸이 오버랩되면서 '이 나라, 이 시대에 여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되묻게 되더군요. 마음이 좀 무거웠어요. 

 

연년생 동생과의 에피소드는 생경한 욕설이 날아다니는 장면마다 저는 키득거리면서 읽었어요.  ㅋㅋ  다 큰 자매 둘이서 남미 여행갔다가 욕하면서 머래채 잡고 싸우는 모습이 그려지는데요, 시인도 욕을 찰지게 하는 구나 싶어서 웃겼어요. 그리고 이런 얘기를 책에 쓸 수도 있구나 싶어서 놀라기도 했구요.  이 수필집을 읽다보니 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어도 "참 다르구나" 싶고, 우리 사람은 모두 "전지적 자기 중심 시점"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뚜렷한 존재구나 싶어요. 

 

회사 생활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꼰대"와 "갑질"에 대해서 까놓았어요. 아직도 저런 회사가 있을 까 싶게 회사가 좀 심하긴 하던데요, "자발적 왕따"를 당하면서 다른 회사 직원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저자도 그닥 회사생활을 하기에는 적합한 사회적 인간은 아니었던거 같아요. (요즘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점심 혼자 먹는게 그리 이상하지 않으니 이소호 시인같은 자발적 외톨이가 더이상 비주류는 아닐 수도 있겠네요.)  회사 직원 대상으로 하는 서베이에 회식이랑 야근 관련된 꼰대질 그만하라는 글을 "솔직 담백하게" 썼다가 회사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는 장면에서는 왠지 모를 통쾌함을 느꼈다가도, 아무런 송별회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부분에서는 왠지 외로워보였어요. 똘끼와 광기, 자유로운 영혼의 시인이 회사생활을 병행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던 것일까요?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의 제목처럼 제멋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야 하는게 시인이기에요. 시인으로서 다달이 날아오는 카드값 고지서에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여주는 걸 보면, 참, 세상에서 온전히 독립해서 자기 앞가림하면서 제멋대로 산다는게 쉬운일이 아니예요. "시키는 대로"의 삶을 떠나서 "제멋대로"의 삶을 사는데는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그쵸? 

 

외할아버지에 대해 회고하는 부분은 읽는 내내 마음이 푸근하고 따뜻하고 애뜻했어요. 외할아버지가 체크남방을 즐겨입으시고, 해외 여러나라를 여행하신 멋쟁이시더라구요. 외손녀들에게도 차별없이 골고루 사랑을 나누어주시고, 몰래 특별 용돈도 챙겨주시면서 그걸 낙으로 삼으셨던 분이셨어요. 외할아버지의 임종에 이소호 시인이 펑펑 울었다는 부분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이의 슬픔, 애잔함, 그리움이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에세이는 정말 얼마만에 읽는지 모르겠어요. 그동안 참 팍팍하고 삭막하게 살았던거 같은데요, 모처럼 재미있는 에세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구글링해서 저자에 대한 기사랑 사진도 좀 찾아봤어요.2018년에 시집 "캣콜링"으로 제 37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셨던데요, 나중에 이소호 "시인"의 시집도 읽어봐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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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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