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심리 치유 에세이, <천 개의 공감> (김형경 지음, 한겨레출판, 2006) 

 

저는 김형경씨의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2001)> 과 심리 에세이 <사람 풍경 (2004)>, <천 개의 공감 (2006)>를 30대 초반에 정말 재미있게 여러번 읽었답니다. 자전적 소설이었던 <세월 (1995)>은 저자의 고통이 전해져서 인지 너무나 힘들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집을 이사할 때마다 수십~수백 권의 책들을 버리곤 했는데요, 아마 저자의 책들도 버렸는지 지금은 찾을 수가 없고  <천 개의 공감> 만 용케 책꽂이에 살아 남아서 올 해 다시 읽어봤어요. 

 

이 책 <천 개의 공감>은 소설가 김형경씨가 한겨레신문의 “형경과 미라에게” 코너에서 독자들의 상담 질문에 저자가 답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어낸 “심리 치료 에세이” 입니다.(소설이 아니예요!)

 

천 개의 공감, 김형경 저

 

소설가가 왠 ‘심리 치유 에세이’란 말인가 하고 의아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자기소개 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을 공부하고 자신을 치열하게 분석해본 소설가 만이 쓸 수 있는 글, 책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최고의 과학자가 일반 대중을 위한 과학 교양서를 쓸 수 있는 것 처럼요.)

 

 “소설가라는 직업은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는 영역의 일이라 믿으며 이십대 중반부터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에 관한 책을 읽어왔다. 지금 책장에는 그 분야의 책이 4백여 권쯤 꽃혀 있는데 그 중에는 한두 장만 읽은 책도 있고 서너 번쯤 반복해서 읽은 책도 있다. 삼십대 후반에는 실제로 약 1백회 가량 정신분석을 받았고, 그 후 여행과 일상생활 속에서 ‘잔존 효과’라 할 만한 긴 자기 분석의 시간을 보냈다”

 

독자의 상담 요청 글들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불만과 화를, 그리고 다른 이와의 관계 속에서 겪는 갈등과 상처를 마주치게 될거예요. ‘어, 이거 내 얘긴데…… 나같은 사람이 여기도 있었네.’ 하면서요. 그러면서 저자는 어떻게 상처와 갈등의 근원이 되는 심리에 대해서 분석을 해보고, 이에 대한 조언과 처방도 해주고 있기에 특히 자신에게 울림이 있는 상담 요청 글이었다면 숨을 죽이면서 몰입해서 읽게 될거예요. 

 

목차

  1. 자기 알기

  2. 가족 관계

  3. 성과 사랑

  4. 관계 맺기

 

 

1. 자기 알기

천 개의 공감 - (1) 자기 알기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 괴테 -

 

모든 문제의 시작과 핵심은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서 느끼고, 그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아는 것”일 거예요. 저자는 우리 안의 “과도한 의존성”을 살펴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신분석은 “주도적으로 행해야하는 지난한 과정”이라며 중도에 포기하지 말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문제도, 해결책도 나의 내부에 있으니” 타인에게 너무 큰 것을 기대하지 말고 자신이 선택하고 반응하는 삶의 주도권을 가져오라고도 해요. 이때 “누군가가 하는 말과 행동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점을 깨닫고 유아기나 성장 과정에서 결핍되었거나 억압되었던 욕구가 특정 패턴으로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게 고착화된건 아닌지 깊이 들여다보라고 해요. 

 

또 하나, “타인의 싫은 점은 자신의 내면”이라고도 해요. 놀랍게도 말이지요. “치유의 핵심은 직면하기”라고 하는걸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걸 ‘직면할 수 있는 용기’, ‘타인의 싫은 점이 결국은 나의 그림자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이겠지요. 

 

 

2. 가족 관계

천 개의 공감 - (2) 가족 관계

 

한 인간의 인격과 가치관, 자신에 대한 인식, 세상올 대하는 시선을 결정짓는 가장 큰 영향 요소를 꼽으라면 단연 가족일 것입니다. 저자는 “부모형제는 우리의 정신을 형성하는 자양분”이라고 말해요. 그러면서 유아기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서는 프로이드 심리학을 차용해서 “엄마와 딸은 근원적 갈등 관계”, “아버지와 아들은 신화적 살해 관계”, “형제자매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관계”라고 해요. 원천적으로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 관계가 내재된 듯해서 왠지 불편하지요? 

 

아래는 “중독성은 중독성끼리 의존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독자의 상담글에 저자가 남긴 진단의 한 문장인데요, 전 소름돋더라구요. 

 

“사실 언니와 형부는 처음부터 신경증끼리 서로 알아보고 만났을 것입니다. 두 분 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중독 성향보다 더 깊은 내면에 오래된 결핍이 존재하며, 그 강도 역시 비슷할 것입니다.” (p140)

 

이게 어찌보면 악순환의 되먹임 같은거 잖아요. 둘 중에 한명이 자신의 충족되지 않은 욕구와 중독성을 자각하고 이 악순환 고리를 끊겠다는 용기를 내지 않는 한 병적인 관계가 더욱 강화되는 악순환이요. 

 

가족 간의 역학구도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나름의 심리적 전략을 채택하게 되고, 그걸 의식하지 못하면 평생을 그 패턴 속에서 의존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군요. 가족 관계에서 쌓인 갈등, 불만, 상처에 대해서도 직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해요. 사과할 것이 있으면 진심으로 가족에게 사과하고, 자신의 유아기때의 감정을 돌아보고, 보듬어주고, 가족들과 그에 대해 성인이 되었더라도 어릴적 충족되지 못한 욕구와 감정에 대해 얘기해보라고 해요. 편지를 써보거나 협상을 할 수도 있고, 혼자서는 힘들면 상담을 받으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구요. 저자는 종교의 치유 능력에 대해서도 우호적으로 말하며 기도나 명상도 권하고 있어요. 

 

 

3. 성과 사랑 

 

천 개의 공감 - (3) 성과 사랑

 

저자는 “사랑과 성욕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태어납니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세번째 챕터의 제목이 ‘사랑’이 아니라 ‘성과 사랑’인 것은 그만큼 ‘성’과 ‘사랑’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일거예요. 

 

“사랑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면서 뜨거운 열정이나 편안한 친밀감 뿐만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도 기꺼이 짊어질 수 있을 때에야 비로서 진정한 그리고 성숙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해요. 그리고 “피학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은 사랑이 아니”고, “가학적이고 잔인한 사랑은 자신을 파괴한다”고도 말하고 있어요. 책임과 의무는 지지 않으려는 쿨한 사랑,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의존하는 가짜 사랑의 관계는 반복적으로 빠지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서글프고 무서운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어요. 

 

“어느 쪽이든, 나쁜 여자/나쁜 남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비슷한 유형의 상대방을 만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컴플렉스가 왜곡된 신호를 보내어 저쪽의 콤플렉스를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p191)

 

이처럼 사랑을 가장한 병적인 관계의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어렸을 적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실마리가 있을 것이라고, 부모와 자신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해보라고 권하고 있어요. 혹시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생존전략으로 익힌 심리적 방어기제를 사랑하는 이에게 전이, 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해야 한다고요. 

 

“욕망은 본질적으로 충족될 수 없다”거나 “남녀의 성적 욕망은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 남녀가 서로 이해를 하고 있다면 상대방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욕구를 하지 않을 수 있을거예요.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여유와 관용이 싹트고, 또 성숙한 관계로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겠지요. 

 

“남성과 여성은 사랑 행위를 인식하는데 이처럼 차이가 납니다. 그리하여 남성의 삶은 성적 욕망에 고착되어 있는 듯 보이고, 여성의 삶은 로맨스에 고착되어 있는 듯 보입니다. 남성은 자주 성적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까봐 염려하는 거세 불안에 시달리고, 여성은 자주 애착의 감정을 박탈당할지도 모른다는 분리 불안에 시달립니다.”(p232)

 

 

4, 관계 맺기

 

천 개의 공감 - (4) 관계 맺기

 

네번째 챕터 “관계 맺기”의 핵심은 “승-승의 관계는 이익과 즐거움을 공유하면서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못나고 부족한 면을 사랑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시작을 해요. 자신의 좋고 긍적적인 면뿐만이 아니라 못나고 부정적이고 숨기고 싶은 면까지 모두 사랑하는 것이 관계 맺기의 시작이라는 것이지요. 

 

무라카미 류가 에세이 제목으로 “자살보다는 섹스”를 썼다고 해요. 뭔가 장난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데요, “생존 욕망과 죽음 욕망은 한 몸이다”는 정신분석학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주장에 대한 문학적 표현이라고 하네요. 

 

화와 분노에 대한 내용도 있어요. 자신의 내면에 쌓인 화와 분노는 자신을 죽이는 독과 같으니 단계적으로 표현하라는 조언도 있구요, 반면에 “화는 보살핌을 간절히 바라는 자신의 아기다”(틱낫한, p276)라는 말처럼 타인의 화에 대해서는 사랑을 갈구하는 신호로 해석하라는 내용도 있어요. 일면 상충되는 듯 하면서도 일리있는 말 같아요. 

 

“거절해도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라는 제목의 내용은 제가 거절을 잘 못하다 보니 주의깊게 봤습니다. 저자는 상대방의 자기애를 배려해서 “중립적이고 완곡한 말투로”, 뭔가 나중에라도 해줄것처럼 기대를 줄게 아니라 “처음에 거절하라”고 조언해주고 있어요. 

 

“중년의 문턱에서 생의 목표를 수정합니다”로 이 책은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맞닥드렸을 때 어떤 삶을 살았노라고 기억되길 원하는지 깊이 고민해보고, 남은 후반전의 인생을 재설계해보라는 거예요. 내가 받은 천복을 감사하며, 남과 사회, 공동체로 흘려보내고 나누고 베풀고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를 그려보는게 중년의 위기를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구요. 

 

 

 

<비폭력 대화 (마셜 B. 로젠버그 저)> 책에 보면 프랑스 작가 사몬 베유(Simone Weil)이 말하길,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할 수 있는 능력(즉, 공감)은 매우 드물고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사실 기적이다.” 라고 했어요. 이 책의 제목 <천 개의 공감>은 그런 면에서 무척 대범한 제목이고, 별명으로는 <천 개의 기적> 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거 같아요. 

 

책 머리에서 소설가인 저자는 <천 개의 공감> 책이 <사람 풍경 (2004)> 에 이은 두번째 외도라면서, 이 책이 아마도 자신의 방어기제의 산물일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어요. (p6)  마지막 문장이 왠지 모르게 저한테는 위안이 되는거 있죠. :-)  

 

 

아마도 이 책은 제가 하는 말이 옳다고 믿는 나르시시즘, 틈만 나면 잘난 척하려는 열등감, 자신의 삶에서 실천해야 하는 덕목들을 타인에게 충고하는 투사 방어기제의 산물일 것입니다. 사실 이 책 전체가 지식화 방어기제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설 쓰기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불안과 좌절감으로부터 뒷걸음질 치는 회피 방어기제의 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의 모든 꼭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자에게 더 울림이 큰 책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물론 남성에게도 자신의 내면 심리를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또 여성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동반자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에 대해, 상대에 대해, 인간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강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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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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